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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때보다 경제 더 안 좋아… 구조개혁만이 살 길”

입력 : 2016-01-03 19:00:09 수정 : 2016-01-03 21: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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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대가에게 듣는 2016 한국경제] 릴레이 인터뷰 - ②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경제위기에 관한 한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고전문가라 할 만하다. 금융과 세제분야에서 40여년간 일한 정통경제관료인 윤 전 장관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을 맡아 최전선에서 외환위기를 체험했다. 그는 또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기재부장관에 임명돼 2년4개월간 위기탈출을 진두지휘했다. 과연 위기징후에 민감했고 위기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도 남달랐다. 윤 전 장관은 “우리 경제가 외환,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큰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서서히 끓어가는 물 속의 개구리 신세”라고 진단했다.

위기의 실체는 무엇일까. 자유시장경제의 꽃인 기업이 시들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윤 전 장관은 “기업의 경쟁력이 나라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시대”라며 “(사회주의 국가가 그랬던 것처럼) 민간의 핵심주체가 무너져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고 말한다.

심각한 것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과거 위기 때 전 국민의 공감대가 있었고 금모으기와 같은 대안을 바로 내놓을 수 있었다”면서 “지금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정치권은 가장 안이한 인식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올해 우리 경제는 정말 걱정이라고 했다. 윤 전 장관은 “외환위기 때 그해 12월 대선이 있었고 2016년에는 4월 총선이 있어 더 위기를 느낀다”면서 “선거 때에는 경제원리보다는 정치논리가 앞서 경제운용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펄펄 끓는 개구리신세를 면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는 시장주의자답게 구조개혁의 정공법만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기업은 과거 선단식, 문어발식 경영에서 탈피해 전문분야를 특화해 국제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그가 내린 처방전이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주도하고 있는 비핵심계열사 매각 등 사업재편에서 그는 희망을 찾았다.

하지만 정치는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고 교육은 가망이 없다고 했다. 그는 “경제는 진공 속에 있는 게 아니다”면서 “교육이 지금처럼 이어진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정치권 하는걸 보면 산속에 들어가고 싶다”고 토로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세계일보 임원실에서 우리 경제의 위기상황과 대처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한국 경제가 물속에서 서서히 끓어가는 개구리 신세”라며 “구조개혁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정탁 기자
―현재 경제 상황이 위기인가.


“외환·금융 위기 때는 전 국민의 공감대가 있었다. 위기란 것이 피부에 와닿았고 위기라는 인식이 공유됐다. 이에 금 모으기 운동 등이 가능했다. 지금은 그때와 차이가 있다. 기업이 부도가 나지 않고 하니 잘 모른다. 서서히 끓는 물속에 들어 있는 개구리 신세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제일 안이한 인식을 가진 곳이 정치권이다. 한쪽에서 개혁한다고 해도 다른 한쪽은 마이동풍이다. 누군가 조치를 취하고 대비를 해야 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 것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과거보다 더 어려운 시기다.”

―새해 세계 경제 전망은.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다.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우리 경제가 세계 경제권에 편입된 지 오래다. 세계 경제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우리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기에 수출 시장이 살아야 한다. 정상화돼가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미국 시장으로 수출은 좀 늘 수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은 계속 어렵다. 중국은 경착륙 우려가 크다. 일본도 절반의 성공을 거둔 수준이다. 러시아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은 다 어렵다. 대외 여건은 크게 나아질 조짐이 안 보인다.”

―국내 경제 상황은 어떤가.

“대내적으로 보면 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 사회, 노동, 문화, 교육 등의 여건이 안 좋다. 새해에 국내에서 더 나아질 여건이 없다. 특히 국회가 발목을 잡고 있다. 정책은 속도와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펼 수 있는 경제 정책은 한계가 있다. 정치권의 인식이 희박하다. 작년에 비해서 새해가 나아질 만한 희망은 적다. 총선 때까지 정부가 독자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싶다. 총선 후 후유증도 클 것이다. 그러면 새해는 절반이 지나가 있을 것이다. 정말 걱정이다. 개혁이라고 해놓고는 진전되고 있는 것이 없다. 새해 경제도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추진 중인 4대 개혁을 평가한다면.


“현 정부가 4대 개혁 얘기를 하는데, 방향이 제시 안 되고 있다. 공공부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말만 공공개혁이다. 공무원 연금 개혁을 했다는데 제대로 한 것인가. 제대로 했으면 공무원 노조가 강하게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 노조는 조용하다. 봉합만 해놓은 것이다. 공무원 노조 눈치만 보고 있다. 노동개혁은 정부가 노사정위원회에 맡기지 않고, 노동개혁안을 만들어서 국회를 설득해야 했다. 지금 정부는 남의 일처럼 떠들기만 한다. 교육개혁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교과서 국정화가 교육개혁인가. 금융개혁은 잔가지밖에 없다. 기관장 등 보통 3년 임기 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만 하고 있다.”

―금융개혁을 어떻게 해야 할까.

“금융사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낙하산인사 하지 마라’ ‘관치금융 하지 마라’ ‘규제 완화해라’ 등의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이는 가지치기밖에 안 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주인 찾아주기다. 금융사의 주인을 찾아주는 개혁을 하면 금융개혁은 풀린다. 좋은 사례가 최근 KDB대우증권을 인수한 미래에셋이다. 대부분 KB국민은행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미래에셋이 이긴 이유는 주인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신한은행을 봐라. 왜 발전했나. 재일교포를 중심으로 오너십 행사를 했다. 그러니까 정부에서 거기 인사에 개입하지 못했다.”

―저성장을 벗어나려면.

“성장을 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세계 경제성장률보다 앞서야한다. 둘째,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성장해야 한다. 셋째, 잠재성장률 자체를 끌어올려야 한다. 최근에 이 조건들이 무너지고 있다. 저성장을 탈피하려면 구조개혁이 가장 중요하다. 수출을 아무리 해봐야 일자리는 예전처럼 늘어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섬유 등과 같은 노동집약 수출이었다. 지금은 반도체, 자동차 등 자본기술집약이다. 지금은 예전 1% 성장 시 고용인력의 절반도 안 된다. 절반이라도 일자리를 늘리려면 성장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좋은 성장이냐. 그것은 내수다. 내수 산업이 고용친화적이다. 특히 서비스다. 서비스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병원이다. 종합병원 생기면 5000∼1만명의 일자리가 생긴다. 관광산업은 케이블카, 호텔 등 서비스산업이다. 다 사람이 들어간다. 교육도 그렇다. 이런 산업이 고용을 창출한다. 하지만 이 부분을 개혁해야 하는데 한 치도 못 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대외의존도를 낮추자는 것이 아니라 수출도 더 늘려야 한다. 수출과 내수를 늘려 확대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래야 한쪽이 어려울 때 다른 쪽이 보완해줄 수 있다.”

―가계부채 해법은.

“가계부채는 참(한숨을 쉬면서)…. 가계부채 때문에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은 커보이진 않는다. 우리나라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 담보대출 규제를 일찍 도입했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간 가장 잘못한 것이 부동산 담보 규제를 안 했다. 일본은 규제가 없었기에 담보의 150%까지도 대출이 가능했다.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니 결국 부실채권이 됐다. 다만 가계 대출이 많다 보니 개인의 소비여력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가계부채 문제를 풀기 위해선 개인의 상환여력을 키워줘야 한다. 결국 성장해서 일자리를 만들어줘 소득을 늘려야 한다.”

―증세에 대해 논의할 시점이 아닌가.

“박근혜정부가 복지 확대, 경제민주화 등 얘기하면서 135조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재정지출 억제, 세출 절감,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 감면 등을 통해서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했다. (그때)정부 앞날이 캄캄하다 생각했다. 도저히 불가능하다. 지하경제 양성화한다고 해서 기업들 세무조사 등으로 기업 사기를 다 죽여놨다. 비과세 감면 역시 국회에서 제대로 철폐한 게 있나. 세출 절감도 지금도 각 부처가 난리인데 어떻게 줄일 수 있나. 증세 없는 복지는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복지는 자활의지를 북돋아줘야 하고, 전달체계도 중요하다. 또 복지는 되돌릴 수 없다. 정부가 국민과 시장에서 신뢰를 얻으려면 호소해서 설득해야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 개혁을 어떻게 보나.

“이재용 부회장이 그럴 줄 몰랐는데 잘하고 있다. 회사를 전문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정 분야를 전문화해서 키워야 한다. 삼성의 지속가능한 희망을 본다.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있다. 창업자는 열정적인 도전정신을 가지고 일했다. 2세는 아버지 모습을 보고 사업을 유지했다. 3세는 전혀 모르다 보니 기업이 어려워진다. 시장 상황은 바뀌고 있다. 변화에 적응 못 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2세까지는 불확실하다 보니 문어발식으로 다했다. 모든 업종이 다 호황일 수 없으므로 리스크를 분산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군살을 떼어내고 이길 수 있는 분야를 가져가야 한다. 국내 경쟁이 아니라 국제 시장에 나가서 외국과 경쟁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재용 부회장의 선택은 잘 한 선택이다.”

대담=주춘렬 경제부장, 정리=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약력

●1946년 경남 마산

●서울고, 서울대 법대, 행시 10회

● 미국 위스콘신대학원 공공정책학 석사

●재무부 국제금융과장, 은행과장, 금융정책과장, 금융실명제실시준비단장, 금융국장

●재정경제원 세제실장, 금융정책실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 원장

●기획재정부 장관

●윤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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