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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문화·상업·교통의 발달…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다

입력 : 2015-12-12 01:59:09 수정 : 2015-12-12 0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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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지성’ 움베르토 에코
두번째 중세 기획시리즈 나와
움베르토 에코 지음/윤종태 옮김/차용구, 박승찬 감수/시공사/8만원
중세 2 성당, 기사, 도시의 시대(1000~1200)/움베르토 에코 지음/윤종태 옮김/차용구, 박승찬 감수/시공사/8만원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다. 기독교 이외의 종교에 대한 탄압, 역병, 빈곤과 대량학살 등을 떠올린다면 이는 부분적 관점이다. 성급한 학교 교과서들이 이를 믿게 만들었다.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소개했던 것들은 중세가 아니다. 그 시대가 남긴 유산 대부분을 우리는 아직도 적용하고 사용한다. 다양한 형태의 상업경제, 신용장과 수표, 은행, 병원 제도 등은 중세에 태어났다.”

현대 최고 지성으로 인정받는 움베르토 에코가 내놓은 중세 기획시리즈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에코는 중세야말로 현대 문화의 토대가 된 시대였다고 강조한다. 중세의 재발견이다. 그는 중세의 재발견은 현 시대의 당면 문제를 풀어나갈 지혜를 얻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에코는 방대한 지식과 지혜를 토대로 1000년부터 200년간을 촘촘히 살피면서 이 시기가 현대에 주는 의미를 짚어낸다.

프랑스 롤랭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각 ‘지상낙원의 이브’. 프랑스 작가 오툉이 만든 것으로 중세시대 조각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시공사 제공
중세 시리즈에서 에코가 제기한 문제의식은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세가 암흑기였다고 규정한 것은 근대 계몽사상가들이었다. 계몽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창의성이 아니었다. 강대해진 정치집단의 구미에 맞는 사상의 계발이었다면 과장인가. 근대의 계몽이란 의미는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의 압제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 쓰였다. 교황의 권위에 짓눌렸던 각국의 왕과 귀족 등 지배계급은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한다. 대항해시대를 열면서 축적한 재산은 지배계급의 세력을 넓히는 데 쓰였다. 유럽은 이후 100년전쟁, 프로이센전쟁 등 끊임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빠져들었고, 18세기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혁명이 발생했다.

지배계급의 세력 확장에는 적어도 민중이란 의식은 없었다. 그러나 중세에는 달랐다. 평신도를 위한 교육기관 등이 수도원을 중심으로 세워졌고, 다양한 문화의 꽃이 피었다. 중세에는 인문주의가 번성했고, 수도원을 통한 다양한 사회 발전이 이뤄졌다.

에코는 이 시리즈를 통해 중세의 진의가 무엇인지, 중세가 현대인에 무엇을 남겼는지, 중세와 지금의 시대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고자 한다. 흔히들 암흑기란 로마제국이 몰락한 476년부터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1492년까지 1000년의 시기를 일컫는다. 이 시기를 암흑기란 한 단어로 정의하는 것은 단세포적인 일이다. 

프랑스 파리 북부 생드니에 있는 생드니대성당. 중세시대 평신도 신학 교육기관으로 사용됐다.
시공사 제공
11세기 초 유럽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생활 터전을 찾기 위해 유럽 전역으로 뻗어나갔다. 자연스럽게 상업과 교통, 시장 등이 발전했다. 이동을 위한 새로운 항해 도구가 속속히 발명됐다. 거친 땅을 경작하는 데 필요한 무거운 쟁기와 말의 편자가 나왔다. 대량생산을 위한 3모작이 1000년 이후 도입되면서 중세사회의 경제력은 크게 신장된다. 향수, 향신료, 보석 같은 사치품이 유통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생산이 분업화하면서 직능조합들이 만들어졌고, 서로의 결속을 다진 것도 1000년 이후다.

2000년 무렵 현대인이 겪은 혼란보다 더한 대혼란 즉 흑사병과 전쟁이 1000년 이전에 발생했지만, 1000년이 지나면서 비교적 평화로운 성장기가 이어졌다. 수도원은 젊은이들에게 열린 학습의 장이 되었다. 법학의 시초인 볼로냐 대학과 신학을 위한 파리 대학이 생겨났다. 모두 평신도를 위한 최초의 대학들이었다. 그리스도교가 급속히 퍼져나가고 부강해지면서 유럽인의 관심은 자연히 동방으로 향했다. 이는 십자군 원정으로 이어졌다. 십자군 원정의 중추였던 중세 기사들에 의해 중세 문화도 동방으로 널리 퍼져나간다.

에코는 십자군 원정이 단순히 종교적인 이유만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인 동기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십자군 원정을 단순히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이슬람국가(IS)라는 골칫거리를 좀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알려준다. 테러집단으로 낙인찍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행태는 다른 차원에서 숙고할 필요가 있다.

에코는 1000년부터 1200년까지를 ‘첫 번째 산업혁명’이라고도 부른다. 사실 유럽 곳곳에서는 지금도 중세에 지어진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중세와 현대가 어우러져 있는 게 지금의 유럽이다. 이 책을 통해 에코는 중세에 대한 일반 대중의 오해와 편견을 깬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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