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지성’ 초대 동인 ‘4K’, 김현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왼쪽부터). 이들은 1970년 창간사에서 “무엇이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의 의식을 참담하게 만들고 있는가?”라고 물었거니와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
1980년 제작됐다가 신군부의 폐간 조치로 사라졌던 ‘문학과 지성’ 복각판(왼쪽). 김현의 독후일기를 모은 ‘행복한 책읽기’. |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창사 대표는 “암흑기의 비밀문서처럼 제작된 이 책은 문지 편집팀과 몇몇 필자들, 서지적 호사가들이 나누어 가지게 되었지만 공식적인 목록으로 등재되거나 시장에 암매되지도 않은, 잉태는 했지만 출산은 못한 불운한 책이 되고 말았다”면서 “35년 만에 이 책을 다시 들춰보며 우리가 느끼는 소회도 각별하지만, 이름만 듣고 실제를 보지 못한 젊은 독자들에게도 따뜻한 기대감을 채워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이 책의 ‘해제를 위한 회고’에 썼다.
40년 출판 역사를 기념하는 세 번째 출간물은 김현의 독후 일기를 담은 ‘행복한 책읽기’ 개정판이다. 이 책은 1985년 12월 30일부터 1989년 12월 12일까지 4년 381일치 김현의 일기를 담았다. 김현의 숨은 사유의 궤적들을 따라갈 수 있는 흥미로운 여정이다. 개정판 디자인은 정병규 북디자이너가 맡았다. 책 말미에는 ‘인명 찾아보기’를 덧붙였고 연도별로 나뉜 각 부의 첫 머리에는 김현의 자필 서안 4점을 담았다. 젊은 김현이 꿈꾸었던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과 희망이 녹아 있는 스테디셀러가 새 옷을 입고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유효한 생각을 나눈다.
문학과지성사는 한국문학에서 의미가 큰 실험집단이다. 대주주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동인들끼리 주식을 일정한 비율로 나눠 가지며 합의를 통해 책 출간과 잡지의 방향을 끌고 나가는 유례가 없는 출판 집단이다. 세대가 바뀌면서 감수성과 안목도 달라지게 마련인데 이들은 자연스럽게 중심의 바통을 넘기면서 5세대까지 이르렀다. 문학권력 논란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대에서 자신들만의 색깔을 분명하게 유지해온 것도 이런 시스템 덕분이다. 이들의 빛깔에 대한 시비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동인집단’이라는 것 자체가 본디 배타성과 선명한 주장을 담은 속성을 지닌 것이라면, 시비를 걸기보다 더 많고 다양한 ‘문학과 지성’들이 산포되기를 바라는 게 온당할 터이다. 김현은 모두에 인용한 ‘한국문학의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맺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새것 콤플렉스로 인한 성급한 이념형의 성질이 아니라, 이념형의 설정이 얼마나 어려운가, 왜 어려운가 하는 것을 깨닫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이념형을 추출해 내려는 노력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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