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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댓글을 다는가? 누가 진실을 아는가?

입력 : 2015-11-29 20:23:44 수정 : 2015-11-29 20: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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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장편소설 ‘댓글부대’ “그러니까 총 세 군데 조직 출신 사람들이 모인 거네요? 국가기관, 경제단체, 그리고 수수께끼의 민간인들, 이렇게? 네 군데죠. 저희도 있었으니까. 팀-알렙 말입니다. 저희 전에도 같은 일을 했던 온라인 PR업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자기들끼리는 그 모임을 부르는 이름이 따로 없었습니까? 합포회라고 불렀습니다.”

‘합포회’라고 불리는 조직이 있다. 장강명(40)이 올해 4·3평화문학상을 수상한 장편소설 ‘댓글부대’(은행나무)에 나오는 가상 조직이다. 이들은 기발한 방법을 동원해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전사들이다. ‘팀-알렙’의 구성원 세 명이 재계의 거두로 짐작되는 회장님의 청탁을 받아 작업을 수행한다. 이들을 지원하는 팀장, 본부장은 따로 있다. 회장님은 진정성 넘치는 우국충정으로 나라를 좀먹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척결하기 위해 ‘푼돈’을 아끼지 않는다.

수림문학상, 제주 4·3평화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을 휩쓸며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 소설가 장강명. 그는 “이 소설 ‘댓글부대’는 전적으로 허구인데 간혹 현실에 실제로 있는 인물이나 단체, 인터넷사이트의 이름이 등장하지만, 그 묘사는 모두 제가 지어낸 것”이라며 “익숙한 이름들을 섞어 그럴듯한 분위기를 내고 싶었던 소설가의 욕심을 너그러이 봐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후기에 썼다.
은행나무 제공
팀-알렙이 처음 수주한 작업은 ‘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렸다는 노동자 이야기를 소재로 만든 영화가 ‘자연스럽게’ 배척당하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이 정도야 간단했다. 대한민국 노동 현실을 바꾸자는 영화를 만든 제작자가 정작 영화를 만드는 데 동원된 노동자들의 임금을 제때 주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 되는 것이었다. 개연성은 있지만 정확한 사실은 아니었다. 코너에 몰린 제작사 측은 급기야 실체도 없는 대상에게 모든 임금을 다 지불했노라며 불을 꺼보려 했지만 영화는 ‘폭망’했다. 일간지 기자 임상진과 팀-알렙의 구성원 중 한 명인 ‘찻탓캇’의 녹취록을 중간에 끼워넣고 그 내용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소설은 흘러간다.

시험을 통과한 팀은 ‘저항도 연대도 빠르고 쿨하게’를 모토로, 작지만 끈끈하게 뭉치는 인터넷 커뮤티니 파괴를 다음 작업으로 수주한다. 여성들만 까다로운 시험을 거쳐 가입이 가능한 ‘은종게시판’은 광우병 시위 때 유모차 부대를 조직했던 커뮤니티다. 팀은 본부장이 전해준 수십 개의 유령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활용해 끈끈한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순식간에 초토화시킨다. 이 사이트에서 주장하는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을 이용해 회원들이 올리는 글에 토를 달면 내부에서 분열이 생기면서 급기야 막말이 오가고 ‘병림픽’(병신올림픽)이 펼쳐진다. 환멸을 느낀 회원들은 떠나고 커뮤니티는 황폐해진다. 간단하게 말해서 믿기 어렵겠지만 소설을 읽어보면 누구나 SNS 공간에서 느꼈을 법한 풍경이 생생한 설득으로 다가온다.

“이게, 인터넷 커뮤니티는 하나하나가 생태..., 생태계거든요. 딸꾹! 어떤 섬의 숲은 산불에 잘 버틸지 몰라도..., 딸꾹! 쥐 몇 마리만 풀어 놓으면 거기 동물들을 다 말려죽일 수 있습니다….”

팀의 일원인 ‘삼궁’이 작업 성공을 축하받는 룸살롱에서 만취한 상태로 자랑스럽게 떠벌이는 대사다. 신뢰를 받은 삼궁이 회장님을 알현하는데 그 회장님은 인터넷에 준동하는 ‘빨갱이’들이 나라를 망친다고 눈물까지 흘린다. 그의 가장 큰 걱정은 이미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유모차 부대’ 세대는 놔두더라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그들에게 ‘감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소설의 후반부는 팀-알렙이 어떻게 청소년들을 상대로 SNS작업을 벌이는지에 집중된다. 회장님 한 말씀 들어보자.

“그래! 그거야. 아이들의 그 싱싱한 뇌가 선생들에게 인질로 잡혀 있어. 대한민국의 선생들이 어떤 자들이냐. 패배자들이야. 정말 아이를 가르치고 싶어서 그 직업을 택한 인간은 그중 1퍼센트도 안 돼. 나머지는 다 교직원 연금 때문에 임용고시를 친 놈들이야. 고작 서른도 안 된 나이에 모험을 포기하고 안주를 택한 겁쟁이! 비겁자! 위선자들! 학교 밖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쟁이들!”

단지 소설 속 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에는 현실의 어떤 부분들과 겹치는 게 많아 씁쓸한 대사다. 팀-알렙 일원과 긴 녹취록까지 작성해가며 1면부터 3개면에 걸쳐 ‘특종’을 터뜨린 임상진 기자, 그는 어찌 됐을까. 그해의 기자상이라도 받았을까.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소설가 장강명의 핍진한 현장 묘사가 압권이다. 과정이 흥미로운 소설이니 결말을 이야기해도 크게 누를 끼치지는 않을 것 같다. 엄청난 ‘오보’를 터뜨린 것으로 몰려 폐인이 된 임 기자와 증거 인멸을 위해 수장당한 팀원은 모두 정교한 프로그래밍의 일회용품이었을 뿐이다. 장강명은 “전적으로 허구인 이 소설에 나오는 어떤 견해도 찬성하지 않고, 어떤 인물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 “이 나라를 비판하면서 사랑하는 작가가 되어라, 그런 소설을 쓰라”는 의미로 상을 준 것 같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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