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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만에 공개된 네미로프스키 유작소설 영화화 '스윗 프랑세즈'

입력 : 2015-11-25 20:26:39 수정 : 2015-11-25 20: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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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음악이 나를 항상 그에게 데려가요"

‘스윗 프랑세즈’는 지금 사귀는 그(그녀)에 대한 당신의 감정이 진정한 ‘사랑’인지, 아니면 단순한 ‘섹스’인지를 나타내주는 리트머스지 같은 영화다. ‘인스턴트 러브’를 즐기는 시대라서 그런지 영화 속 ‘지켜주는 사랑’이 더욱 그립다.

독일이 1940년 6월 프랑스를 점령하자 파리의 피난민들은 뷔시라는 작은 시골 마을로 몰려든다. 적이라는 입장으로 만나게 된 프랑스 여인 루실(미셸 윌리엄스)과 독일 장교 브루노(마티아스 쇼에나에츠)는 시선 한 번이 조심스럽고 말 한마디가 금기시되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서로에게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 다가갈 수도 멈출 수도 없는 비밀스러운 로맨스를 시작한다.

주인공 루실은 나약한 여인이지만 결국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강인한 인물로 변한다. 영화 ‘스윗 프랑세즈’는 전쟁이 어떻게 사람을 변하게 하는지 보여준다. 진실되고 숭고한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 사실 사랑하는 대상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연애’를 착각한다. 연애는 섹스를 동반한 격정적 감정일 뿐이다. 연애를 하면서 자신은 사랑을 하고 있다고 그냥 편리하게 생각해 버린다. 그래서 이러한 이기적 사랑은 그다지 지속되지 못한다. 사랑은 아무런 조건 없이 그(그녀)에게 꽂히는 것이다. 

프랑스로 망명한 러시아 출신 유대인 작가 이렌 네미로프스키의 미완성 유작 ‘스윗 프랑세즈’가 영화의 원작이다. 네미로프스키는 구상했던 5부 중 1부 ‘6월의 폭풍’과 2부 ‘돌체’까지 완성한 후 1942년 나치에 붙잡혀 39세의 나이에 아우슈비츠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50년이 지난 후 그의 딸 드니즈 엡스타인-도플은 어머니의 노트를 조심스럽게 읽어 나갔고, 62년 만인 2004년 세상에 공개해 감동과 충격을 안겼다. 당시 프랑스 문학상 르노도상은 생존작가에게만 상을 준다는 관례를 깨고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뽑았다. 1부 ‘6월의 폭풍’은 파리가 함락되기 전 앞다퉈 피난길에 오른 다양한 인물들의 행로를 추적한다. 각양각층의 인간군상은 전쟁에서 비굴하고 파렴치하게 살아남는 일에만 몰두한다. 작가는 이를 냉정하게 묘사하면서도 한 부부가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며 시련을 묵묵히 견디는 모습을 통해 독자에게 온기를 전달한다. 2부 ‘돌체’는 독일군이 점령한 한 시골 마을을 무대로 당시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나치에의 협력과 저항을 둘러싼 갈등을 증언한다. 집단 광기의 전쟁이 개인들의 관계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드러낸다. 영화는 2부에 해당한다.

“인간의 본성을 보려면 전쟁을 하라”는 말처럼 전쟁은 일상 속 사소한 믿음마저 앗아간다. 영화는 외세의 점령이 성별과 계급 간 갈등을 일으키는 부분을 조명한다. 적군의 진주는 주민들 사이에 내재된 갈등을 끄집어내 계급에 따라 서로 맞서게 만든다. 불안이 야기되고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비밀스럽고 숨막히게 전개되는 러브신은 보는 이들에게 상황 자체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두 남녀의 섬세한 감정선을 고스란히 따라가도록 만든다. 영화 속 루실과 브루노의 사랑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피아노다. 점령군의 자격으로 루실의 피아노방에 머물게 된 브루노는 매일 밤 자작곡을 연주한다. 곡 제목 또한 ‘스윗 프랑세즈’다. 전쟁이라는 잔인한 일상 속에서 지켜주고 싶은 여인을 위해 이 남자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만든 곡이다.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닌 그 자체로 완성도 있는 피아노곡을 만들고자 했다는 그의 말처럼, 선율은 실로 잊지 못할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사랑이란 감정을 단 한 차례도 드러내지 못했다. ··· 그의 음악은 나를 항상 그에게 데려간다”는 여주인공의 마지막 독백이 음악과 함께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메릴린 먼로의 환생이라는 극찬을 받은 영화 ‘메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은 미셸 윌리엄스가 음악을 공부한 프랑스 여인 루실로 나온다. 그는 억압적인 시대 상황뿐만 아니라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이자 귀족이라는 신분만으로 마을 사람들의 감시와 질투를 받아야만 했던 젊은 여인의 내밀한 욕망을 ‘제대로’ 표현해 낸다. 착하고 순종적이었던 젊은 여성이 사랑을 통해 자유에 눈 뜨고 마침내 더 진취적이고 강인한 여성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는 루실의 성격을 대변하기 위해 ‘절제된 연기’를 펼쳐보인다. 루실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모든 감정들은 반드시 진실해 보여야 하는 탓에 메이크업조차 단순화했다. 모든 여배우가 더 아름답게 보이길 원하지만, 그는 루실의 꾸밈 없고 화장기 없는 얼굴을 오히려 편하게 받아들인다. 관객들이 그에게 몰입하는 이유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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