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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마을 구조 그대로… ‘온고지신’으로 일군 창조도시

입력 : 2015-11-16 06:00:00 수정 : 2015-11-16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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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지대, 지역문화를 살려라] (4회) 일본가나자와, 전통 속에 미래를 담다(끝) “조례에는 벌칙 규정이 없습니다. 우리 시에서는 ‘부탁하는 조례’라고 하죠.”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 시청에서 최근 만난 미조구치 레이지 역사건조물정비과장은 기자에게 전통문화·환경·시설 등의 보존을 위해 제정한 각종 조례를 설명하며 얼굴 가득 자부심을 드러냈다.

기자: “극단적으로 말해 지키든 안 지키든 상관이 없다는 건가요?”

미조구치: “그렇죠.”

기자: “벌칙이 없어도 잘 지켜지나요?”

미조구치: “주민을 대표하는 의회에서 결정한 내용이잖아요. 주민 스스로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든다는 자세를 갖도록 유도했기 때문에 잘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나자와는 지역문화를 보존하며 발전을 이끈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도시다. 새로운 문화예술을 도입, 창조하는 시도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미조구치 과장의 설명은 가나자와의 성공이 시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임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가나자와는 중심도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나가마치 무가 가옥 지역처럼 전통문화를 오롯이 간직한 장소를 만날 수 있다.
가나자와는 북서쪽에 있는 가나자와역에서부터 남쪽으로 뻗은 큰 도로를 축으로 도심이 형성되어 있다. 각종 기업, 대형 쇼핑센터, 호텔, 언론사 등의 주요 건물이 중심도로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지역 전통문화는 중심도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만나게 된다.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인 겐로쿠엔과 가나자와성 공원이 맞붙어 있고, 나가마치 무가(武家) 가옥 지역이 길게 형성되어 있다. 일본 특유의 섬세함과 깔끔함이 오롯이 드러나 관광객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가나자와의 도시계획은 이런 건물, 도로 구조 등을 보존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에도시대에 제작된 지도를 보면 당시와 현재 가나자와가 기본적인 구조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전통문화에 기반한 도시발전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1960년 초반이었다. 다른 도시들이 산업화를 지향하며 양적인 팽창을 거듭해 가던 시기였지만 가나자와는 다른 미래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1968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전통환경 보존조례’를 제정한 것은 이런 지향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후 ‘옥외광고물조례’, ‘용수보존조례’, ‘사지풍경보조례’ 등이 잇달아 만들어졌다.

현립전통산업공예관의 전시품들은 가나자와의 기반산업인 전통공예의 저력을 보여준다.
미조구치 과장은 “전통환경 보존조례는 기존의 건물과 새로 생긴 건물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등에 관한 고민이 담겨 있다”며 “중앙정부에서 이후 비슷한 내용의 경관법을 만드는데, 가나자와의 조례 제정이 자극이 되어 나온 결과였다”고 소개했다.

기간산업 역시 전통에 기반하고 있다. 가나자와는 도자기, 염색, 금박, 칠기 같은 전통 공예에 강점을 가졌고, 산업화가 진행되는 시기에도 집중적으로 육성, 발전시켰다. 2011년 기준으로 22개 업종의 전통공예산업이 있고, 사업체 수는 900여개, 종업원 수는 3000명에 달한다. 전체 사업장의 약 20%, 종업원의 약 6%에 해당하는 수치다. 사업장은 대개 작은 규모의 공방인으로 대부분 도심부에 밀집해 있어 시너지효과를 내는 한편 매력적인 도심 경관을 창출하고 있다.

2004년 개관한 21세기 미술관은 가나자와 주민뿐만 아니라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다.
전통 보존에 방점에 찍혀 있긴 하지만 가나자와의 도시계획에는 현대적 발전, 새로운 문화의 창조란 개념도 중시된다. ‘21세기 미술관’은 “새로운 문화전통이 창조되는 상징적 거점”이다.

21세기 미술관은 2004년 주요 관공서가 교외로 이전하면서 도심 공동화 가능성이 제기되자 2004년 10월 개관했다. 전통공예·예능에 현대예술을 융합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주로 1980년 이후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각국 예술작품을 수집, 전시하고 있다. 개관 1년 만에 시인구(45만여명)의 3배가 넘은 158만명이 다녀갔고, 지금까지 경제적 파급효과는 300억엔(2800억여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가나자와시는 이곳을 중심으로 패션산업과 디지털 콘텐츠산업을 지원하는 패션산업 창조기구를 설립하기도 했다. 2010년 10월 개최된 ‘오샤레 메세’(가나자와 패션산업 박람회)는 ‘일본의 지혜가 최첨단’이라는 주제 아래 문화의 산업화, 산업의 문화화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곳에서 만난 시민 나가타 미호는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 삼아 올 때도 많다”며 “전시장이 닫힌 후에도 카페 같은 곳은 문을 열고 있기 때문에 친구들과 약속장소로도 자주 활용한다”고 말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조광호 연구원은 “가나자와는 시민의 힘을 모아 도시발전의 동력을 만들고,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어떻게 미래지향적인 것으로 전환해 다음 세대에 전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이런 작업들이 오랜 시간 지속돼 일본의 대표적 창조도시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의 도시 정책도 이미 가진 것을 창조적으로 활용하고, 지속가능한 문화재생 정책을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나자와(일본)=글·사진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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