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정상회의로 어수선하던 지난 1일 필리핀에서 비보(悲報)가 날아들었다. 지난 1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에서 이슬람 반군 세력에 납치됐던 70대 홍모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민다나오섬 잠부앙가 지역에 거주하는 아들의 집을 방문했다가 괴한에게 납치된 지 열 달 만이다. 이로써 올해 들어 필리핀에서 사망한 한국인은 10명으로 늘었다.
지난 4월 필리핀의 한국 대사관과 한인 총연합회는 한인 식당·여행사가 밀집한 마닐라 말라테 지역에 한인자율 파출소를 설치했다.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앙헬레스와 세부에도 자율방범대가 있지만, 파출소 형태로 운영되는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 외교부 제공 |
◆현금부자 알려진 한국인 범죄 대상
필리핀에서 납치·강도 등 한국인 상대 강력 범죄 발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3년 13명, 2014년 10명 등 최근 해마다 10여명의 한국인이 살해됐다. 필리핀에서는 한국인을 포함해 외국인을 타깃으로 한 강력 범죄가 활개치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 17명, 인도인 12명, 일본인 7명이 강력범죄로 살해됐다. 장기체류자 1만명당 강력범죄로 인한 피살자 수는 중국인 5.7명(장기체류자 3만명), 일본인 3.9명(〃 1만8000명), 인도인 1.7명(〃 7만명), 한국인 1.1명(〃 8만8000명)이다. 한국인이 다른 국적자에 비해 장기체류자 대비 범죄 희생률이 유독 높은 것은 아니다.
필리핀에서 강력 범죄가 빈발하는 이유로는 최소 12만원 정도만 주면 청부살인이 가능한 현지의 부실한 치안 상황과 불법총기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최근 방문한 기자에게 현지 경찰 당국은 수도 마닐라의 경우 경찰관 1명이 약 1600명의 주민을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 전국 경찰관 1인당 담당 주민 수가 469명, 서울만 따로 보면 1인당 386명이다.
100만정에 달하는 필리핀 전역의 불법총기는 강력범죄를 부채질하고 있다. 6년째 마닐라에서 거주하고 있는 회사원 김모(39·여)씨는 “살인청부는 최소 5000페소(12만원)부터 가능하고, 권총 구입은 1만페소(24만원)면 된다는 말이 있다”며 “살인의 경우, 목적 달성이 어려울수록 청부 가격이 더 올라간다”고 말했다. 마닐라 곳곳의 식당과 쇼핑몰 등에서 무장 사설경호원이 문앞을 지키는 이유다. 이들은 건물에 들어가려는 사람의 소지품을 일일이 확인해 범죄에 악용될 흉기가 없는지 확인한다.
한국인의 경우엔 현금을 많이 소지하고 있다는 현지인의 인식이 강력 범죄의 표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마닐라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모(26·여)씨는 “필리핀 사람들은 ‘한국인은 다 부자’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인들이 명품 브랜드를 즐겨 입거나 거리에서 돈을 세는 등의 위험한 행동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교민, 안전불안에 관광객 감소 이중고
현지 교민 사회는 ‘나도 강력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한국인 관광객 감소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2009년부터 의료기기 사업을 하는 이모(46·여)씨는 15, 18세 두 아들을 매일 자가용차에 태워 10분 거리의 학교에 등하교시키고 있다. 이씨는 “도저히 불안해서 신경을 안 쓸 수 없다”며 “다른 필리핀 학부모도 대부분 그렇게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매체에서 필리핀의 강력 범죄가 부각된 뒤 관광객이 감소하면서 여행사나 식당, 숙박업으로 생계를 꾸리던 교민 경제에도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인 대상 여행사를 운영하는 박모(29)씨는 “확률로 따지면 적은 일인데 한국에서는 굉장히 자주 일어나는 일처럼 보도되면서 10∼15년 여행사를 운영했던 분들도 힘들어한다”고 하소연했다. 전일성 필리핀 한인총연합회 수석부회장은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의 경우, 단순 노동을 통해서 경제생활을 할 수 있지만, 필리핀은 (관광·요식업 외에) 할 수 있는 사업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애로를 털어놨다.
또 영·미나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어 몰려들었던 어학 연수생도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부터 마닐라에서 어학원을 운영 중인 이모(48·여)씨는 “학생이 줄면서 임차료·관리비를 내기 어려워 문닫은 어학원이 이 근처에만 6곳”이라며 “최근 20∼30명이 연수 예약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정부, 교민·관광객 안전대책 부심
정부는 강력범죄가 빈발하는 잠부앙가 지역을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3일 “필리핀 각 지역에 대한 여행경보 단계를 재점검하고 잠부앙가 지역을 여권법상 여행금지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여행금지국가 또는 지역을 방문하려면 사전에 정부로부터 별도로 여권사용 허가를 받아야 하며 무단 입국 시 여권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현지 교민 사회는 ‘나도 강력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한국인 관광객 감소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2009년부터 의료기기 사업을 하는 이모(46·여)씨는 15, 18세 두 아들을 매일 자가용차에 태워 10분 거리의 학교에 등하교시키고 있다. 이씨는 “도저히 불안해서 신경을 안 쓸 수 없다”며 “다른 필리핀 학부모도 대부분 그렇게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매체에서 필리핀의 강력 범죄가 부각된 뒤 관광객이 감소하면서 여행사나 식당, 숙박업으로 생계를 꾸리던 교민 경제에도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인 대상 여행사를 운영하는 박모(29)씨는 “확률로 따지면 적은 일인데 한국에서는 굉장히 자주 일어나는 일처럼 보도되면서 10∼15년 여행사를 운영했던 분들도 힘들어한다”고 하소연했다. 전일성 필리핀 한인총연합회 수석부회장은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의 경우, 단순 노동을 통해서 경제생활을 할 수 있지만, 필리핀은 (관광·요식업 외에) 할 수 있는 사업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애로를 털어놨다.
◆정부, 교민·관광객 안전대책 부심
정부는 강력범죄가 빈발하는 잠부앙가 지역을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3일 “필리핀 각 지역에 대한 여행경보 단계를 재점검하고 잠부앙가 지역을 여권법상 여행금지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여행금지국가 또는 지역을 방문하려면 사전에 정부로부터 별도로 여권사용 허가를 받아야 하며 무단 입국 시 여권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지난 4월에는 마닐라 말라테의 한인 식당·여행사 밀집지역에 한인자율파출소가 문을 열었다. 한국대사관과 한인총연합회가 총 35만페소(850만원) 들여 설치한 것이다. 이 파출소는 말라테 지역 7개 동을 네 구역으로 나눠 현지 경찰관이 주야에 각 2명씩 순찰하다가 한국인이나 한국인 관련 업체에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한인회와 공조한다. 김대희 영사는 “한인파출소가 세워지며 이 지역 범죄는 상당히 줄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교민이나 관광객이 체류 중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영사콜센터(82-2-3210-0404) 등을 통해 당국에 알려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해외에서 일어난 사건의 1차적 치안관할권은 주재국 정부에 있어 사건·사고가 접수되면 대사관 등을 통해 주재국 당국에 알린다”며 “경미한 사건의 경우 현지 경찰이 해결하고, 중요 상황은 대사관과 현지 치안 당국이 협조해 처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마닐라·서울=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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