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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도 작가들도 싱글벙글… 여기는 '별장'입니다

입력 : 2015-11-01 19:41:21 수정 : 2015-11-10 14: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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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시대, 지역문화를 살려라] 광주광역시 대인예술시장
시장 속 갤러리·벽화·공예전… 지역문화 자생발전의 표본
광주시 동구 대인예술시장에 어스름이 깔리자 감탄사가 나왔다. 갓난아기를 안은 부부, 여고생, 연인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아기자기한 좌판들은 무뚝뚝한 시장 골목을 점령했다. 이불집, 청과가게, 어물전이 다닥다닥 있던 자리에는 직접 그린 액자, 장신구, 도자기인형 같은 수공예품이 놓여졌다. 한 편에서는 거리 공연이 열렸다. 밴드를 에워싼 시민들은 시장의 북적임도 잊은 채 음악에 빠져들었다. 저녁 7시부터 환하게 불 밝힌 골목은 밤의 마법에 걸린 듯했다. 지난달 24일 찾아간 시장은 예술과 젊음의 거리였다.

24일 광주시 동구 대인예술시장의 야시장 ‘별장’을 찾은 시민이 판매자가 직접 만든 수공예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지역 문화에 속속 희망이 자라고 있다. 서울에 비해 여전히 자본·인력·시설 모두 부족하지만, 각 지역에서 움튼 ‘풀뿌리 문화’들이 열매를 맺고 있다. 대인예술시장은 지역 문화, 자생적 문화 발전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외양은 언뜻 보면 평범하다. 삭막한 지붕, 건조한 간판, 삶에 찌든 건물이 전국 어디에나 있는 재래시장 형색 그대로다. 그러나 골목 안으로 발길을 옮기면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미술가들의 작업실, 작은 갤러리, 공예점, 벽화들이 낡은 건물 곳곳에 자리해 있다. 현재 상주 작가는 30명이 넘는다. 이곳에서는 시장과 예술, 생활과 문화, 상인과 미술가가 공존한다.


대인예술시장에 미술가들이 찾아들기 시작한 건 2008년부터다. 당시 대인예술시장은 구도심 침체로 350여개 점포 중 반 이상이 빈 상태였다. 1959년 문을 연 대표적 재래시장이지만, 공공기관이 이전하고 백화점, 대형마트가 들어오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미술과 지역의 관계를 고민하던 젊은 작가들이 시장을 주목했다. 박성현, 윤남웅씨 등이 이곳에 공동작업장 ‘미나리’를 만들었다. 2008년 광주비엔날레 측의 제안으로 시장 곳곳에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복덕방 프로젝트’를 벌였다. 예술과 시장의 결합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광주시 인디 밴드 ‘센치한 버스’가 24일 ‘별장’서 거리공연에 한창이다.
시장은 곧 전국적 명소가 됐다.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상인들도 예술에 눈을 떴다. 노래를 배우고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생겨났다. 2011년부터는 야시장 ‘별장’(별밤에 열리는 시장)이 열렸다. 거리에서 음악과 미술을 나누고, 아마추어·전문 예술가들이 손으로 만든 물건을 판매했다. 2011년 첫 회 약 5000명이던 방문객은 현재 하루 1만여명으로 불어났다. 올 한해 누적 방문객은 25만명에 달한다. 시민 130∼140개 팀, 상점 70∼80곳, 예술가 20여명이 판매자로 참여한다. 시민 판매자들은 하루 평균 40만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다. ‘별장’ 프로젝트 정삼조 총감독은 “‘별장’은 시민, 예술가, 상인 모두 즐거운 광주 밤문화의 꽃이자 축제 무대”라며 “조사해 보니 광주 외부지역에서 온 방문객도 15%가량 된다”고 밝혔다. 이날 ‘별장’에서 만난 연인 김성민·유여진씨는 “와본 적 없던 시장인데 야시장이 열린 뒤 네 번째 찾고 있다”며 “평소 데이트래야 밥 먹고 영화 보는 정도인데 야시장에 오면 공연이 열리고 구경 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한 데다 비용까지 저렴해 즐겁다”고 말했다.

야시장을 찾은 어린이들이 한 미술작가의 설명을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경청하고 있다.
대인예술시장을 성공시킨 일등 공신은 자발적으로 모여든 개성 있는 예술가들이다. 장터 한쪽에 마련된 ‘한평 갤러리’는 작가들에게 전시공간 한 평을 무료로 빌려준다. 벽 하나가 완전히 뚫린 공간이라 누구나 지나가며 미술품을 볼 수 있다. 주차장 건물을 개조한 창작 스튜디오 ‘다다’에는 10명이 넘는 미술가들이 입주해 있다. ‘미테 우그로’, ‘D.A.오라’ 같은 대안공간(미술관, 갤러리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생적 미술 공간)도 작가들에게 사랑받는 아지트다.

시민들이 손글씨로 직접 꾸민 ‘한평 갤러리’ 전시실
대인예술시장 별장 프로젝트 제공
D.A.오라에서 필리핀·한국 교류전을 마친 회화작가 서영기씨는 “대인예술시장은 임대료도 저렴하지만 작가들이 자주 모여 토론하고 생산적으로 교류하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며 “시장 생태계 자체가 매력적”이라고 전했다. 서씨는 이어 “이곳은 예술의 문턱을 낮추는 데도 기여했다”며 “다른 전시에서는 완성작을 일방적으로 관람하지만, 여기에서는 전시를 보고 마음만 먹으면 바로 작업현장의 작가를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별장’ 기간 시장 주변 예술가들은 솜씨를 발휘해 아름답게 꾸민 야외카페 ‘도글도글’을 연다. 골목길에 있는 ‘메이커스 스튜디오’에서는 수작업 작가들이 3D 프린터부터 안전벨트를 재활용한 가방까지 직접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리공연에 참여하는 음악인들은 하루 다섯 팀 정도다. 이날 공연한 광주 인디밴드 ‘센치한버스’의 기타리스트 박채빈씨는 “연주하고 있으면 어르신들이 수고한다며 닭꼬치, 떡갈비, 음료 같은 걸 준다”며 “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따뜻함과 푸근함이 있다”고 했다.

시장이 활성화하는 데는 예술가의 역할을 이해하는 상인들의 존재도 힘이 됐다. 정 총감독은 “상인들은 ‘예술가들이 시장을 떠나면 안 된다’고 말할 정도로 7년간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와 상업의 논리가 너무 다르다보니 시장에서 문화 사업을 벌이면 다른 지역에서는 ‘왜 돈 안 되는 짓을 하냐, (문화 지원에) 헛돈 쓰느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나눠주고, 간판이나 바꿔 달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시장을 성장과 침체를 반복하는 생물로 보고 다양한 변화를 모색한 것도 중요했다. 대인예술시장은 지난 7년간 상주 작가의 수부터 상인들의 참여 정도까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시장이 살아나면서 월세가 오르고 작가들이 이동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정 총감독은 “유형의 자산들은 변하지만, 무형의 자산은 아직도 시장에 꽉 차 있기에 작가들이 떠나지 않고 있다”며 “대인예술시장은 계속 진화해왔고 지금도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광주=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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