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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北 작가 함께 北 인권문제 소설로 고발

입력 : 2015-10-29 20:41:10 수정 : 2015-10-29 20: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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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후명 등 공동 소설집 ‘국경을 넘는 그림자’ 펴내
남북한 작가들이 북한 인권을 말하는 공동 소설집을 펴냈다. 남쪽 작가 7명(윤후명 이청해 이평재 이성아 정길연 방민호 신주희)과 북한 출신 작가 6명(윤양길 이지명 도명학 설송아 김정애 이은철) 등 남북작가 13명이 펴낸 단편집 ‘국경을 넘는 그림자’(예옥)가 그것이다.

남쪽 대표작가 격인 윤후명은 ‘핀란드역의 소녀’에서 러시아 여행을 갔다가 폴란드 비자를 받기 위해 핀란드역을 서성이던 기억을 담아냈다. 그곳에서 결국 비자를 받아내지는 못했지만 북에서 도망친 듯한 남녀를 대신해 표를 사주었던 에피소드를 떠올린다. 작가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걸린 켄지에르스키라는 폴란드 화가의 작품 ‘워비치의 소녀’를 마주보며 독백을 한다. 흰 스카프를 두른 푸른 눈의 그 소녀는 세상을 수줍고도 용감하게 바라보는 듯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 소녀와 탈북 남녀의 이미지가 겹치는데 워비치의 소녀는 푸른 눈을 깜박이며 작가에게 손을 흔들면서 “이제는 모두가 자유를 이야기해도 좋을 시간”이라고 안부를 전한다.

소설가 윤후명이 북한 인권을 말하는 단편 ‘핀란드역의 소녀’에서 모델로 삼은 폴란드 화가 켄지에르스키의 ‘워비치의 소녀’.
이어지는 북쪽 출신 작가 윤양길의 ‘꽃망울’은 국경 도시를 떠도는 꽃제비 이야기다. 철이가 살던 곳을 떠나 국경도시로 온 것은 그곳이 사는 형편이 괜찮다는 소문 때문이었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낯선 꽃제비(방랑아)라고 경계하고 가까이 오면 파리 쫓듯 쫓아버렸다. 잠은 공동묘지에서 잔다. 철이는 고향에서 같이 지내던 여자애 봄이를 만나 살뜰하게 거둔다. 꽃제비 소녀는 김일성 생일날 거리에서 팔기 위해 산에서 꽃을 꺾다가 독초를 잘못 씹어 죽음에 이른다. 철이도 따라 죽었다. 그 아이들은 통일이 되면 남조선에 있다는 제주도라는 곳에 가서 어부와 해녀가 되는 게 꿈이었다.

다시 남쪽 작가 이청해는 ‘어디까지 왔나’에서 구사일생 남쪽으로 온 여자 금화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금화를 훈이라는 남자가 좋아하는데 노래방에 가서 웃음을 팔고 오는 그네를 타박하자 금화는 울부짖는다. 남한 사회에 적응해 살아가야 하는 많은 새터민들의 고통이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대사다. 그네는 “어쩌다가 죽지 못했던 것뿐”이라고 서럽게 항변한다. 

“그래, 난 무식하고, 북한에서 왔고, 돈 없고, 과거 흉하고…… 다른 데 아무 데도 취직이 되지 않아. 난 오십만 명이나 굶어죽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었던 ‘고난의 행군’ 시절에 북한에서 자랐고, 꽃제비 노릇을 했고, 두만강을 건너다 엄마와 언니가 죽었고,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인신매매 조직에 팔려갔고, 목숨 걸고 그 생활에서 도망쳤지만 믿었던 아줌마가 또다시 돈을 받고 나를 팔아 찢어지게 가난한 중국 농부에게 갈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아들을 낳았지. 병원에도 못 가고, 탯줄도 나 스스로 잘랐어. 그게 다 열여섯에서 스물한 살 사이에 일어난 일이야. 난 매일매일 살려고 했을 뿐이야. 죽으려고 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 어쩌다가 죽지 못했던 것뿐이라고! 내가 뭘 잘못했어? 어떻게 하란 말이야?”

북쪽에서 온 작가 도명학은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창작과를 수료했다. 그는 ‘책도둑’에서 기막힌 북의 현실 한 대목을 소개한다. 도작가동맹위원장이 어렵사리 모은 책을 도둑 맞고 사색이 되는데 그 책을 훔친 장본인은 알고 보니 그의 아내였다. 남편이 밥도 안 먹고 잠도 이루지 못한 채 보름이 지나자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실을 동료에게 전하는 작가의 푸념이 애처롭다. “들어보니 그 책들을 팔길 잘했지 안 그랬으면 다 굶어죽었을 뻔했더군. 세상이 완전 개판 됐어. 에에, 더러워서 원!”

이번 남북한 작가 공동소설집을 기획한 소설가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삼수갑산’에서 월북한 백석 시인의 말년을 그리며 남북한 양쪽 체제의 글쓰기 환경을 성찰한다. 방 교수는 “백석이 말년에 글을 쓰지 않은 것은 체제의 억압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진정성을 유지할 글을 쓸 수 없는 환경에 대한 절망 때문이었을 것”이라면서 “남쪽도 발표 지면은 넘쳐나지만 정작 진정성이 충만한 글들은 얼마나 되는지 되돌아볼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쪽 작가들이 남쪽 문인들의 글쓰기 방법을 배우려고 노력하는데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문장이 정갈하고 다채로운 어휘를 구사해 남쪽 작가들이 배울 측면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번 작업은 서울대 통일기반구축사업으로 서울대 통일평화원구원이 주관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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