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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도 추상적으로 즐길 수 있다”

입력 : 2015-10-25 20:47:19 수정 : 2015-10-25 20: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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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사건없이 4시간30분간 공연… 이야기 중심의 기존 연극에 반기
‘이미지극의 대가’ 로버트 윌슨(74·사진)이 종이에 숫자와 알파벳을 써내려갔다. 자신의 혁명적 작품 ‘해변의 아인슈타인’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계도를 그리듯 보여줬다. 23일 광주광역시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한국 언론과 만난 윌슨은 ‘친절한 선생님’ 같았다. 윌슨은 “오페라도 추상적·수학적으로 즐길 수 있다”며 “내 작품을 아방가르드라고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주제가 계속 변주된다는 면에서 굉장히 전통적·고전적”이라고 강조했다.

“회화는 이야기 없이 추상적이어도 충분히 즐기는데, 추상적인 오페라나 연극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사람은 추상적으로 사고합니다. 해질녘 노을에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얼마든지 감상할 수 있잖아요.”

이미지극의 대가 로버트 윌슨 ‘해변의 아인슈타인’
윌슨은 20세기 공연 예술의 관념을 뒤엎고 뉴욕 아방가르드 연극을 이끈 최고의 연출가다. 그는 이야기 중심의 기존 연극에 반기를 들고 상징적 이미지들로 무대를 채웠다. 1976년 작곡가 필립 글래스와 만든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 역시 별다른 사건이 없다. 단순한 화음을 반복하는 글래스의 작품처럼 이미지들이 되풀이되고 변주된다. 그는 “서구에서 교육받을 때 우리는 항상 이성과 논리를 따지지만 제 작품은 동양의 선과 비슷하게 이성이나 인과관계가 없는 이야기로 진전된다”고 말했다.

흥미를 자극하는 사건 없이 4시간30분간 진행되다보니 이날 공연에서는 관객들이 수시로 자리를 떴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는 긴 공연 시간에 대해 “나는 30초짜리 작품을 만든 적도 7일짜리 작품을 만든 적도 있다”며 “7일짜리 작품에서는 실제 삶과 연극에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샐러드를 만들고 셔츠를 다리는 시간 자체가 연극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초창기의 나는 공중으로 뛰어올라 발끝으로 서는 것 같은 기술이나 스펙타클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전했다.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초연 후 40년간 세 차례 수정됐다. 2012년 새로 다듬어 공연한 작품은 한국 공연을 마지막으로 폐기된다.

“이 작품은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모차르트의 오페라 같지 않죠. 수백개가 넘는 내 작품은 미래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찰나적인 사건인 거죠. 유성처럼요. 그리하여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기억으로만 남을 겁니다.”

광주=송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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