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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신임' 던진 문재인, 2015년 루비콘 강을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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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9-12 08:00:00 수정 : 2015-09-14 14:4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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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날은 추웠을 것이다.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한 알프스 산맥에는 하얀 눈이 하늘을 온몸으로 맞으려는 듯 배꼽을 보이고 드러누워 있었을 것이다. 추위에 배고팠던 검독수리는 먹이를 쉬이 찾지 못하고 꿩이나 해오라기를 찾아 배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기원전 49년 1월12일, 이탈리아의 북방 경계선이던 루비콘강. 제1차 삼두정치가 와해되면서 폼페이우스와의 정면 대결을 피할 수 없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 이미 수도 없이 고민한 뒤였을 터다. 그는 무장한 휘하의 10개 대대 45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루비콘강을 건너고 만다. 그의 군대는 폼페이우스군을 차례차례 격파했고, 카이사르는 로마세계의 제1권력자가 됐다. 

폼페이우스와 결전을 앞두고 루비콘강 앞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카이사르. 사진은 게임 헤게모니-로마: 카이사르의 비상의 홍보 동영상 캡쳐.
2. 두번 째 죽을 고비 앞...3번째 승부수

"당 대표가 안 되어도, 당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도, 총선을 승리로 이끌지 못해도 그다음 제 역할은 없습니다. 세 번의 죽을 고비가 제 앞에 있습니다."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는 올해 전당대회에 당 대표로 출마를 밝히는 성명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당시 △2·8 전당대회 △당 혁신 △총선이라는 3번의 죽을 고비가 자신의 앞에 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박지원 전 원내대표를 꺾고 당대표에 당선돼 한 고비를 넘겼지만 지난 9일 혁신안 처리와 재신임 투표를 하겠다고 밝히면서 '당 혁신'이라는 두 번째 죽을 고비를 맞고 있다.

이번에 혁신안 처리 및 재신임 투표에 실패할 경우 당 대표는 물론 대선 후보 등 정치적 생명마저 사실상 위태롭다는 점에서 지난 2월 '당 대표 선거'에 이은 두번째 죽을 고비임은 분명해 보인다.

문 대표 자신도 실제 10일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지금이 두번째 고비 정도가 되지 않나요? 당을 바꾸지 못해도 (나는)죽는다. 당을 바꾸고 있는 과정"이라고 두번째 고비의 기로에 섰음을 인정했다.

문 대표의 이번 '재신임 카드'는 그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3번째 승부수'이기도 하다는 분석이다.. 문 대표의 핵심 측근은 전화 통화에서 "문 대표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2번의 승부수를 던졌고, 이번이 3번째"라고 말했다.

문 대표 측의 설명에 따르면 문 대표의 첫번째 정치적 승부수는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의 사퇴 등 야권통합을 저지하기 위해 '먹튀방지법' 발의를 주장하자 '투표시간 연장'해오던 문 대표가 두개의 사안을 일괄 논의해 처리하자고 전격 제안한 것이었다. 결국 새누리당은 당시 제안을 한 이정현 의원의 개인 의견이라고 하면서 막을 내렸다.

두번째 승부수는 지난 3월 국회 자원외교 비리의혹과 관련한 국정조사 증인 공방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증인 출석을 주장하는 야당에 대해 새누리당이 참여정부 비서실장였던 문 대표가 검증에 나와야 한다고 팽팽히 맞설 때 나왔다. 즉 문 대표는 "내가 나갈 테니 이 전 대통령도 함께 불러달라"고 공동 출석을 제안했다. 새누리당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서 공방은 겉돌고 말았다.

지난 9일 혁신안의 중앙위원회 처리와 함께 재신임 투표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재신임 절차에 돌입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3. 3개의 門=혁신안 처리+전당원 투표+여론조사

"당이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 상황에서, 이제 저는 당 대표직을 걸고 △혁신 △단결 △기강과 원칙의 당 문화를 바로 세우려 합니다. 혁신안 처리과정과 함께, 저에 대한 재신임을 당원과 국민들께 묻겠습니다."

새정치연합 당무위원회에서 혁신위원회의 혁신안이 의결된지 1시간쯤 지난 9일 오후 2시30분. 문 대표는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안 처리와 재신임 투표를 통한 자신의 재신임 추진을 선언했다. 그의 표정은 결연하면서도 편안해 보였고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의 회견을 하고 있었다.

문 대표는 다시 11일 재신임 시기와 절차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김성수 당 대변인을 통해 제시했다. 즉 오는 16일 중앙위원회에서 혁신안 처리와 함께 전당원 ARS투표, 국민여론조사 등 3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부결된다면 사퇴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재신임 투표는 13∼15일 사흘 동안 실시하고, 그 결과를 16일 중앙위 직후 발표하겠다고 했다. 재신임 투표 방식은 전당원 ARS투표와 국민 여론조사를 각각 실시한다는 것이다.

특히 야당에서 전당원 투표를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참여 대상자는 연락처가 파악된 모든 당원으로서 대략 150만명 규모로 추산되며, ARS 응답률이 10%에 못 미치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10만~15만명 정도가 투표에 참여할 것으로 관측된다.

4. 비주류도, 최고위원도, 중진들도 "반대, 재검토, 보류"

당내 많은 이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비주류, 중진, 지도부 일부까지. 지금까지 거론된 반대 또는 재검토, 또는 보류를 주장하는 국회의원들은 다음과 같다(가나다순). 김동철, 김부겸, 김영환, 김한길, 노웅래, 문병호, 박영선, 박주선, 박지원, 안철수, 오영식, 유승희, 이상민, 이종걸, 장병완, 정성호, 정세균, 주승용, 최재천, 최원식 등. 반대나 만류의 이유는 다양하다. “전당대회에서 뽑혔으니 전당대회를 통해서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거나, “너무 일방적으로 추진된다”거나, “지금 국감 중이니 시기가 적절치 않다”거나.

5. 문재인은 왜?

문 대표는 비주류를 넘어 주류 및 지도부, 중진들의 반대나 만류에도 재신임이라는 '마이웨이'를 걸어가고 있다. 그는 왜 많은 이들의 반대에도 재신임을 강행하려 하는가.

문 대표 측이 재신임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기본적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당의 내분과 분란을 '당원과 국민의 힘'으로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지금까지 대화와 타협, 관용과 포용으로 비주류 측의 주장을 이해하고 포용하려 했지만 계속된 당 흔들기는 더이상 간과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고, 이런 당내 분란을 국회의원들이 아닌, 당권의 근원인 당원과 국민의 힘으로 정리하겠다는 판단에서다.

문 대표 측에서는 대표 사퇴론을 주장하는 비주류 측의 요구가 문 대표를 당 대표로 인정하지 않거나 지난 2월 전당대회의 결과를 부정하는 행위라는 시선도 없지 않아 보인다. 즉 '2015년 새정치연합판 경선 불복'이라는 것이다.

문 대표의 재신임 카드에 대해 "당대표가 내릴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옹호한 전병헌 최고위원은 최근 기자와 만나 "19대 국회 이후 우리 당에서 경선 불복이나 전당대회에 나섰거나 전직 당 대표들이 현 지도부에 대해 적나라하게 흔드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2월 전당대회로 결정된 대표를 다시 전당대회로 뽑자는 조기 전대론은 조기 전대가 아니라 사실상 경선 불복"이라고도 했다. 그간 비주류 측이 문 대표에 대해 취해온 언행은 사실상 경선 불복에 가깝다는 것이다.

특히 문 대표는 지난 9일 안철수 전 대표가 당밖에서 신당론을 지피고 있는 무소속 천정배 의원과 만나 당 혁신에 대해 실패로 규정하는 등의 모습에 상당히 불괘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표의 핵심 측근은 전화통화에서 "당 내에서는 여러 문제제기를 할 수 있지만 당밖의 사람들과 함께 당의 혁신 노력을 실패로 규정하고 비판하는 건 정도(正道)가 아니다. 대다수 당원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대표의 생각(재신임 선언)은 질서 없이, 정치적 금도(琴道) 없이 (해당행위를) 하는 것은 공멸하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주류 및 일부 주류 측 인사들의 생각은 문 대표측과 크게 다르다. 문 대표가 자신의 뜻만 강요하고 구성원들에게 복종을 요구하고 있다는 거다. 그 동안 호남 비주류의 생각을 대변한 것으로 알려진 주승용 최고위원의 지적이다.

"(문재인) 대표는 자신의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고 화만 내고, 같은 지도부인 최고위원들과 전혀 대화하지 않고 복종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6. 재신임 이후, 문재인은 무얼 하려는가

문 대표는 재신임 이후 △당의 혁신 △단합과 통합 추구 △총선 체제 전환 등을 공언했다. 문 대표는 지난 9일 재신임을 선언하면서 자신이 자신이 되면 다음과 같은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당을 더 혁신하고 기강을 더욱 분명히 세우겠습니다. 포용과 단합과 통합을 향한 노력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총선 승리를 위한 총력체제, 재창당에 가까운 뉴 파티(New Party)비전도 제시하겠습니다. 혁신의 기운, 단결의 정신, 승리의 자신감으로 당을 새롭게 일신하겠습니다."

문 대표의 회견을 요약하자면, 먼저 당을 혁신하고 기강을 확립하는 한편 단합과 통합을 위한 노력도 벌이겠으며, 총선을 위한 총력체제와 당의 새로운 비전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규율 있는 총선 체제의 새 정당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거다.

문 대표 측 핵심 인사는 통화에서 "문 대표가 재신임에 성공한다면 이후 행보는 크게 통합의 행보와 함께 새로운 비전의 행보 2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의 행보와 관련해선 "재신임 이후 당을 친노로 채운다는 건 말도 안된다. 당의 혼란을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취지라는 거다. 이 인사는 재신임 이후 펼쳐질 '비전의 행보'에 대해선 "총선이 코앞에 있는 상황으로 당 안팎의 신망받는 사람을 모시고 중진 어른과 함께 하는 일신된 면모를 하는 작업과 인재를 영입하고 총선을 위한 정책적인 비전 발표 등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 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비주류의 생각은 정반대이다. 즉 비주류 인사들은 재신임이 문 대표의 구상대로 관철될 경우 새정치연합은 '문재인을 위한, 문재인에 의한, 문재인의 정당', 즉 '문재인 1인 정당'이 될 것으로 우려한다. 주승용 최고위원의 11일 지적이다.

"문재인 대표께서는 재신임 여부는 물론 절차에 대해서도 전혀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 우리당은 '문재인의, 문재인에 의한, 문재인을 위한 1당'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7. 재신임 정국 이후

문 대표가 강행하는 재신임 정국이 끝나면 야권의 지형은 대대적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즉 이번 혁신안 통과 및 재신임 투표 결과에 따라 새정치연합은 물론 야권 지형 전체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먼저 문 대표가 비주류의 전면적인 저항을 뚫고 재신임을 얻는데 성공한다면 당내 리더십을 한층 강화하면서 다음 총선까지 강력한 '친정체제'를 구축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즉 당원과 국민들의 지지를 확인할 경우 문 대표의 발언과 결정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재신임을 통해 국민과 당원의 문 대표 지지가 재확인될 경우 당내에 주요 계파 수장들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거나 재조정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문 대표의 재신임 드라이브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김한길 전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 그리고 범친노(친노무현)그룹으로 분류됐던 정세균 상임고문 등 전통적 의미의 계파 수장들인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 대표 개인의 대권가도 역시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문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4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무려 1470만표를 획득했다. 역대 야당 대선 후보 가운데 최고 득표를 기록할 만큼 야권의 자산으로서, 그 가치를 다시 드러낼 수 있어서다.

반대로 재신임을 얻지 못할 경우에는 현 지도부 체제가 붕괴하는 것은 물론, 새정치연합 역시 리더십 공백 상태에서 극심한 혼돈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표 역시 대권주자는 물론 정치생명도 사실상 상실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럴 경우 새정치연합은 지도부 재구성과 계파 갈등 등으로 극심한 혼돈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고, 당밖의 신당론도 제1야당의 혼돈으로 탄력받는 등 원심력도 강해지리라는 추측도 나온다.

이번 재신임 파동의 근원에 자리한 총선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할까. 야권의 분열상이 극적으로 드러나면서 내년 총선에 막대한 타격이 예상된다는 전망이 많다. 성한용의 분석이다.

"누가 이길까? 공멸할 것이다. 야당의 명분 없는 내부 갈등에 지지자들도 이제 환멸의 단계로 접어든 것 같다. 누가 주류이고 누가 비주류인지도 잘 모른다…문재인 대표가 비주류와 정면대결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지금 야당의 앞길은 캄캄하다. 정치 참 어렵다."(성한용, 2015. 9. 10, 1면)

하지만 문 대표 측과 그의 재신임 선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르게 보는 것 같다. 야권의 혼돈과 분열상을 합법적인 절차와 정치적 결단을 통해 한번 정리함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계기를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재신임 이후 문 대표 행보가 그것을 희미하게 암시한다.

8. 재신임 카드를 던진 오늘의 문재인이야말로, 2000여년 전 운명의 루비콘강을 앞에 뒀던 카이사르의 심정일 것이다. 그 루비콘강을 건너기 전, 카이사르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두고 후대에 논란이 적지 않다. 그것의 진실이 무엇이든,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다음의 구절. "Alea iacta est(주사위는 던져졌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참고 문헌>

성한용(2015. 9. 10). 김무성 칼춤에 홀린 새정치 내년 총선 80석은 건질까. [한겨레신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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