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순환출자 금지는 부작용이 크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롯데 사태 관련 대기업집단 이슈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입장)
롯데가(家) 친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촉발된 재벌개혁 움직임이 시작부터 제대로 될지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고 있다. 롯데그룹 만해도 무려 416개에 이르는 순환출자 고리를 가지고 있지만, 정부와 경제수장은 ‘과거 순환출자 문제는 따지지 않겠다’며 처음부터 선을 긋고 나섰다.
여당인 새누리당 역시 롯데그룹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당·정 협의회를 갖기 전에는 “필요하면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의욕을 보였지만, 협의회가 끝난 후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폐지하는 데 부정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것으로 전해졌다.
7일 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해외 계열사 지분 공시를 의무화’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이 추진되지만, 이번 개정안에는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은 빠질 것으로 보인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기존 순환출자 해소는 기업의 자율에 맡기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있다.
전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참석 후 “현재 정부는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효했으며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서도 기업 스스로 개선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라며 “과거 순환출자 문제에 관한 법적인 조치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정은 신규 순환출자뿐 아니라 기존 순환출자까지 금지해야 한다는 야당 등의 요구에 대해 ‘수용 불가’로 결론 내렸다.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지금처럼 기업 스스로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같은 날 국회에서는 정부와 새누리당이 416개에 달하는 롯데의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고자, 당·정 협의회를 열어 공정거래법을 중점적으로 논의했지만 대책 마련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만해도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에 이번 롯데 사태로 종전의 순환출자까지 금지하는 방안이 새롭게 도입될지 주목을 끌었으나,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폐지하는 데는 부정적인 태도로 의견이 모아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당정 협의 뒤 “총수에게 공시 의무를 부과해 총수와 해외 계열사 현황, 해외 계열사의 국내 해외계열사 출자 현황 등을 공지하도록 하는 방안을 충분히 담아 공정거래법 개정을 해보자는데 (당정이) 공감을 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그룹의 해외 계열사 실태 파악에 나서 롯데 측에 일본 계열사에 대한 세부 주주현황 등의 자료를 오는 20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한 상태다. 공정위는 “이에 불응하거나 제대로 된 자료를 내지 않을 경우 형사 고발을 검토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금융감독원은 2분기 실적 공시를 앞둔 롯데알미늄, 롯데로지스틱스 등 롯데그룹 일부 계열사의 2분기 결산보고서를 요청하면서 최대주주인 일본 L2투자회사의 대표자 정보와 재무·사업 현황을 비롯한 주요 경영정보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이 요청한 롯데알미늄, 롯데로지스틱스의 2분기 결산보고서와 해당 기업의 최대주주인 일본 L투자회사 정보에 대한 제출기한은 이달 17일까지다. 금감원도 롯데그룹이 롯데알미늄, 롯데로지스틱스, 호텔롯데 등 국내 계열사의 최대주주인 L투자회사들에 대한 정보를 17일 2분기(4~6월) 보고서에 공시하지 않으면 과징금 부과 등 제재를 고려하고 있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롯데그룹에서 공정위에 신고한 자료가 있는데, 그동안 공정위는 일본 쪽에 있는 부분에 대해선 제대로 확인을 못한 것 같다”면서 “이번에 그런 자료까지 협조를 요구받아 자세히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롯데가 어느 수준까지 공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 회사들의 일본 이사진이 일본법에 따라 공개를 반대하면 마땅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인 호텔롯데를 지배하고 있는 일본의 광윤사(光潤社), 롯데홀딩스, 1~12번까지 알파벳 ‘L’자로 시작하는 L투자회사 12곳 등은 모두 비(非)상장사다. 한국 정부는 일정 규모 이상의 국내 회사는 비상장 회사라도 지분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지만, 일본은 비상장사에 이런 공개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일본 롯데홀딩스 측은 공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4일 한국 특파원 간담회에서 광윤사와 롯데홀딩스 지분구조를 묻는 질문에 “비상장 회사여서 말씀드릴 수 없다”고 답변한 바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가 한국 롯데그룹을 압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일본 이사진이 “안 된다”고 나오면 뾰족한 방법이 없다.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일본 이사들의 지지가 필요한 신 회장이 무리를 하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롯데그룹에 대한 정부의 압박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국세청의 세무조사다. 지금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롯데그룹의 광고대행 계열사인 대홍기획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필요하면 언제든지 여타 계열사로 조사를 확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국세청이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전일 최 부총리가 “롯데의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자금 흐름 등에 대해 관계기관에서 엄밀히 살펴보도록 지시할 것”이라고 밝힌 점을 들어 이 같이 파악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경제전문가는 “지배구조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제2, 제3의 롯데 사태나 삼성-엘리엇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며 “당정 협의 내용만으로는 부족하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순수한 지주회사 형태로 전환하는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세계파이낸스>세계파이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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