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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 헐리고 불타고…홀대받는 근대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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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7-27 19:37:53 수정 : 2015-07-27 21:4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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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문화재법 시행 15년… 보존·관리 여전히 허술 … 사진만 남기고 철거되기 일쑤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때 건축물과 유적 등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때 근대문화유산은 일제강점기 당시 수탈의 목적으로 건립됐다는 이유로 철거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1년부터 건축된 지 50년 이상 된 건축물을 등록·관리하는 등록문화재법이 시행되면서 근대문화유산은 보존의 길을 걷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된 지 15년이 됐지만 등록문화재의 등록 수가 늘어나지 않는 데다 관리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소유주가 등록문화재를 훼손해도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는 등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헐리고 불타고… 흑백사진만 남아


전북 군산은 근대문화유산의 보고다. 군산항은 고종 36년인 1899년 국내에서 여섯 번째로 개항했다. 일제는 충청도와 전라도 등 내륙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수탈하기 위한 최적지로 군산항을 꼽았다. 1934년 한 해 군산항을 통해 무려 870만석의 쌀이 일본으로 실려나갔다. 당시 전국에서 생산된 쌀 1630만석 가운데 절반 이상이 수탈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근거지는 군산 개항과 함께 월명동 일대 57만2000㎡에 조성된 외국인 거주지(조계지)다. 당시 일본인들은 쌀 수탈로 부를 축적하기 위해 군산에 몰려들었다. 군산 인구 1만3000명 가운데 일본인이 절반을 넘었다.

최근 찾은 군산 월명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때 조성한 바둑판 모양의 도시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당시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사라지고 없었다. 쌀 수탈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미곡취인소와 미곡신탁주식회사, 미곡검사소, 화강정미소 등 미곡 관련 시설물 대부분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뿐만 아니다. 조선은행 직원들의 숙소로 사용됐던 일본식 건축양식의 군산감리교회 건물도 최근 철거됐다. 이 건물은 6·25전쟁 중에는 북한군 지휘소로 사용되다 이후 교회 예배당으로 활용됐다.

일제강점기 때 전북 군산항은 호남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국내 최대기지가 됐다. 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당시 건축물이 보존과 관리소홀로 대부분 사라져 이제는 사진으로만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위쪽부터 일제강점기 때 군산항의 축항을 기념하기 위해 쌀 804가마로 만든 쌀탑, 일본인들이 쌀 대량유출을 위해 설치한 곡물거래소인 미곡취인소.
이처럼 사진으로밖에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근대문화유산이 한두 곳이 아니다. 1920년대 건립된 신흥동의 대표적인 유곽(유흥시설) 칠복루 건물도 2002년 화재로 완전히 소실됐다. 2층짜리 목조건물인 칠복루는 1949년부터 화교소학교가 사용해 왔다. 일제강점기 때 지금의 군산시청 역할을 한 군산부청 건물(1928년 건립)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표지석조차 없어 이곳이 군산부청 자리였는지 알 수 없다.

근대문화유산이 사라진 곳은 군산뿐만 아니다. 1936년 건축된 경기 수원의 옛 유한양행 소사공장은 지난 2월 철거됐다. 730㎡의 이 건물은 2층과 3층이 연결된 독특한 구조로 근대적 공장건축의 초기양식이다. 2001년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등록됐지만 아파트를 건축하려는 소유주의 개발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경기 수원시 교동의 옛 부국원 건물은 철거 위기에 놓였다. 1923년 일제가 설립한 농작물 종자와 농기구를 판매했던 부국원이 세운 건물이다. 국내 최초 2층 건물로 92년을 견뎌온 가치를 인정해 시가 매입에 나섰지만 가격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소유주가 원룸 건축을 위해 부국원 건물을 철거할 것으로 알려졌다.

1935년 일본 금광업자가 신축한 대전 중앙극장은 2005년 헐리고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때 대전시 공관으로 사용된 데다 가장 오래된 극장 건물이라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위쪽부터) 미곡검사소와 화강정미소
◆예산 타령에 보존대책은 뒷전


이날 현재 문화재청에 등록된 근대문화유산은 648개다. 서울이 179개로 가장 많고 전남 74개, 경기 62개, 전북 59개로 뒤를 잇고 있다. 문화재청이 2003∼2005년 전국 근·현대 건축물·시설물에 대한 목록화 조사에서 5000여건을 확인했다. 단순히 근대문화재 등록률을 보면 12%에 불과하다. 전북 군산의 경우 시가 2010년 조사한 근대역사문화지구의 근대건축물은 모두 94개다. 하지만 실제 등록된 등록문화재는 10곳에 불과하다.

이처럼 등록률이 저조한 데는 등록문화재법의 허점 때문이다. 50년이 지난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2001년 7월 등록문화재법이 제정, 시행됐다. 보존과 활용 가치가 높은 근대 이후 건축물과 유적이 그 대상이다. 지정문화재와 달리 등록문화재는 소유자나 자치단체의 신청에서 절차가 시작된다. 아무리 보존가치가 있더라도 신청하지 않으면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한다. 근대문화재 소유자 대부분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될 경우 사유재산권 행사 제약 등 불이익을 우려해 신청을 꺼리고 있다.

‘근대문화재=일제강점기 건축물’이라는 인식도 등록률이 낮은 이유다. 근대문화재의 등록 대상을 시기적으로 보면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건축물과 유적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한때 청산해야 할 일제 잔재를 보존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대여론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등록대상이 기준일 현재 ‘50년 이상’이라는 규정에 따라 현재는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1965년까지 포함된다. 고종황제의 어차를 비롯해 금성텔레비전, 최초의 컴퓨터 등이 근대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근대문화재가 일본강점기 때의 건축물만이 아니라는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문화재청은 등록문화재 관련 예산을 책정하지 않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 매입한 등록문화재는 경북 울릉도 도동리 일본식 가옥과 전남 보성 구 보성여관 등 5건에 불과하다.

등록문화재 소유주가 건축물을 훼손하거나 철거를 해도 마땅히 처벌할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점이다. 이미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서울시청과 스카라 극장, 옛 대한증권거래소 건물이 사라지거나 훼손된 이유다.

윤인석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위원장(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은 “정부가 예산을 들여 보존 필요성이 있는 문화재를 매입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군산=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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