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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관용 미덕 순명 도시전체에 깃들어

입력 : 2015-06-16 09:03:22 수정 : 2015-06-16 11: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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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가톨릭 역사문화순례 <1>이베리아반도의 영적 성지 톨레도

유럽 가톨릭교회의 영적 성지인 스페인 톨레도에는 유서 깊은 톨레도 대성당과 산토 토메 성당, 스페인 최고화가 엘 그레코의 생가 등이 있다. 사진 맨 위 중앙의 뾰족한 종탑의 고딕양식 건물이 톨레도 대성당이다.
스페인은 유럽 가톨릭교회의 영적 심장과 같은 곳이다. 예수의 제자 야고보가 이곳 이베리아반도 유럽 끝자락까지 찾아와 복음의 씨앗을 뿌렸으며 그 절대적 믿음은 순교로 이어졌다. 그러한 헌신적 터전은 16세기 유럽사회에 강하게 몰아친 종교분열의 불길을 막아냈으며, 일찍이 남미와 필리핀에 가톨릭을 전파해 찬란한 꽃을 피우고 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의장 김희중 대주교) 주관으로 지난 6일부터 14일까지 스페인 가톨릭 주요 성지와 유적지를 돌아보는 순례에 동행했다. 첫 순례지는 스페인 중부지방이었다.

타 죽을 것 같은’ 여름이 시작된다는 스페인의 6월. 수도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72㎞ 가량 떨어진 톨레도는 아침에는 아직 선선했지만, 낮에는 햇빛을 마주치기가 두려워 기회만 되면 그늘을 파고들었다. 스페인 가톨릭의 대본산 톨레도 대성당은 7일, 때마침 1년에 한번 있는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행사로 거리행렬을 마친 ‘성광(聖光)’이 중앙 제대에 모셔져 있어 친견할 수 있었다. 성광은 가톨릭교회의 중요한 제구(祭具) 가운데 하나로, 예수의 피와 살로 상징되는 성체(聖體)가 모셔져 있다. 높이 3m, 무게 180kg이나 되는 톨레도 성당의 성광은 유난히 금빛 찬란했다. 성광을 조립하는 데 1만2000개의 은과 황금 나사못이 사용됐다고 한다.
톨레도 대성당에 있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성모자상.

톨레도 대성당은 일종의 승전기념교회로, 역사와 볼거리가 풍부하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왕국이 아랍계 이슬람교도인 무어족으로부터 780년 만에 독립한 1492년 이듬해 완공됐다. 성당 중앙의 독립된 성가대석 ‘코로(coro)’에는 세계 2대 아름다운 성모자상이 모셔져 있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의 미소를 보는 순간, 평화가 절로 읽혀졌다. 벽과 수직으로 설치된 특이한 형태의 파이프오르간은 1540년에 제작됐다고 하는데, 연주를 완벽히 해냈던 가장 오래된 오르간으로 기록된다. 벽면 한쪽을 메운 아기예수를 무동태운 대형 성화의 주인공은 여유와 든든함 때문일까. 스페인에서는 ‘여행자의 수호성인’으로, 한국에서는 ‘운전자의 수호성인’으로 통한다.

성당 제대 뒤 회랑은 벽면조각의 보물창고다. 조각은 저마다 특유의 입체감으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제대 뒤 벽은 금박으로 처리한 햇살과 수많은 천사들이 대리석으로 조각돼 있다. 나르시소 토메 작 ‘트랜스페렌트’다. 화려하고 촘촘한 장식을 특징으로 하는 추리게라 양식이다. 그 건너편의 천장과 맞닿은 채광창 아래에는 천사와 군중 조각상들이 있는 데, 어두운 회랑 내부를 비추는 한 줄기 빛은 그곳이 곧 ‘천국의 문’임을 암시한다. 성당 안에는 여러 개의 경당(소성당)이 있다. 그중의 한 개는 화랑으로 쓰이며, 스페인 최고 화가 엘 그레코(1541~1614)의 걸작 ‘성의(聖衣)를 입는 사람’ 등이 전시돼 있다. 엘리코 성화에서 예수는 군중들이 자신의 옷을 서로 가져가려해도, 야유를 던져도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어 어떤 성화보다 성스럽다. 예수가 입은 성의는 붉은 빛이 강렬해 보는 이들의 시선을 물론, 마음까지 잡아끈다.

톨레도 대성당에 있는 엘 그레코 작 ‘성의를 입는 사람’. 그 옆도 그레코 작 '사도 베드로'.

종교화를 주로 그려온 그레코의 천재성은 톨레도 대성당 인근의 산토 토메(성 도마) 성당의 성화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460X360cm)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성당은 선행과 신심이 두터운 오르가스 시(市)의 돈 곤잘레스 루이스 백작이 사재를 털어 재건축했다. 전승에 의하면 백작을 매장할 때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과 그리스도교 교회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 아우구스티노 두 성인이 친히 나타나 시신을 입관했다고 한다. 교회는 이러한 전승을 그려줄 화가를 찾던 중 그리스출신의 스페인 화가 그레코를 만났다. 그레코는 그림을 상하로 나눠 천상계와 지상계를 표현했고, 백작이 1323년에 사망한 인물임에도 장례식 조문객은 그레코 시대의 존경받는 인물로 채웠다. 선심을 쓰듯 당시 국왕 필립페 2세도 그려 넣었다. 시신을 입관하는 왼쪽의 젊은 성인이 스데반이다. 조문객으로 그레코 자신과 8세의 아들도 그려 넣었다. 아들은 이 그림의 안내자이며, 유일하게 이들 부자만 정면을 응시하게 표현함으로써 시대를 흐르며 끊임없이 현대의 관람객들과 눈을 마주친다. 

엘 그레코의 걸작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이 소장된 산토 토메 성당 앞에서 관람객들이 서성이고 있다.

세계 3대 성화로 꼽히는 이 명화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입장료가 2.5유로인데,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람객이 끊이질 않는다. 지역에 뿌리고 가는 돈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성화 밑에는 백작의 무덤이 있고, 묘비에 ‘여기 곤잘레스가 잠들어 있다(AQVI YACE)’라고 적혀있다. 한 선행자로 인해 톨레도 지역사람들이 대대로 막대한 혜택을 받고 있다. 산토 토메 성당은 한 사람의 선한 신앙심이 후대에 까지 무한한 공덕이 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톨레도는 2000년 역사를 가진 고도로, 1561년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기기까지 스페인의 수도였다. 이 도시는 이슬람정복시대와 가톨릭군주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역사와 문화유산을 남겼다.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가 종교와 언어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공존했을 때는 유대인들이 제2 이스라엘로 생각했던 곳이다. 가톨릭이 자신을 통치했던 이슬람교의 문화를 없애지 않고 보존한 점도 톨레도가 지닌 매력이며, 도시 전체가 가톨릭의 관용과 미덕을 함축적으로 발산하고 있다. 스페인 중부지방은 소설 ‘돈키호테’의 무대여서 특별한 정감마저 감돌았다. 

톨레도(스페인)=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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