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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뒤에 살아 숨 쉬는 인간 마르크스

입력 : 2015-05-15 21:28:30 수정 : 2016-06-29 10: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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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앞두고 재조명
메리 게이브리얼 지음/천태화 옮김/모요사/4만2000원
사랑과 자본- 카를과 예니 마르크스, 그리고 혁명의 탄생/메리 게이브리얼 지음/천태화 옮김/모요사/4만2000원


사회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그런 만큼 카를 마르크스 사상을 다룬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마르크스에 관한 출판물이 여전히 주목을 받고 있다. 그중 하나인 ‘사랑과 자본’은 마르크스와 그의 가족사를 담은 책이다. 2011년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 논픽션 부문 최종작으로 선정됐다. 수만권의 책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미국에서 그해 가장 잘 쓴 책 다섯 권 안에 들었다. 2012년에는 퓰리처상 전기 부문 최종작으로 선정됐다. 

한 외신 기자를 지낸 메리 게이브리얼은 ‘사랑과 자본’을 쓰는 데 8년여의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마르크스와 그 가족의 흔적을 샅샅이 뒤져 책을 완성했다. 책은 마르크스가 왜 다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지 잘 보여주는 책이다. 노벨 문학상(1925)을 받은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마르크스를 다음과 같이 극찬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그는 세상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다.” 마르크스가 1846년부터 집필에 들어가 ‘자본론’ 제1권을 출간한 1867년 유럽에서는 자본주의가 태동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자본주의 맹점을 간파하고 대안으로 자본론을 썼다.

카를 마르크스(뒷줄 왼쪽)가 1864년 세 딸, 그리고 평생의 동지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뒷줄 오른쪽)와 함께 찍은 사진.
모요사 제공
저자 게이브리얼은 인류 역사상 마르크스처럼 오해를 받은 인물도 없다고 한다. 자본론은 20세기 지구의 반에서 경전이 되었고, 나머지 반에서는 금서가 되었다. 한쪽에서는 마르크스 동상이 세워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에 대한 저주와 악담이 쏟아졌다.

99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사랑과 자본’에서는 마르크스라는 인간의 맨 얼굴이 드러난다. 책은 죽었지만 죽지 못하고 유령처럼 지상을 떠돌던 마르크스 사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살이 있고 피가 도는 살아 있는 인간 마르크스를 묘사한다.

마르크스 아내 예니의 1836년 모습을 그린 초상화.
저자는 자본론이 마르크스의 가족들을 배경으로 쓰여졌다고 말한다. 그의 가족은 허랑한 남편과 아버지 탓에 곤궁한 삶 속에서 시들어갔다. 마르크스의 필생의 사업인 자본론 완성과 그의 가족구성원은 긴밀히 연관되었다. 마르크스 가족들은 가난에 익숙했다. 그가 자본론을 집필하는 동안 7명의 자녀 가운데 4명이 숨졌다. 자녀들의 작은 시신들은 궤짝 같은 허름한 관 속에 눕혀졌다. 자녀들이 먹고 자고 놀던 방 안에 시신이 방치되기도 했다.

마르크스의 아내 예니는 프로이센 남작의 딸로 미모와 교양을 갖춘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날마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렸다. 귀족의 딸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은식기부터 고급 신발까지 세간살이를 들고 전당포를 전전했다. 마르크스의 아이들이 노는 공간은 항상 망명객들로 북적였다. 아이들의 귀는 혁명의 단어들로 채워졌다. 자본론은 그런 환경에서 쓰여졌다. 외골수 남자와 그를 가장으로 둔 한 가족의 신산한 삶을 대가로 탄생한 게 자본론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독일 본에서 대학에 다니던 시절 마르크스의 초상화.
저자는 특히 마르크스의 가족을 돌보았던 하녀 헬레네 데무트에게 주목한다. 그녀는 마르크스 가족과 함께 빈곤을 겪으며 울고 웃었던 가족의 일원이었다. 세상이 마르크스를 비난할 때 항상 거론된 여성이었다. 세상은 하녀를 넘본 비열한 인간이라고 마르크스를 비난했다. 마르크스는 데무트와의 사이에서 아들 프레데릭 데무트를 낳았다. 그 아들이 마르크스의 세 딸의 비극적인 죽음을 마지막까지 지켜준 유일한 가족이었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가족사를 통해 그의 진면목을 온전히 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예니는 단순한 여염집 아내가 아니라 사실상 자본론의 제2 저자였다. 그녀는 남편의 지독한 악필을 읽을 수 있는 문자로 옮겨 적을 정도로 경제학적 지식을 갖춘 여성이었다.

책에서는 자본론을 써놓고 담뱃값도 안 될 것이라고 툴툴거렸던 마르크스와 어린 아들의 시신을 옆에 놓고서도 자본론 집필에 몰두했던 지독한 아빠로서의 마르크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마르크스의 특별함을 칭송하기보다는 그를 시대 속에서 고뇌하는 지식인으로 해석한다. 마르크스 가족에게 평생 따라다녔던 가난과 박해, 자녀들의 사망 등을 자료를 통해 고증했다. 2018년은 마르크스가 태어난 지 200년 되는 해다. 그가 출생한 독일 트리어에서는 2012년부터 마르크스 유품 전시회가 연중 무휴로 열리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가 한계를 노출하는 이 시대에 ‘마르크스 바람’이 다시 불 조짐도 엿보인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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