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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혈통·지역 벽 깬 '정보의 왕국' 경이로운 도시 만들다

입력 : 2015-04-08 06:00:00 수정 : 2015-04-0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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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문명
애플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짓고 있는 신사옥은 가운데가 뻥 뚫린 도넛 모양이어서 우주선을 연상시킨다.
#문명, 인간이 이루어낸 정신적·물질적 발전


문명은 영어로 ‘Civilization’이다. 인간이 자신의 머리로 혹은 지혜로 자연의 여러 가지 제약을 이겨내며 이루어내는 정신적·물질적 발전을 이야기한다. ‘철학 이야기’, ‘문명 이야기’ 등의 명저를 남기고 평생 인류 문명에 대해 연구하고 저술했던 미국의 철학자 윌 듀랜트(William James Durant)는 문명이란 “문화 창조를 촉진하는 사회적 질서”라고 정의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문화와 문명에 대해 조금씩 혼란스럽기도 하다. 어디까지를 문화라고 보아야 하고, 어디까지를 문명으로 보아야 하는지. 과연 윌 듀랜트의 말처럼 문화창조의 기반이 된다는 것의 의미와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한편으로 문화라는 말은 약간은 추상적이며 개념적인 느낌이 들면서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리는 거대한 뚜껑이나 그릇과 같다고 생각되고, 문명이란 보다 구체적인 어떤 결과물로서 나타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굳이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것은 없지만, 혹자들은 문명과 문화를 구분하여 문화는 정신적인 것이며 문명이란 물질적인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어원적으로 문화는 경작한다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나온 ‘culture’이고, 문명은 도시화라는 의미를 지닌 ‘civilization’이라고 하다 보니 수긍할 만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것을 자로 재듯 “여기까지는 정신, 여기까지는 물질” 하며 나눌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문화든 문명이든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란 모두 정신과 물질이 서로 교묘하게 섞이며 하나의 총체적인 큰 그림으로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기원전 4000년대 오리엔트로 보는 것이 통설이라고 한다. 이집트 문명이 기원전 2800년경, 미노스 문명은 기원전 2600년경, 중국 문명은 기원전 2000년 초 등이다. 이집트의 위대한 파라오로 불리는 람세스 2세(RamessesⅡ·재위 기원전 1279∼1213)는 긴 통치기간(60년 이상으로 추정됨)만큼이나 많은 전공을 세웠고, 또 많은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카르나크의 주신전을 완공하고 룩소르의 신전을 증축하고, 나일강 서안에 거대한 장례사원인 라메세움을 세웠다. 또한 너무나 유명한 4개의 거대한 좌상이 앞에 앉아있는 아부심벨 신전을 완성했고 자신의 석상을 여러 곳에 세우기도 했다. 마치 마지막 꽃이 가장 화려하게 피었다가 떨어지듯, 그의 치세에 이집트는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우고 이집트 문명을 세상에 각인하고 스러졌다.

람세스 2세만큼 건설광이었던 역사적 인물이 또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공중정원’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네부카드네자르(Nebuchadnezzar) 2세(재위 기원전 604∼562)라는 바빌로니아 왕이다. 그는 바로 성경 ‘다니엘서’에 유대인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악한 왕 느부갓네살로 표현되기도 하는 인물이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유대인뿐 아니라 수많은 정복 전쟁을 통해 다른 국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바빌로니아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옛 영광을 되찾은 대단한 왕이었고, 공중정원과 바벨탑을 건설했으며 바빌론이라는 대단한 도시를 건설한 왕이기도 하다. 먼저 바빌로니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직접 만들고 시행했던 법으로 유명했던 함무라비왕이 기원전 18세기에 사망하고 8년 만에 바빌로니아는 변방의 ‘카시트’족에게 유린당하게 되는데, 그 세월이 무려 1000년이나 지속되었다. 그 후 나보폴라사르라는 사람이 국제정세를 잘 활용하여 신바빌로니아를 건국하고 그의 둘째 아들인 네부카드네자르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네부카드네자르는 그동안 한없이 내려간 바빌로니아의 문화를 다시 끌어올리고 바빌론을 엄청난 도시로 다시 건설해놓는다.

퇴락한 산업도시에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도시재생 건축의 선도적 사례로 손꼽히는 스페인 빌바오 미술관.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다 사라진 바빌론


“바빌론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시편’ 137:1)

기원전 586년 솔로몬 왕국은 바빌로니아 군대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고, 그 백성인 수많은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간다. 그때를 ‘바빌론 유수’로 기독교의 성경에는 전한다.

네부카드네자르가 이끄는 바빌로니아 군대는 예루살렘의 성전과 왕궁, 그리고 모든 건물을 불태워버렸으며, 사면의 성벽도 모두 헐어버렸다. 그리고 왕족과 제사장과 귀족들을 모두 포로로 잡아가고, 그 땅에서 가장 가난한 백성 가운데 일부만 남겨두어 포도원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성전의 값나가는 주요 기물들은 모두 전리품으로 가져갔다(‘열왕기하’ 25:8-17)

그런데 바빌로니아로 끌려간 이들은 바빌론으로 들어가며 무척 놀랐다고 한다.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이 잘 만들어진 도시가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네부카드네자르가 아버지가 만들기 시작한 성전을 이어서 쌓아올린 거대한 성전 ‘지구라트’(ziggurat)가 바빌론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축물이었다. 높이 198m의 신에 이르는 길인 이 거대한 건조물은 8층의 신전이며 후에 히브리신화에서는 바벨탑으로 표현된다. 흙으로 구은 벽돌과 갈대와 석회를 사용한 모르타르로 접합을 하며 쌓아올렸고, 강의 범람으로 잠기는 하층부는 천연 아스팔트로 방수 마감을 했다. 그리고 최상부에는 화려하게 꾸며진 신전이 있는데, 그 안에는 태양의 신인 마르두크(Marduk)상이 모셔져 있었다.

질서정연한 시가지에는 우뚝 솟은 지구라트와 아름다운 공중정원 등의 건축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신전으로 연결되는 널찍한 ‘신성한 거리’는 석회석과 붉은 각력암으로 된 포석 위에 벽돌을 깔고 그 위를 천연 아스팔트로 포장했다. 그 길로 사람들은 발에 흙을 묻히지 않고도 지나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길의 끝에는 너무나 유명한 ‘이슈타르(Ishtar·사랑과 전쟁의 여신)의 문’이 있었다. 꽃과 동물이 포함된 아름다운 문양이 들어간 파란색 법랑으로 입혀진 탑은 이중으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성경에서 인간이 신에게 도전하다 ‘철퇴’를 맞고 무너졌다고 묘사되는 바벨탑은 후에 바빌로니아가 침공을 받으며 부서지게 된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벽돌을 빼내어 가져다가 교각이나 다른 건물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바람에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집트의 람세스 2세나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시대, 혹은 경덕왕 때 정점을 찍었던 신라 말기의 문명 또한 비슷한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마치 고갯마루에 오르면 다음에는 내리막이 나타나듯이, 그들이 만들어낸 문명뿐 아니라 국운이 급격히 기울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문명과 나라 명운의 상관관계를 논리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지만, 문명이 완성되고 번창하게 되면 당연히 사람들은 자만하게 되고 풍족함에서 오는 나태와 방종이 뒤따르는 것이 세상 이치인 모양이다. 그 결과 국력이 약해지고 나라의 명운이 다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무언가를 창조하는 존재다. 항상 어려움에 봉착하면 출구를 찾고 해결책을 궁리하고 조건에 대하여 반응하며 창조적인 활동으로 이어간다. 그런 까닭에 다른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몸집도 작고 생존경쟁에서 별반 큰 이점이 없는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불을 찾아내고 언어를 만들고 문자를 만들어냈으며 개인의 특수한 경험들을 공동체의 것으로 만드는 ‘일반화’라는 개념적 사고를 하게 되었다. 그런 것들로 인해 인간의 문명은 발전하고 세상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불의 발견이 그랬고 농사가 그랬고 산업혁명이 그랬듯이, 그리고 20세기 즈음에는 정보혁명을 가져왔다. 그리고 민족과 국가로 엮이지 않는 보다 넓고 큰 정보의 왕국들이 차례로 생겨나기 시작한다.

마크 저커버그가 공개한 페이스북 사옥 모습. 협업과 소통을 중시한 형태로, 옥상 전체가 정원과 산책로이다.
#정보의 왕국, 21세기 문명을 상징하다


정보혁명은 컴퓨터와 전기통신기술의 발전에 의해 이루어졌다. 근대 이전의 인간들이 거주지를 벗어날 수 없어 농노가 되거나 직업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면, 산업혁명 시대를 거치며 사람과 물건의 이동시간이 혁신적으로 단축되며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변화했다. 그리고 정보혁명 시대에는 더 이상 물리적인 이동 없이도 정보와 기술이 교환되면서 이전에는 미처 예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문명을 이룩하게 되었다.

사무실이나 집에 가만히 앉아서 메시지나 이미지, 동영상 등을 다른 장소, 심지어 외국에 있는 가족이나 동료에게 순식간에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니다. 개인용 컴퓨터가 일반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인터넷은 무척 많은 비용을 들여야 사용할 수 있었고 자료 전송속도나 용량에 한계가 있었다. 그런 문제점들은 불과 10여년 사이 해결되었고, 수천년 동안 인류를 제약했던 ‘거리’의 한계는 어이없을 정도로 손쉽게 극복되었다.

지금 세계를, 21세기의 문명을 이끌어가는 것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정보의 왕국이다. 1973년생인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Larry Page)가 25세 때인 1998년 만든 검색포털 사이트 구글이 알타비스타나 야후를 누르고 심지어 누구나 위성으로 전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1984년생인 마크 저커버그가 하버드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페이스북의 전신인 ‘페이스매시’(Facemash)라는 SNS 서비스를 시작했던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인 2003년이니 불과 20세 때였다. 신의 부름을 받았다거나 왕족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피를 부르는 정복전쟁도 거치지 않은 평범한 젊은이들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의 사람들을 자발적인 통제시스템 안에 두고 있다. 우리는 모두 눈 뜨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각종 스마트 기기들을 손에서 떼지 못하고, 우리의 신상과 일상, 일거수일투족을 속속들이 파악한 그들이 우리의 취향과 행태에 맞춰 제공하는 각종 정보들을 즐겁게 누리고 있다. 아마 조지 오웰이 살아있었다면 서슴없이 그들을 ‘빅 브러더’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예전의 문명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그랬듯, 그들의 업적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상징들을 세우고 있다. 구글의 캠퍼스나 애플의 우주선 같은 도넛 모양의 거대한 사옥도 무척 이목을 끌었지만, 최근에 입주한 페이스북의 사옥이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건 건축가가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인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929년생이니 올해로 86세가 되는 원로 건축가 게리가 젊은 기업 페이스북 사옥의 설계를 맡게 된 건 아무래도 나이를 뛰어넘는 혁신적이고 매력적인 디자인 때문일 것이다. 미국 서부에서 활동을 시작한 캐나다 출신의 유대인 건축가 게리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도대체 직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형의 덩어리들로 이루어진 특별한 조형의 건축이고, 그 대표작이 퇴락한 산업도시에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도시재생 건축의 선도적 사례로 손꼽히는 스페인 빌바오 미술관이다.

유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디자인을 위해 선박용 설계 프로그램을 이용한다는 게리의 특수한 설계방식은 페이스북 사옥에서는 무척 보수적으로 적용되었다. 축구장 7면을 합친 규모(약 4만278㎡)의 페이스북 사옥은 놀랍게도 단층(물론 층고는 8m로 무척 높다)이고 실의 구분이 없는 오픈 플랜(open plan) 형태의 사무실로 이루어졌다. 즉 2800명의 직원이 칸막이 없이 열린 채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며 일하게 되고, 대표인 저커버그 또한 그 중간에서 일한다고 한다. 기존 사옥과는 지하에서 연결되고 옥상 전체가 정원과 산책로가 되었다.

고대 왕국의 왕들은 길을 만들고 신전을 세우고 왕궁을 세워 도시를 만들며 하나의 문명을 만들어 냈지만, 그런 혈통이나 지역의 구분이 없는 현대의 왕국은 인터넷이라는 보편적이며 강력한 무기로 세상을 뒤덮었다. 이전의 왕국이 보이는 도시로 문명의 자취를 남겼다면 현대의 왕국은 보이지 않는 도시로 또 다른 문명을 창조하고 있다. 이런 상징은 무척 재미있고 함축적인 의미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마침내 보이는 도시를 만들고 있고, 우리는 마치 바빌론에 처음 간 유대인들처럼 경이롭게 그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가온건축 공동대표·

임형남·노은주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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