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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 안녕하십니까] 디지털 감시망에 갇힌 10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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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25 19:59:24 수정 : 2015-04-22 21:5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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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안가면 엄마에 메시지 '딩동'… 디지털 감시망에 꽉묶인 아이들 '死생활'
“엄마가 저한테 전자발찌를 채웠어요.”

서울 양천구 한 초등학교 6학년인 A(11)군의 스마트폰에는 자녀 위치추적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이 설치돼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3주가 지났지만 A군은 아직 한 번도 방과 후에 한눈을 팔아본 적이 없다. 오후 1시30분쯤 수업이 끝나면 2시 전에 집에 도착해서 숙제를 하다가 3시까지는 영어학원에 가야 한다. 미리 위치설정을 해놓은 집과 학교, 학원 등에 도착할 때마다 부모의 휴대전화에 자동으로 알림 메시지가 발송되기 때문에 부지런히 발걸음을 놀려야 한다.

A군은 “작년에 반 친구들이랑 PC방에 가느라 학원을 빠진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엄마랑 휴대전화에 위치추적 앱을 깔았다”며 “처음에는 너무 답답해서 앱을 지워버리고 가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2학년생 B(16)양은 부모용 학습관리 전용 앱이 주말 자유시간을 빼앗아 갔다고 호소했다. 자녀가 수강하는 온라인 강의와 연동된 학습관리 앱을 부모의 스마트폰에 설치하면 자녀의 학습시간과 진도, 단원별 정답률까지 확인할 수 있다. B양은 “주말에 독서실에서 (짬을 내)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집에 오는 길에 맛있는 음식도 사먹는 게 낙이었다”며 “지금은 독서실에서 태블릿 PC로 동영상 강의를 보는 동안에도 늘 부모님이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창살없는 감옥’ 디지털 감시망에 갇힌 아이들


정보통신기술(ICT)이 발달하면서 부모가 자녀를 감시하는 수단도 진화하고 있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 등록된 청소년 위치추적 관련 앱은 230여개에 달한다. 이동통신 3사도 부가서비스나 별도 단말기를 통한 위치추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와 SK텔레콤, KT가 협력해 출시한 ‘U-안심알리미’는 지난해 7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5개월 만에 학생 가입자 2만명을 돌파했다.

가뜩이나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청소년들의 입장에선 신형 앱의 등장이 반가울 리 없다. 각종 온라인 포털 사이트에서는 부모가 일방적으로 위치추적 서비스에 가입했다며 해지방법을 문의하거나 부모 몰래 위치를 조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청소년들의 글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위치추적 서비스는 원래 자녀의 안전과 탈선예방을 목적으로 개발됐지만, 교육에 관심이 많은 일부 열혈 학부모들은 이를 이용해 자녀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사실상 위치추적의 자발적인 동의를 얻는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다”며 “부모가 자녀와 진지하게 대화하고 동의를 구했을 때만 위치추적을 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학생시간 셧다운’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는 스티커.
아수나로 제공
◆“청소년 통제 대신 자율적 책임감 키워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건복지포럼 최근호(2월호)에 발표한 ‘한국아동의 주관적 웰빙수준과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학업 스트레스 지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영국, 독일 등 30개국의 11세, 15세, 17세 청소년의 학업 스트레스를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 청소년의 학업 스트레스 지수는 50.5%로 1위를 차지했다.

김미숙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청소년기부터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면, 나중에 정신건강의 문제로 표출돼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의무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청소년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을 갖추도록 하고 가족 안에서도 방과 후 여가시간을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학습시간을 줄이고 휴식을 달라”는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직접 행동에 나선 청소년들도 있다. 청소년 인권행동 온라인 단체인 아수나로는 지난해 말부터 ‘학생시간 셧다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야간에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셧다운 제도처럼 적절한 학습 시간에 대한 사회적 약속을 만들고 학생들의 자유시간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이들이 제시한 요구사항은 ▲수업시간 하루 6시간(오전 9시∼오후 3시) 준수 ▲정규수업 외 강제학습 금지 ▲방학일수 연장 ▲휴일과 야간 휴식보장 등이다.

캠페인 홍보업무를 맡고 있는 아수나로 활동위원 유모(18)양은 “우리나라 학생들은 학습시간에 시달리면서 쉬는 것에 대해 늘 죄책감을 갖고 살아간다”며 “학교나 부모가 사생활을 통제하는 대신 학생 스스로 자제하는 법을 깨우치게 하자는 공감대와 사회적 분위기를 확산시켜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박세준·김승환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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