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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와타나베의 후쿠시마 기억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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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사고 피해 주민 3개월마다 초청해 도쿄시민과 토크 모임
미디어 거치지 않은 그들의 진짜 이야기로 그날의 기억 공감·소통
인간이 기억을 온전히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과거 전체가 ‘속수무책의 비밀’이 돼 삶이 즐겁지 않을 것이라고, 작가 손홍규는 단편소설 ‘기억을 잃은 자의 도시’에서 상상한다.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관계들과 맞닥뜨린 기분은 잠들고 싶지 않은데도 눈이 저절로 감길 때와 비슷해 인생 전체가 속수무책인 것처럼 여겨졌다…지나온 삶 전부가 한순간에 비밀이 되어버렸는데도 도무지 즐겁지가 않았다.”

기억 상실이 개인을 넘어 가정이나 조직, 사회 차원으로 확장된다면 그 존립을 위협받을 수도 있다. 과거의 사실 및 현재의 관계 상실을 넘어 기억함으로써 생길 교훈과 창조의 가능성마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망각 없이 살 수 없지만 기억이 없어도 생존할 수 없는 ‘망각과 기억 사이쯤의 존재’일 것이다. 바꿔말하면, 인간이란 기억을 통해 변화하는 망각적 존재인 셈이다.

많은 여행서와 논픽션, 사진집 등을 내온 일본의 작가 와타나베 이치에(70)도 그런 사람이다. 2012년 3월 이후 3개월마다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의 피해를 본 현지 주민을 초청, 그들의 목소리를 도쿄 사람들에게 직접 전하는 ‘토크모임-후쿠시마의 소리를 듣자’를 조직해 진행해오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7시 도쿄 가쿠라자카(神樂坂)의 스튜디오 ‘세션(session) 하우스’ 2층. 소규모 전시회장으로 쓰이는 이곳에 어린이와 젊은이들부터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사람까지 몰려들었다. 참가비가 1500엔(약 1만5000원)으로 적지 않지만, 매회 60∼100명이 찾는다. 참가비는 전액 게스트에 기부된다.

이날은 후쿠시마를 방문해 폐기물 문제를 연구해온 환경운동가 세키구치 데쓰오(關口鐵夫)를 초대해 오염토 등의 중간 저장시설 문제를 중심으로 토크를 진행했다. 참석자들은 세키구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메모했으며 다양한 질문을 하며 참여하기도 했다.

회장 앞쪽에는 후쿠시마 주민들이 만든 수제품이 전시돼 있었고, 뒤편엔 그간 진행된 토크 내용을 정리한 잡지와 후쿠시마 주민들의 증언록 등이 판매되고 있었다. 이런 곳에 앉아 토크를 듣고 있자니 마치 후쿠시마의 한복판에 와 있는 느낌이랄까.

와타나베가 이렇게 조직한 토크는 지금까지 14차례. 후쿠시마의 나미에마치(浪江町)의 낙농가, 이타테무라(飯館村)에서 인근으로 피난해 카페를 연 여성, 가족을 잃은 미나미소마(南相馬) 소방단원 등등. 각종 미디어가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도 그는 왜 후쿠시마 사람들을 도쿄로 불러 토크모임을 여는 것일까. 이유가 궁금해 다음날 4일 그와 다시 만나야 했다.

김용출 도쿄특파원
와타나베는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과 뒤이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후쿠시마를 찾았고, 이메일 잡지나 강연 등을 통해 현지 소식을 전해왔다.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통하면 “뭔가 다르다”는 걸 절감해 미디어를 거치지 않는 그들의 진짜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제13회)에는 원전에서 25㎞ 정도 떨어진 미나미소마에서 혼자 생활하는 30대 남성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의 가족은 방사능 우려로 아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친정인 이와테(岩手)현으로 피난가면서 이산(離散) 상태였죠. 그런데 이와테에 피난 간 아이들이 어느 날 전화해 ‘아빠, 거기에 있으면 안 돼’ ‘아빠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한 기억을 소개할 땐 눈물을 흘리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어요. 토크를 보러 온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목도하면서 후쿠시마 사람들의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후쿠시마 사람들과 감성이 연결되고 서로 공감과 소통이 이뤄지는 것이죠.”

손홍규의 소설은 묵시록과 같이 끝난다. “도시는 기억 없이 전진한다. 전진하는 도시 속에서 그가 세웠거나 혹은 겪었던 일가(一家)는 부서졌다.” 기억 상실에 따른 디스토피아는 소설만의 묵시록에 그치길, 홍매화가 만발한 열도에서 희망한다. 그리고 ‘기억 투쟁’을 통해 후쿠시마 ‘사고’를 ‘사건’으로 되살리려는 와타나베의 분투엔 연대를.

김용출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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