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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불평등의 ‘뿌리’는 어디서 출발했을까

입력 : 2015-01-16 19:19:43 수정 : 2015-01-17 01: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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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5000년 인류역사 탐험 통해 불평등의 기원과 진화 파헤쳐
동등한 권리 누렸던 평등사회서 성과기반→세습신분→왕국으로
“인구·사회규모 증가 탓이 아닌 지배체계 의도적 조작이 원인”
폴 크루그먼 지음/안진환 옮김/세종서적/1만5000원
불황의 경제학/폴 크루그먼 지음/안진환 옮김/세종서적/1만5000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헌법 11조 1항은 이처럼 국민의 평등권을 보장해 놓았다. 인간은 날 때부터 동일한 권리를 가졌다는 것을 명시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지탱하기 위한 선언이다. 그러나 이 같은 헌법 조항이 완벽하게 우리 사회에 적용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피부로 느끼는 정도는 각자가 다르겠지만 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라도 ‘뿌리 깊은 불평등’을 체감한다. 그렇다면, 그 불평등의 ‘깊은 뿌리’는 어디에서 출발할까?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직간접적인 불평등은 어디서 태어났고, 또 어떻게 자라났던 것일까?

오스트레일리아 와라와문가족 수렵채집 생활자들은 미술, 음악, 의상, 춤 등을 이용한 의식을 통해 창조신화를 다음 세대에 전수했다.
미지북스 제공
‘불평등의 창조’는 이 같은 의문을 1만5000년에 달하는 인류 역사 곳곳을 탐험하며 파헤친다. 책의 저자는 미국의 고고학자 켄트 플래너리와 조이스 마커스. 저자들은 18세기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의 이론에서 인간불평등의 창조 과정을 찾는 기본적 틀을 빌려온다. ‘무정부적 자유’와 ‘개인적 자유’를 모두 누렸던 자연상태의 인간에서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불평등한 인간이 됐다는 것. 루소의 이 같은 기본적 인식에 두 저자는 자신들의 생각을 뼈와 살로 붙여나간다. 저자들 스스로 “루소를 갱신하다”고 표현한 이 작업에는 저자들의 전공분야인 고고학과 사회인류학이 동원된다.

책에 따르면 인류는 맨 처음 등장했을 때 모두가 평등했다. 이는 평등한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 유리하기 때문. 자원이 부족할 때 자원을 공유하기 위해 인간은 믿을 만한 광범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 넷실릭 에스키모는 바다표범 고기를 나누어 먹는 관습을 통해 사회적 연결망을 만들었다. 바다표범 한 마리를 잡아 14개의 부위로 나누고 그중 12개는 평소 사회적 관계망을 맺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 14개의 부위 중 사람들이 가장 탐탁지 않게 여기는 두 개의 부위가 자신의 몫이다. 이처럼 동료들에게 더 좋은 것을 나눠주는 행위를 통해 이들은 튼튼한 사회관계망을 형성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평등한 사회로 연결됐다.

넷실릭 에스키모들은 바다표범 고기를 나누어 먹는 관습을 통해 평등한 사회적 관습을 형성했다. 1마리의 바다표범을 14개의 부위로 나눈 후 그중 가장 질이 좋지 않은 두 개 부위를 자신이 가지고, 나머지 12개 부위는 동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미지북스 제공
그랬던 인간사회가 어떻게 해서 불평등한 사회로 이행했을까? 불평등은 인구 증가와 사회 규모의 증가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었을까? 저자들은 이 같은 생각에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환경의 변화에 따른 사회체계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불평등은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체계가 사회 논리를 의도적으로 조작해서 만들어졌다는 것.

저자들은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누렸던 평등사회에서 사냥, 전쟁 등에서 공적을 거둔 구성원이 더 큰 권한을 가지는 성과기반사회, 그 권한이 대를 이어가는 세습신분사회, 신분사회의 체계가 극에 달한 왕국, 제국까지 인류 역사의 흐름을 세세히 살펴보며 불평등을 심화시키기 위한 지배층의 사회적 조작들의 면면을 보여준다. 부채, 족보, 신성한 지식, 피지배계층에 대한 이미지의 정형화 등은 이를 위한 주요한 수단이었으며 심지어 초자연적 존재와 자신이 가깝고 연계돼 있다고 주장하는 가계도 나타났다. 집단 간 경쟁, 뛰어난 개인의 야심, 명망을 축적할 수 있는 조건 등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여러 조건에 이 같은 사회논리의 조작이 더해져 불평등이 공고해지고 차별이 일상화된 제국 등으로 사회가 이행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시각이다.

1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 속에 고고학적 지식과 세계 오지의 소수민족을 통해 얻은 사회인류학 지식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불평등의 기원을 학술적으로만 따지는 무미건조한 책은 아니다. 때로는 행간에, 또 때로는 직접적으로 저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당당히 밝힌다. 책 말미에 등장하는 “우리 조상들은 불평등에 저항할 수 있는 수십 가지 가능성이 있었지만 항상 단호한 의지를 보이지는 않았다”라는 견해와 “자연법에서는 힘, 민첩성, 지능에서만 불평등을 허용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저항할 수 있다”는 선언에서 이 방대한 저작의 집필 의도를 명확히 읽을 수 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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