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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 먹장어, 한국 서민요리 ‘꼼장어구이’ 된 사연은…

입력 : 2014-12-12 19:53:01 수정 : 2014-12-12 19: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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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쿠니 도모야스 지음/오근영 옮김/따비/1만8000원
한일 피시로드-흥남에서 교토까지/다케쿠니 도모야스 지음/오근영 옮김/따비/1만8000원


부산∼시모노세키 페리는 사람뿐 아니라 생선도 실어 매일 운반한다.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는 갯장어, 붕장어, 넙치, 피조개, 바지락 등이 실려나가고,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는 먹장어, 가리비, 멍게, 해삼 등이 들어온다. 일본에서는 먹장어(꼼장어)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산 먹장어 대부분이 국내로 유입된다. 반면 한국에서 잡힌 갯장어는 일본으로 간다. 교토 중앙시장에서 거래되는 갯장어의 4분의 1이 한국산이며, 이는 기름지고 뼈가 연하다 하여 고급으로 친다. 조선시대에는 갯장어의 생김새가 흉물스러워 먹지 않았으나 1909년부터 활어로 일본에 실려가기 시작했다.

부산 자갈치시장의 명물 꼼장어구이는 일본산 먹장어이고, 교토의 명물 요리 하모 오토시는 한국산 갯장어다. 그런데 하모 오토시가 일본의 대표적 고급 요리가 된 반면 꼼장어구이는 한국의 서민 요리가 되었다. 그 배경에는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이 자리 잡고 있다. 저자는 일본에서는 먹지 않는 먹장어가 한국에서 대표적 서민 요리가 된 연유를 찾아 나선다. 한국에서도 과거에는 먹장어를 먹지 않았다. 잡지도 않았던 생선이다. 먹장어 어업은 식민지 수탈의 산물이다. 부산에 먹장어 가죽 공장이 들어섰고 가죽은 일본으로 나갔다. 식민지의 가난한 민중은 그러고 남은 먹장어 고기를 먹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 경상남도 수산시험장의 보고에는 ‘부산부, 울산군 부근 하급 음식점에서 먹장어 요리를 내는 곳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6·25전쟁 때 부산으로 모여든 피난민들이 먹장어구이를 자갈치시장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책은 생선으로 엮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방대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로 풀어낸다. 저자는 18세기 말부터의 한국 어업사를 짚어보며 명태 잡이에 얽힌 한국과 일본의 교류 혹은 악연도 소개한다. 일본의 교토, 니가타, 시모노세키와 부산 자갈치시장, 기장 넙치양식장, 경남 고성, 강원 속초와 양양을 다니며 현재 한국과 일본의 수산업 종사자는 물론, 생존해 있는 일제 강점기의 어부까지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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