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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예술행정 혁신 안호상 국립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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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09 19:50:59 수정 : 2014-12-09 20: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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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용·창극 신세대 버전 대박… 해외서도 잇단 러브콜”
요즘 국립극장은 싱싱한 활어처럼 펄떡인다. 신작을 내놓을 때마다 ‘파격’, ‘신선’, ‘논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한국무용을 본 적도 없는 핀란드인을 데려와 우리 춤 사위를 안무하게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세계적 오페라 연출가에게는 창극을 맡겼다. TV 범죄드라마 못지않은 스릴러 창극도 선보였다. 새로운 시도에 기대와 우려 섞인 시선이 교차했다.결과는 성공이었다. 관객은 과감한 변화에 환호했다. 국립무용단은 지난해 ‘춤, 춘향’으로 창단 51년 만에 첫 매진을 맛봤다. 연극 ‘단테의 신곡’은 지난해에 이은 재공연이었음에도 9회 전 회차 표가 동났다.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창극단 최초의 미성년자 관람불가 작품이라는 제약에도 6회 매진 기록을 세웠다. 수치로 나타난 성과 못지않게 전통 예술을 찾는 20, 30대 젊은 관객이 늘어난 점도 고무적이다.젊어진 국립극장의 중심에는 ‘예술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안호상 극장장(사진)이 있다. 2012년 1월 부임한 그는 자체 제작 공연으로 1년을 채우는 ‘레퍼토리 시즌제’ 도입을 전격 발표하며 변화의 바람을 예고했다. 3년이 채 못되는 그의 재임 기간 동안 국립극장은 공연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런 성과 덕분인지 최근 안 극장장의 임기는 2017년 1월까지 2년 연장됐다. 5일 서울 중구 남산의 집무실에서 안 극장장을 만나 변화의 원동력과 우리 문화의 현주소에 대해 들어봤다.

―요즘 국립극장 객석을 보면 젊은이들이 부쩍 눈에 띈다. 작품의 면면이나 극장 운영 방식도 세련돼졌다.

“실제 유료 관객, 젊은 관객이 많아졌다. 이전에 창극, 한국무용 하면 어르신들만 좋아하는 걸로 여겼는데 요즘은 20, 30대 관객이 대부분이다. 극장이란 관객이 찾아주느냐가 관건이다. 우리 극장은 시설도 낡았고 교통편도 안 좋다. 게다가 다른 공연예술들과 경쟁해야 한다. 요즘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분야는 뮤지컬이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수준에 결코 떨어지지 않으니 관객이 쏠린다. 우리는 상당히 불리한데도 젊은 관객이 반응해주는 게 정말 고맙다. 한편으로는 이게 시대의 변화고, 새로운 가치를 갈망하는 관객이 이렇게 많았다는 것에 새삼 놀라고 있다.”

―젊은 관객층이 전통예술로 몰려들 것이라 예상했나.

“1980∼90년대 태어난 세대는 물질적 풍요 속에 성장했다. 문화적 선택에서도 공격적, 도전적이다. 새로운 것들에 열려 있다. 이들에게 한국 예술은 전통이 아니라 새로운 예술로 생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 세대에 희망을 걸었다. 발레든 클래식이든 뮤지컬이든 젊은 관객이 엄청나다. 이들이 우리 예술로 옮겨 오리라 기대를 걸고 있다. 우리 극장은 지금 젊은 세대가 반응할 새로운 가치들을 건드리고 있다. ‘장화홍련’을 스릴러 창극으로 만들었을 때 기성세대는 ‘왜 저러나’ 우려할 수 있지만, 젊은 세대는 새롭다고 열광한다.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가 한국무용에 손 대면 기성세대는 ‘전통을 망가뜨리는 거 아닌가’ 걱정하지만 젊은 세대는 재밌어 한다.”

―젊은 관객이 늘어난 데는 국립극장의 기획력과 시대의 문화적 욕구가 맞아떨어진 듯하다.

“해외에 나가보니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엄청 높아져 있다. 그간의 경제성장에 더해 K-팝, K-드라마·영화가 사랑 받으니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의 뿌리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는 것 같다. 그동안 우리가 이런 요구에 맞는 작품을 못 만들었다. 거칠고 조잡하거나 기대에 못 미쳤다. 국내에도 이미 전통예술에 호기심을 가진 대중은 존재했다. 전통예술이 미학적 완성도를 갖추면 새로운 관객이 생기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해외에서의 관심이라면 국립극장의 내년 프랑스 진출을 빼놓을 수 없다. 국립무용단 ‘회오리’가 프랑스 칸 댄스페스티벌 개막 무대에 오르는데.

“국립무용단 52년 역사상 처음으로 공연료 3만유로(약 4200만원)와 저작권료, 체재비를 받고 간다. 내년 12월 중순까지 프랑스 4개 도시에서 ‘묵향’도 공연한다. 역시 저작권료, 2회 공연료 5만유로(약 7000만원), 체재비를 받는다. 해외 극장이 자신들의 연간 프로그램에 우리를 초청해 넣었다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아쉬워서 우리 문화를 알리러 가는 게 아니다. 해외에서 필요해서 부르니 공연비도 지불하고, 자기들이 표 팔고 홍보한다.”

―해외에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프랑스 샤요 국립극장의 조세 몽탈보 예술감독이 국내에 와서 우리 무용단 연습을 보더니 넋이 나갔다. 너무 좋다고 한다. 전통을 기반으로 한 우리 예술이 그들의 눈에는 너무도 새롭게 보이는 거다. 일본과 중국은 많이 소개됐다. 서양인들은 한국이 아시아 국가지만 엄청 서구화된 나라라 생각한다. 현대자동차·삼성전자가 있고 정보기술이 꽃핀 나라라 본다. 그런데 직접 와보니 전혀 다른 문화를 갖고 있는 데다 이를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는 걸 보면서 신선함과 감동을 느끼는 것 같다. 무용뿐 아니라 창극을 공동 제작하자는 요청도 해외 여기저기에서 들어오고 있다.”

―외국인의 눈에 우리 문화가 매력적으로 비친다니…. 몸짓 언어인 무용과 달리 창극은 외국인이 익숙해지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독일 유명 연출가가 수궁가를 연출하거나 세계적 연출가인 안드레이 서반이 창극을 연출하니 국제 예술계에서 창극이란 장르에 관심이 생겼다. 또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등을 통해 판소리가 꾸준히 소개되기도 했다. 영국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진도 씻김굿을 공연할 때 인상적인 경험을 했다. 6·25전쟁 참전 영국군의 넋을 위로하는 대목에서 내 옆에 앉은 80세쯤 된 서양인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더라. 신기해서 뒤를 돌아보니 다른 관객들도 울고 있었다.”

―국립극장의 성과가 상당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을 듯하다.

“대극장인 해오름극장을 고치는 게 시급하다. 숙원 중의 숙원이다. 해오름극장은 일본 가부키 극장이다. 1973년에 급하게 극장을 짓느라 일본 국립극장 설계를 참고하다보니 이렇게 됐다. 일본 국립극장은 가부키 전용 극장으로 양쪽에 화도가 있다. 해오름극장은 이를 따라하다보니 무대 너비가 24m나 되고 양 옆에 또다른 공간이 있다. 내년이 광복 70주년인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극장의 실정이 이렇다. 빨리 창극이나 한국무용을 하기에 적합한 극장으로 바꿔야 한다. 해오름극장을 바꾸려고 예산 요청을 계속 하고 있는데, 공사비가 너무 많이 든다.”

―국립극장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적극 지원이다. 본지에서 장애예술인의 실태를 심층 취재하니 산적한 과제가 심각했다.

“그간 장애인 지원은 공연관람 지원이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더 나아가 무대 공연과 창작에 참여하는 예술가로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올해 7월 여우락 페스티벌에서는 ‘판소리 마라토너’로 불리는 발달장애 청년 최준(23)씨가 피아노 병창을 선보였다. 제야 음악회에도 장애예술인들이 참여한다. 해마다 장애인예술제도 우리 극장에서 열리고 있다. 재능 있는 장애예술인을 발굴해서 앞으로도 공연에 계속 세우려 한다.”

―남은 임기 동안 그려 나갈 국립극장의 모습은 무엇인가.

“국립극장은 그 나라 정신문화의 수준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간 서양예술이 주류였지만, 우리가 남을 좇던 시대에서 이제 동반자가 됐거나 선도하는 위치로 나아가고 있다. 어깨를 견주려면 고유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 문화를 계속 생산, 발전시키는 곳이 있어야 한다. 국립극장이 이런 곳이다. 우리 문화를 시대에 맞게 재생산하고 대중이 즐기도록 해야 한다. 전통문화를 뮤지컬처럼 보편화하는 게 우리 사명이고 역할이다. 좋은 연출 기법·형식을 수용해 새로운 창극을 만들어야 하고, 고유한 춤 사위에 현대성을 접목해 우리 춤이 내 삶의 일부인 것처럼 느끼게 해줘야 한다.”

대담=박태해 문화부장, 정리=송은아 기자, 사진=남정탁 기자

■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1959년 충청북도 보은 ▲1984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예술의전당 입사 ▲1995년 예술의전당 공연기획부장 ▲2001년 예술의전당 공연사업국장 ▲2005년 예술의전당 예술사업국장 ▲2007년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2012년∼ 국립극장 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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