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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로 살자'가 주최한 주어사 점유 관련 토론회에서 조현 한겨레신문 종교담당기자가 발표하고 있다. |
불자들의 자발적 결사모임인 ‘붓다로 살자’는 지난 25일 조계종 전법회관 3층 회의실에서 ‘주어사 문제의 종교평화적 해법 모색’ 주제로 야단법석(토론회)을 열었다. 비교종교학자인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경계너머 아하 이사장)가 좌장을 맡았고 ▲이경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사(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역사적 고찰) ▲민학기 조계종 제2교구 신도회장(지역 불교의 입장)▲한상봉 카톨릭 뉴스 지금여기 주필(가톨릭의 입장)▲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시민의 시선) 등이 발표자로 나서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참가자들은 주어사 문제는 “공간의 복원이 아니라 역사의 복원이 중요하며, 불교와 가톨릭이 종교평화의 공간으로 함께 가꿔가는 게 좋겠다”는데 뜻을 모았다.
이날 토론회는 비록 공식적인 종단의 대표가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불교계 인사와 천주교 인사가 처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또한 불자들 외에도 개신교, 일간지 기자 등이 한자리에 모여 시민의 입장에서 제 3의 시선으로 주어사 문제를 진단하고 나름의 해결방안을 제시한 것도 공감대를 일으켰다.
주최측은 이날 토론의 성과를 바탕으로 주어사 문제의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정리해 불교계와 가톨릭에 공식적으로 제안할 계획이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다음은 주요발언을 요약한 것이다>
이경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사=당시 사찰은 도심에서 떨어져있고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었기에 새로운 사상이 움틀 수 있는 산실이었다. 자율성을 확보한 공간이었고, 불교계에서도 새로운 사상이 움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 중에 하나가 서학의 강학회였다.
현재 주어사 천진암은 장소의 의미보다 많은 역사가 축적된 장소의 의미가 크다. 누가 권력을 잡고,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천주교나 불교가 각각 “우리가 뿌리다” 하고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보다는 역사를 복원하고 계승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상봉 카톨릭 뉴스 지금여기 주필=천진암 주어사가 과연 한국가톨릭 교회의 발상지인가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주류에서는 천주교의 시작은 천진암 주어사 강학회가 아니라 명례방에서 김범우 등이 모여서 예배를 한 것이라고 본다. 주어사 강학회는 천주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지성인들이 서학을 공부하고 움을 틔운 역사적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렇다해도 가톨릭의 일방적 정복보다는 가톨릭과 불교 두 종교가 서로 화합하고 두 종교의 문화가 만나서 새로운 창조 공간으로 기능하면 좋겠다. 한 지역을 특정 종교가 독차지하면서 다른 종교를 밀어내는 것은 다종교 사회인 한국 사회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태도다. 가톨릭이 그것을 성지화 하는 과정에서 주어사 안에 스님들이 어떤 도움을 주고 어떤 지원들을 했기에 강학회가 가능했는지를 역사적으로 밝히고 고마워하려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종교협력의 장소로 발전시키면 좋겠다.
민학기 신도회장=사찰 흔적이 없어지는 것을 막고, 사찰 안에서 천주교가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만은 후대에 전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주어사 복원 운동을 시작했다. 천주교에서는 40년 전부터 주어사지를 천주교 성지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2012년에 문화재로 지정됐다. 뒤늦게나마 주어사지에 5개 전각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기에 전각을 그대로 복원하고 그 중에 천주교가 공부하고 연구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기념관을 만들어 천주교와 불교 다종교 간의 공존과 평화를 상징하는 현장을 만들면 후대에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자리가 되지 않겠는가.
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우리나라는 세계유일의 다종교 국가다. 불교의 경우 고려 때까지 천년을 이 땅에서 국교 역할을 했다. 어떻게 보면 사찰 아니었던 곳이 없고 불교 자취가 없는 곳이 하나도 없다. 현실적인 논리를 제외하고 그런 역사적 고증을 하면 대한민국 전 국토를 불교 유적지로 고증해야 된다는 논리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어느 한 종교가 지배할 수 없는 시대이기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다종교 사회인 우리 사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진실에 기반해서 역사적으로 고증해서 풀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변택주 붓다로살자 연구위원장=스마트 신인류들은 자동차와 스마트폰 중에서 어떤 걸 가질래 하면 스마트폰 갖겠다고 한다. 자동차는 집을 떠날 힘을 상징하고, 스마트폰은 세상과 연결하는 것이다. 세상조차도 소유에서 공유로 변해 가는데 종교가 그걸 못해낸다면 되겠는가. 특히 불교에서는 화쟁을 이야기 한다. 서로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봐야 한다. 천주교에서도 충분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고, 불교에서도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박법수 전 대한불교청년회장=주어사 의징 스님은 조선의 개국 공신이었다. 1687년에 의징 스님비가가 만들어졌으나, 천주교가 절두산성지에 모셔놓았다. 이것은 주어사 터를 의도적으로 없애려는 의도는 아닌지 조심스럽게 의심해 본다. 화해와 상생의 입장이라면 절두산 성지에 있는 의징 스님비는 당연히 원래 있던 주어사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정웅기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운영위원장=주어사는 종교가 화합했던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 때 선한 씨앗이 심어져서 지금 대한민국에 큰 종교다툼은 없지 않나 싶다. 건물 점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로 접근한다면 필연적으로 양 종교가 다툴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은 시대에 건물 복원보다는 역사적 의미를 복원하면 좋겠다. 주어사까지는 7.5km의 오붓한 오솔길도 조성돼 있다. 과거의 아름다운 역사를 떠올리고 종교평화와 다종교 사회의 관용과 공존을 교육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조성하면 좋겠다. 불교와 가톨릭 뿐 아니라 지역 사회 시민들도 가세해 공동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도법스님=‘종교 평화 없이 세계 평화 없다’는 것이 정설로 돼 있다. 종교는 마땅히 세계평화를 견인해야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시 불교와 천주교 뿐 아니라 유교도 함께 만난 것이다. 어쨌든 당시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시대정신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21세기 시대정신이 있다. 크게는 종교평화가 이뤄져야 세계평화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주어사지를 당시 시대정신도 살리고, 오늘의 시대정신도 살려서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곳으로 가꿔가는 것이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오강남 교수=종교를 뛰어넘는 순수한 마음으로 종교 화합의 상징물이 된다면 더없이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주어사와 연관 있는 불교, 천주교, 유교 세 종교가 하나의 기념비적인 상징물을 거기다 세워서 종교 화합의 순례지로 가꿔가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두 종교 간의 선점 문제인데, 제가 보기엔 천진암 이후로 가톨릭이 공격적으로 나오니까 불교가 방어적으로 더 예민해지고 있는 것 같다.
김유신씨(사회)=이스라엘 구 예루살렘성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등 3개 종교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거기서는 3개 종교인들이 서로 다투지 않고 묵묵히 자기 고백과 성찰 의식만을 진행하고 있다. 평화를 염원하는 종교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는가 생각된다. 주어사를 통해서 부처나 예수가 말하는 신앙의 본령이 살아 숨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거창한 구호나 주장이 담긴 평화보다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모두가 자연스럽게 공감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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