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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육지로…여러 번 재주넘기 통해 '상전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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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105> 잠실  # 육지에서 섬이 된 노들섬

용산에서 노량진이나 흑석동 쪽으로 가기 위해 한강을 건너다보면 중간에 나무가 제법 울창한 섬이 하나 나온다. 그곳, 노들섬은 원래 노량진 건너 한강 북쪽에 있던 육지였다. 그리고 그 동네에 예전에 임금에게 물을 바쳤던 우물이 있었다 하여 납천정리(納泉井里)로 불렸다고 들었다. 20세기 초에 일본인들이 홍수에 대비한다며 한강을 준설할 때 지금의 노들섬 주변의 흙을 모두 걷어내며 강폭을 넓혔는데, 넓힌 강폭에 맞춰 다시 다리를 세울 형편이 되지 않았는지 교각의 의미로 땅의 일부분, 다리가 걸쳐지는 부분만 동그랗게 남겨놓았었다. 마치 나무젓가락으로 가운데를 눌러놓은 컵케이크처럼 다리가 양쪽에서 걸쳐져 있었다.

결국 이 섬은 한강의 한가운데에 낙동강 오리알처럼 동동 떠있는 모습이 되었는데, 새로 생긴 그 섬은 이후로 참 오랫동안 가운데라는 뜻만 가진 중지도(中之島)로 불렸다. 말하자면 사람 이름에 태어난 순서대로 숫자를 붙인다든가 출신지를 성의 없이 붙인다든가 하는 것처럼 일반명사화한 임시이름으로 꽤 오랫동안 불렸다. 그런데 어느 날인지 그 섬에 다시 건너편 노량진 부근 ‘노들강변’에서 따온 ’노들섬’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그 역시 성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굳이 섬이고자 한 적이 없는데 섬이 되어버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어정쩡함’을 가진 섬이다. 예전에는 그 인근이 한강 백사장이어서 여름에는 수영을, 겨울에는 썰매나 스케이트를 타거나 배를 띄워놓고 풍류를 즐기기도 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보기만 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사이 땅을 가지고 재미를 보면서 살고 있다는 어떤 세력들이 서울의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다가 이곳을 본 모양이다. 그 사람들은 지저분한 종로를 정리하면 깨끗하고 편리해서 외국인들이 몰려들어오고 장사가 무척 잘되게 해준다고 꼬드겨 600년 된 길, ‘피맛길’을 밀어버린 사람들이고, 있지도 않은 서울의 남북 녹지축을 살린다며 세운 상가 주변 장사동·예지동·입정동·주교동 등 오래된 동네들을 깔아뭉개려고 날름거리는 사람들이고, 한강 한가운데에 수천억원을 들여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알루미늄 오리알 세 개를 둥둥 띄워놓은 사람들인데, 우리는 그 사람들을 ‘토건 세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대체 그 구성원이 누구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한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잠실 풍경.
그들은 마치 공기와 같이 여러 군데에서 나뉘어 존재한다. ‘그들’일 수도 있고 혹은 ‘우리’일 수도 있고 심지어 ‘나’일 수도 있는 참으로 난감하기 그지없는 존재이다. 그 ‘세력’이 납천정리였다가 중지도였다가 현재는 잠시 노들섬인 그 섬을 ‘어떻게’ 해보려고 어느 날 그곳에 오페라 하우스를 만들겠다고 사업계획을 공표했다. 그것도 무척 크게.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강에 둥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처럼 멋진 건물이 들어서면 얼마나 멋지겠는가”, 그 말이 전부였다. 강을 보며 그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는 빈곤한 상상력과 끔찍한 개발에 대한 집착에 무한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정의가 승리하는지 ‘삼년 잔치에 쪽박을 차게’ 되어서였는지 그 내용 없이 느끼하기만 했던 계획은 멋진 투시도만 남긴 채 보관용 외장하드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곳은 그냥 ‘무한도전’ 팀이 와서 촬영을 하기도 하고,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들이 무늬만이라도 농사꾼 체험을 하기도 하고, 개구멍으로 들어가서 섬을 즐기기도 하고, 콘크리트 호안에 앉아서 낙조를 보며 낚시를 하기도 하면서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딱 그 정도면 좋을 것 같다.

그 섬을 그냥 놓아두어 동에서 서로 흘러가는 강물이 흙을 차곡차곡 쌓아 다시 육지가 되면 더 좋겠고, 아니더라도 그냥 버스 타고 와서 엉성한 철망을 걷고 들어가 강과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라면 정말 좋겠다. 내 안에 있고 우리 안에 있는 못된 ‘토건본능’이 살아나지 못하게 그렇게 놓아두면 좋겠다.

1750년대 ‘경도오부·북한산성부도’. 동잠실과 삼전도가 강북에 붙어있고 맞은편에 송파진이 보인다.
# 섬에서 육지가 된 잠실

한강의 동쪽, 지금의 광진구 자양동 아래 붙어 있다가 자연의 힘에 의해 떨어져나가 섬이 되었다가 다시 한강의 남쪽에 붙어 ‘강남’이 되어버린 섬도 있다. 송파구의 중심지역인 지금의 잠실, 신천 부근은 잠실섬과 부리도를 합해 만들어졌다. 육지를 섬으로 만들어버리며 뚝섬과 현재의 잠실 부근 사이로 흐르게 된 한강의 지류는 ‘새내’라 불리면서 신천동(新川洞) 이름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잠실섬은 한강 이북에서 떨어져 나와 다시 남쪽에 붙은 육지가 되면서, 노들섬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잠실(蠶室)이란 이름은 명주를 만들어내는 누에를 기르는 곳이라는 뜻이며, 조선시대 국가에서 민간에 양잠업을 권장하기 위해 설치한 국립양잠소를 이른다. 조선시대에는 태종 초부터 궁에 뽕나무를 심었는데, 주나라 성왕 때 주공 단이 낙읍(洛邑)에다 서울을 정했던 시대부터 만든 공상(公桑)을 본뜬 것이다. 옛날 천자와 제후는 공상(公桑)과 잠실(蠶室)을 가지고 있어서, 궁실의 부인들은 반드시 공상에 뽕나무를 심어 잠실에서 누에를 쳐서 옷감을 짜는 일을 의무적으로 했다고 한다. 즉, 양잠을 왕실에서 직접 관장했다는 이야기인데,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지은 이궁에 잠실을 설치했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연희궁(서대문구 연희동)에 서잠실, 지금의 송파구 잠실동과 신천동을 아우르는 지역에 동잠실이 있었고, 성종 때는 현재의 잠원동에 신잠실이 추가되기도 했다. 경복궁과 창덕궁 등 궁 안에 있던 잠실은 내잠실로, 서잠실과 동잠실을 외잠실로 부르기도 했다. 내잠실·외잠실과 아차산 잠실에서 각각 새 고치를 바쳤는데, 외잠실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당시에 외잠실은 상의원(尙衣院·궁중의 의복 및 재화를 관장하던 기관)에서 주관하고, 내잠실과 아차산 잠실은 환관이 주관하였다. 잠실은 거기서 생산되는 누에고치의 다과에 따라 관리자들이 인사고과의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무리하게 백성들을 동원하거나 착취하는 등 각종 폐해를 일으켜 폐지와 복구가 반복되다 임진왜란 이전에 폐지되었다. 

1861년 ‘경조오부도’. 압구정과 봉은사가 보이고, 건너편 살곶이다리 아래 저자도가 붙어있다. 그 옆에 보이는 ‘상림’이 지금의 잠실로 추정된다.
잠실, 혹은 잠실섬 지명의 유래가 된 동잠실은 자양동 강변현대아파트 부근에 있던 낙천정(樂天亭) 터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낙천정은 조선시대 태종이 왕위를 세종에게 물려 준 후 대산(臺山·살곶이벌의 동쪽에 있는 산)에 궁을 건축하고, 그 위에 지은 정자이다. 대산은 높이가 43m 밖에 안 되는 낮은 언덕이지만 멀리 청계산·관악산·남산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절경이라, 태종은 이곳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쉬면서 세종과 정사를 논했다고 한다.

낙천정 일대에서 분리되어 강 너머로 내려가 버린 잠실섬이 정작 잠실이라는 이름을 가져간 것이다. 15일 동안 내리 온 비로 섬이 온통 잠겼다는 을축년(1925) 대홍수 등 연이은 수해로 인해 척박해진 땅에서 뽕밭은 진작 사라졌고, 서울에서도 가장 끄트머리(원래는 고양군 뚝섬면이었다)였던 잊혀진 땅이 강남으로 넘어와 다시 육지가 된 것은 1971년 시행된 ‘잠실지구 공유수면 매립공사’로부터 비롯되었다.

당시 서울시 기획관리관, 도시계획국장 등을 지낸 손정목 교수의 저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 의하면, 잠실섬의 남쪽 흐름을 막아 육지와 연결시키고 북쪽에 제방을 쌓아 엄청난 양의 택지를 조성하는 이 사업은, 원래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이 직접 하려고 했던 것을 정부가 대규모 건설회사(현대건설·대림산업·극동건설·삼부토건·동아건설 등)에 정치자금을 받고 넘겨준 엄청난 이권이었다 한다. 이때 허가된 매립 면적은 100만평에 가까운 98만9976평에 이르렀다.

1960년 서울특별시지도. 신천동과 잠실동이 섬으로 표현되어 있다.
 # 끝없이 자연을 메우는 자본이라는 욕망

잠실을 섬으로 만든 한강의 북쪽 지류는 흐름이 약하고 물은 주로 남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길을 바꾸기 위해 섬의 북쪽을 파내는 하천 절개공사와 남쪽 흐름을 막는 물막이 공사가 진행되면서, 잠실은 더 이상 섬이 아니게 되었다. 매립공사를 할 때 한강에서 걷어 올리는 토사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개발사 측에서는 부족한 토사를 현재의 몽촌토성 언덕을 헐어 메우겠다고 제안했지만, 서울시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 이미 그 언덕이 보통 언덕이 아니라 백제시대에 축성된 성터 같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하니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다.

부족한 토사 대신 시내에서 배출되는 쓰레기, 즉 연탄재가 2년 동안 동원되어 저지대에 매립되고 그 위에 복토공사가 진행되었다. 이렇게 조성된 잠실지구의 총면적은 1100ha(330만 평). 가둔 물길을 막아 조성된 호수가 석촌호수다.

섬이었다가 어느 날 육지가 되면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운명을 가지게 된 잠실은 뽕나무 대신 쑥쑥 크는 아파트들을 가득 담게 되었다. 우리에게 아파트란 어쨌거나 새로운 생활 방식을 가져다준 주거양식이라, 아파트의 건설은 마치 선을 죽 긋고 1980년대와 90년대의 출발을 알리는 웅장한 팡파프와 같을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개발 초기의 아파트들은 훤칠한 외모와는 달리 그다지 여건이 훌륭하지는 않았다.

잠실이 개발되며 지어졌던 아파트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때 잠실 아파트들은 연탄아궁이가 있었던 아주 서민적인 아파트였고, 동네도 갑자기 대규모로 조성된 터라 다들 생활의 여건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런 정서는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영화감독이 된 봉준호의 초기작, ‘플란다스의 개’라는 영화에 보면 잘 나타난다. 그는 이른바 잠실 키드라고 하는데, 아파트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약간은 음험하고 무수한 반복이 마치 사람을 가두는 것 같은 분위기를 영화 속에서 아주 정확하게 재현해냈다. 

1979년 교통관광도 잠실부분. 정비가 끝나 강남쪽이 육지가 된 모습.
그러던 곳이 여러 번의 재주넘기를 통해 ‘상전벽해’라는 글자 그대로, 낮고 답답한 아파트에서 훤칠하고 돈이 되는 아파트들로 거듭나고 있다. 서울의 도시계획이 어떤 방향성이 있다고 보이지는 않지만, 땅을 통한 부의 확장에 대한 의지는 대단해 보인다. 같은 땅이라도 무슨 세력인지 무슨 음모가 끼어들면 몇 배 아니 열 배 이상 뻥튀기가 되는데, 잠실이라는 뜬금없이 육지에 편입된 섬도 예외 없이 그런 상황에 직면했다.

공원과 호수, 충분한 교통망과 학교, 주거와 상업시설, 종합운동장까지 갖춘 부족한 것 없는 계획도시 잠실에 얼마 전부터 소란스런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의 부름에 홀리듯 휴일이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수만명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 파크라는 롯데월드와 호텔, 백화점까지 갖춘 자본의 성채에 또 하나의 거대한 타워가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호텔과 테마파크가 들어선 지 25년 만이다. 그것을 세우기 위해 한 기업은 사운을 걸었고, 비행기의 항로가 바뀌었으며, 석촌호수의 물이 자꾸만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고, 아마도 매립된 물길 주변으로 짐작되는 곳곳에 싱크홀이라는 구멍이 생겨나고 있지만 123층 타워는 멈추지 않고 올라가고 있다.

공사 중인 건물에서 예상되는 위험의 징조에 대한 경고와 상관없이, 임시 개장된 제2롯데월드에 한 달간 360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석촌호수에 한 달간 띄워져 화제를 모았던 네덜란드 출신 설치미술작가 호프만의 ‘러버덕’이 일등공신이라고도 하는데, 러버덕은 물러갔지만 외국인 관광객을 앞세운 방문객들은 끊이지 않고 그곳으로 흘러들어가는 모양이다.

섬은 사람의 힘에 의해 육지에 정박했고, 쓰레기로 메운 물길을 덮고 한없이 꽃피운 저 욕망의 탑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그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지 마음이 어지럽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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