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삼척시 원덕읍의 갈남마을에 박물관이 섰다. ‘박물관씩이나’ 가졌지만, 특별한 마을은 아니다. 아름다운 동해를 터전 삼아 94가구 160여명의 주민이 사는 전형적인 작은 어촌이다. 박물관을 꾸민 건 주민들이 사용했던 어업 도구와 자잘한 기록물. 화려한 볼거리일 리 없고, 대단한 사건을 증언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주민들의 삶을 증언하는 물건들이며, 그 속에 역사가 있다. 지난 7월 문을 연 작은 박물관은 주민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공간이다.
“할머니가 주인공이라면서 손주가 좋아하는데 어찌나 우습던지….” 지난달 29일 박물관에서 만난 김태희(67)씨는 자신이 바닷속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며 활짝 웃었다. 김씨는 20대 초반에 이곳으로 시집온 제주도 출신의 해녀. 그녀의 말처럼 전시품의 주인공은 모두 주민이다. 해녀들이 작업할 때 쓰는 그물망 ‘태왁’, ‘머구리’ 잠수복, 양식장 일지 등이 자리를 잡았다.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건물은 최병록(67)씨가 우렁쉥이 양식을 했던 배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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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 삼척의 갈남마을 주민들에게 미역은 생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주민들이 억척스럽게 이어온 삶은 곧 역사이고, 그것이 모여 갈남마을박물관을 만들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
박물관을 통해 주민들은 그들의 삶을 반추한다. 최씨는 “맨날 보는 물건들인데 (박물관에 전시해놓고 보니) 새삼스럽고, 특별해 보이기도 하더라”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식들이 보고 알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물관 방명록을 보면 외지에서 생활하는 후손들, 휴가철을 맞아 마을을 찾은 외지인들에게 박물관이 전하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라지기 전에 기록에 남겨 영원히 보존되었으면 합니다! 엄마의 고향 갈남”이라고 적은 글이 눈길을 끌었다. “갈남마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갑니다. …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경치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 반한 방문객이 쓴 글이다. 외교부의 공무원이라는 한 방문객은 “외국에는 이런 박물관이 많은데, 한국에도 있어 신기했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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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주민이 운영하던 배양장에 만든 박물관 모습(사진 위쪽)과 전시물. |
갈남마을 조사는 두 명의 연구원이 반년 넘게 상주하며 진행됐다.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 진행하는 조사는 많지만, 이만한 시간을 투자하는 경우는 드물다. 조사를 담당했던 용문사 성보박물관 이승형 학예연구사는 “짧은 기간 조사해서는 상세한 생활상이나 마을 상황의 맥락을 파악하기 힘들다”며 “오랫동안 같이 지내면서 친해진 주민들이 툭툭 던지는 한마디에 정말 좋은 정보들이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주민들과의 밀착도가 높아 객관적인 기록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연구사는 “주민들이 겪었던 갈등 같은 소재를 정리할 때는 고민이 많았고,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최대한 냉정하게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갈남마을 박물관은 애초 10일까지 운영하기로 계획했었다. 하지만 외부 평가가 좋고,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아 한 달 더 연장해 운영하기로 했다. 상설화하자는 이야기도 오가고 있다. 최병록씨는 “공간 문제만 해결이 된다면 계속 운영했으면 싶다”고 바랐다.
삼척=글·사진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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