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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생, 보호관찰 청소년들과 희망을 노래하다

입력 : 2014-08-28 22:06:14 수정 : 2014-08-28 22: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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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트러블메이커∼”

공부밖에 모를 것 같은 사법연수생들이 아이돌 가수의 인기곡 ‘트러블메이커’를 흥겹게 불렀다. 무대 위의 연수원생들은 평소 입던 와이셔츠를 벗어 던지고 원피스와 반짝이는 운동화를 신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이들이 두꺼운 법전 대신 마이크를 들고 무대 위에 오른 건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멘티’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희망의 방법은 ‘함께하기’. 한때 ‘트러블메이커’였던 청소년들과 ‘모범생’ 연수원생들은 함께 무대를 꾸며가면서 같은 희망을 노래했다. 

28일 오후 고양시 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2014 희망 동행 사법연수원 법·문화축제’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사법연수생들과 사법연수원 교수진은 물론 사법연수원과 결연을 한 100여 개의 사회복지시설 및 청소년 시설 이용자들이 함께 참여했다. 사법연수생들은 물론 이들의 멘티인 보호관찰 중인 청소년들이 함께 댄스·연극·합창 등으로 무대를 꾸몄다. 시스타의 ‘터치 마이 바디’, 엑소의 ‘으르렁’ 등 최신 댄스곡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은 흡사 아이돌을 연상케 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를 맞는 이번 행사는 사법연수원이 기획한 새로운 법조인 사회참여 모델의 일환이다. 사법연수원은 지난해부터 ‘지속적 봉사활동’의 하나로 사법연수생과 보호관찰 처분 집행 중인 보호소년이 함께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법연수생들은 의정부 보호관찰소, 서울소년원 등과 협력해 보호관찰 처분을 받는 보호소년을 만나 놀이, 문화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현재 전체 사법연수생(860명)의 약 20%에 달하는 169명이 보호소년들과 멘토-멘티 관계를 맺고 있다.  

◆‘모범생’과 ‘문제아’의 만남?…“우린 모두 미성숙한 존재”

“꿈을 이뤘는데 꿈이 없네” (연극 ‘꿈에도 그리던 길’ 중 연수생 A의 대사)

“전 아직 꿈이 없어요” (보호관찰처분을 받고 있는 김모양) 

사법연수생의 하루는 오전 10시, 1교시 수업과 함께 시작한다. 수업은 오후 5시30분이면 끝나지만 저녁까지 계속되는 조모임과 반 모임, 교수와의 자리에 참석하다 보면 자정이 훌쩍 지나서야 잠들기 일쑤다. 여기에 날마다 주어지는 과제와 시험은 연수원생들에게 ‘무엇을 위해 공부했는가’라는 고민을 던져 준다.  

이날 사법연수생들은 직접 시나리오를 쓴 ‘꿈에도 그리던 길’이라는 연극을 통해 사법연수생의 불안감과 상실감을 표현했다. “나 이러다 서른 살 넘어도 결혼 못하는 거 아니야?”, “풍년이네 풍년이야, 과제풍년∼.” 등의 대사를 통해 사법연수생들 역시 일반적인 20∼30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봉사활동’이란 이름으로 보호관찰 중인 청소년들을 만나지만 연수원생들은 오히려 ‘위안’을 얻는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사법연수원 45기 신윤기(34·여)씨는 지난 3월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김모(18·여)양과 만났다. 김양은 지난 2011년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폭행 사건에 휘말려 보호처분을 받게 됐다. 김양에게 신씨에 대한 첫인상을 묻자 “판·검사 될 사람이라는데 소름끼치지 않을 보호관찰 학생이 어딨겠느냐”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내 신씨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 “빵 사달라”며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신씨 역시 “경쟁이 치열한 연수원 생활에서 힘을 얻는 건 멘토링 프로그램 덕분”이라며 “등수보다는 사회에 나갔을 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연극에 출연한 임은영(26·여)씨 역시 “이 친구들은 공부만 했던 연수생과는 달리 일찍 사회로 나오게 됐다. 모질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 비해 우리는 아직 미성숙하다”면서 “아이들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고,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모범생’과 ‘문제아’의 만남은 서로 북돋으며 성장하는 관계에 가까웠다.     

◆깊어가는 사법불신…해결방법은 ‘함께하기’

‘스폰서검사’, ‘막말 판사’, ‘사기변호사’ 등 법조계 비리가 연일 넘쳐난다. 법 앞의 정의를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도가니’, ‘부러진 화살’ 등 법조계를 비판하는 영화도 개봉 때마다 화제가 된다. 이 작품들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각각 다르지만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법조인에 대한 불신으로 수렴된다. 

지난 7월 아산정책연구원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가 주요 기관 11곳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국가 주요 기관에 대한 전체 신뢰도 평균은 10점 만점에 4.23점에 그쳤다. 그 중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는 3.69를 기록했다. 이는 신뢰도 꼴찌인 국회(2.85)에 비해 조금 웃도는 수준이지만 정부(4.26), 언론(3.86), 군대(4.67) 등 주요기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직장인 조모(27·여)씨는 “법조인들의 비리사건을 보면 과연 우리 사회에서 배운 법과 정의가 실현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제 식구 감싸기’를 통해 ‘그들만이 사는 세상’을 공고히 해온 법조인들의 반성 없이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향후 법조계를 이끌어 나갈 젊은 연수생들이 ‘소통’을 위해 봉사활동을 기획하고 직접 실행에 옮기는 이런 축제를 주도한 건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임광호 사법연수원 교수는 “미래의 법조인인 사법연수생과 보호소년, 시민 등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혀가겠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사회참여 활동을 통해 법조계와 국민 사이의 인식의 격차를 줄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민순 기자 coming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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