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히 영화계에 출사표를 던진 박유천이 영화 '해무'(감독 심성보)에서 순수한 여수 선머슴으로 분했다. 김윤석과 함께 영화를 이끌어가는 박유천은 최근 인터뷰에서 '해무'의 출연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해무'는 개봉 전부터 봉준호 감독이 기획, 제작을 맡고 '살인의 추억'의 극본을 쓴 심성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기대를 모았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유천은 촬영 당시를 떠올리며 모든 것이 다 그립다고 말하며 그 때를 회상했다.

"아직까지는 스크린 속에 굉장히 크게 나오는 얼굴이 어색하고 신기하기도 해요. 그렇게 많이 떨어 봤던게 오랜만이라 보는 내내 영화를 어떻게 봐야 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시간이 더 지나봐야 실감이 날 것 같아요. 촬영은 올 초에 끝났고 지금은 마무리 단계지만 이제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해무' 촬영을 다시 하는 느낌이에요"
"무대 인사도 그렇게 여러 번 하는지, 많이 돌아다니는지도 몰랐어요.(웃음) 그냥 기분이 묘 하더라고요. 잘 찍어놓은 건 확실한데 심사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마무리에 대한 먹먹함이 확실히 있었고요"
앞서 박유천은 아이돌 출신의 연기자라는 이유로 시청자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꾸준히 실력을 닦으며 안정적인 연기로 배우 박유천으로도 손색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해무'는 그의 첫 스크린 도전이기 때문에 유독 남다르다.
"무모한 도전이 아니냐고 주변에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안 들고 제대로 몰입해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몰입 했을 때 고민을 하는 연기를 해보고 싶었고 극 중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동식이 부럽기도 하더라고요"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요소들을 여섯 개로 나눠서 표현하는 것에 생각도 많아지고, 시나리오를 보면서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은 분명히 했습니다. 과연 이걸 제가 소화해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요. 하지만 의욕이 컸기 때문에 가능 했습니다"

박유천은 가수로 연예계에 뛰어들어 드라마를 넘나들며 연기 호평을 이끌어 낸 바 있다. 하지만 익숙해진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낯선 생소함이 묻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드라마와 비교해 봤을 때 시간 차이가 가장 컸어요. 드라마는 영화보다 시간이 더 짧게 주어져서 순발력과 집중력이 향상된다면 영화는 고민하고 생각하고 의논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것 같아요. '해무'를 하면서 대화를 많이 나누기도 했지만 일상적인 자리들이 많아서 연기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물론 술도 많이 먹었고요(웃음)"
'해무'는 봉준호가 제작, 연출을 맡아 박유천에게도 큰 행운이었을 것이다. 첫 스크린 데뷔가 봉준호 감독이 참여한 작품이라 그에게도 소감이 남다르다.
"봉 감독님의 한 마디는 다른 분들의 말씀보다 남달라요. 생각이 독특하시고 표현이 디테일 하십니다. 평범한 말일지언정 그 말을 들으면 생각이 많아져요. 일상 대화는 물론 핸드폰 문자도 신선하세요(웃음)"

박유천이 열연한 동식은 순박하지만 사랑에 빠진 후 사랑하게 된 여자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앞만 보고 달린다. 해무에 갇힌 낡은 배 한 척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의 촬영은 섬세한 심리 묘사가 더 필요할 것이다.
"동식이는 전반적으로 모든 것이 새로운 캐릭터였어요. 하지만 굳이 모두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투리, 걸음걸이, 습관들과 눈빛에 포커스를 잡았어요"
"'해무'를 촬영하기 위해 5kg 정도를 찌웠습니다. 드라마와 촬영이 겹쳐서 두 작품을 한 번에 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늘 부어있기도 했지만 연기만 잘해보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해무'는 삶의 축소판이라는 설정이 강하다.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가 있었지만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 선장 철주(김윤석 분)와 사랑 앞에 순박함을 잃은 동식은 누구의 편도 들어주기 힘들다.
"모든 인물들이 이해가 다 됐습니다. 거기에 대한 딜레마가 너무 컸어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잣대를 보고 그것을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이기적이더라고요. 동식이에게 화도 나기도 하고 저였더라면 다르게 풀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죽음이라는 소재가 있었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긴 힘들 것 같아요. 영화상에서는 고민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아 스스로 더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차라리 나와 줬더라면 동식이가 더 이해가 갔을 텐데 저 혼자 고민하고 혼자 풀어가야 했던 숙제였어요"

박유천은 극 중 배우 한예리와 베드신을 촬영했다. 그에게 '해무'는 첫 스크린 데뷔작이자 첫 베드신이라 더 많은 감정을 요구했다. 상황이 극에 달하고 마냥 사랑만 나눌 수 없는 극 중 동식과 홍매(한예리 분)의 베드신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한다.
"찍기 전까지 베드신 자체가 고민이 아니라 베드신이 이 상황에 맞는 건가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사람이 살면서 이런 상황을 접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환경과 죽음의 앞날을 모르는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 혼란이 왔습니다. 그러던 중 홍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어요. 홍매를 뒤에서 안고 있는 장면에서는 떨어질 수가 없더라고요. 너무 무섭고 슬퍼서 잠시나마 뗄 수가 없었어요. 그 상황 안에서 홍매의 존재가 의지가 되고 숨 쉬는 것 조차 실감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최대한 드러나도록 촬영에 임했어요"
"동식에게 홍매는 평범하지 않은 사랑이에요. 신기루처럼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요. 하지만 홍매는 살아야 하는, 살아야만 하는, 살아 갈 수 있는 원동력이자 꿈같은 사람이었어요. 짧은 시간 안에 사랑을 느끼고 바로 그 사랑을 놓아야 하는 한계에 치닫는 사랑이지만요"
2014년 8월, 한 여름을 조금이나마 잊게 해주는 영화는 개봉을 앞둔 '해무' 뿐만 아니라 상영 중인 '군도'와 '명량', 그리고 '해적'이 있다. 그 중 박유천이 생각하는 '해무'만의 매력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선배님들이 늘 하셨던 말씀처럼 '해무'는 정말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입니다.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사람이 느끼기 쉬운 감정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죠. 그 감정을 잘 풀어서 흥행에 관계없이 좋은 영화인 것 같습니다. '해무'는 잔상에 오래 남을 영화일거에요.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봐도 시대를 타지 않는 영화가 되지 않았으면 해요"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만큼 앞으로의 그의 포부도 남다를 것이다. 쉬지 않고 사랑 받아 왔던 그에게 앞으로 어떤 즐거운 욕심을 부리고 싶은지 궁금해졌다.
"연기를 계속 하고 싶어요. 어떤 배역이 들어와도, 그 배역이 단역이어도 끝까지 하고 싶습니다. 연기하는 마음이 있으면 누군가는 써주시겠죠?(웃음) 지금은 어떤 분이라도 절 찾아줄까 하는 생각이 더 커요. 그리고 그 것에 대한 고마움이 느껴집니다. 피곤하지 않고 모든 것이 다 좋아요"
"아직도 김윤석 선배님 바로 뒤에 나오는 제 이름이 신기해요. 처음에는 마냥 기쁘고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창피하기도 했고 최선을 다 하지 못하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그리고 제게 앞으로 또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특히 소나기 같은 서정적인 사랑을 표현해보고 싶어요. 20대가 가기 전에요.(웃음) 그리고 '그 순간 최선을 다해서 잘 표현한 것 같다'라는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
이린 기자 ent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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