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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필리핀 세부 막탄국제공항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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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16 22:07:51 수정 : 2014-07-16 22: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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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이른 여름 휴가로 필리핀 세부를 다녀왔다. 여섯 살 난 개구쟁이 아들과 두 돌을 앞둔 딸은 4시간의 고생스런 비행 끝에 ‘천국’을 차지했다. 리조트에 딸린 워터파크의 물 미끄럼틀은 국내와 달리 한산했고, 유수 풀과 키디 풀도 남매의 독점 놀이터였다. 해외에서 마땅한 휴가지를 찾던 우리 부부가 원한 조건을 아이들이 그대로 누린 셈이라 뿌듯했다.

달콤했던 5일간의 휴가 일정을 마치고 세부를 떠나던 날, 막탄국제공항에서의 경험을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다. 공항 측은 출국하는 여행객 1인당 550페소(약 1만3000원)를 공항세로 받았는데, 이걸 모르고 준비하지 못했다. 공항 직원은 “달러화까진 받지만 카드 결제는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출국장 안에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없다는 얘기에 당황하기까지 했다.

공항 직원의 안내로 공항을 한참 벗어난 곳의 ATM에서 겨우 달러화를 마련했다. 두 아이가 비몽사몽인 자정 무렵에 벌어진 일인 데다, ATM을 찾기까지 ‘수습’ 직원이 30분가량 헤맸기 때문에 감정이 격해졌다. 공항 측이 현금만 고집한 게 왠지 비리와 연관됐을 것 같다는 억측까지 쏟아냈다. 준비 부족으로 인한 해프닝이 필리핀에 대한 반감으로 변한 순간이다.

정재영 산업부
겨우 공항세를 내고 들어간 출국 게이트 앞에서 우리 부부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우리나라 관광객들이었다. 직항 국적기가 몰린 시간이어선지 게이트 앞은 김포공항으로 착각될 정도로 한국인으로 붐볐는데, 앉을 곳을 찾기 힘들었다. 의자 3∼4개를 차지하고 드러눕거나, 쇼핑 보따리를 의자 2∼3개 위에 ‘소중히’ 올려놓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의자 4개 위에 짐 보따리를 놓고 두 다리를 쭉 뻗은 한 중년 여성은 외국인 여행객이 눈치를 줘도 힐끗 쳐다보고 다시 일행과 큰 소리의 사투리로 잡담할 뿐이었다. 한 40대 남성은 앉을 자리를 못 찾아 서성거리는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쓰고 대(大)자로 드러누운 채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했다. 새벽 비행기를 타는 고생은 그들만의 것이 아닐 텐데, 빈 의자는 모두 그들 차지였다. 그나마 우리처럼 아이와 함께 온 한 가족이 의자에 수북이 쌓인 가방을 바닥으로 내려줘 의자 하나를 겨우 차지했다.

불과 30분 전에 공항세 해프닝을 겪은 뒤 지저분한 도로 풍경을 떠올리며 경제적으로 우리나라에 뒤처진 필리핀을 책망한 게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제야 여행 기간 내내 우리 가족에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 준 필리핀 사람들의 친절함이 떠올랐다. 결과적으로 헤맸지만 어설픈 영어로 ATM까지 안내한 수습 직원의 ‘호의’도 그제야 고마웠다. 우리나라보다 못산다는 선입견 때문에 필리핀 사람들의 친절함을 간과하고, 아무런 근거 없이 억측까지 한 게 미안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경제성장만 중시하다가 기본적인 예의나 질서를 외면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귀국길 내내 지울 수 없었다.

정재영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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