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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디자인의 아버지… 일상에 예술을 입히다

입력 : 2014-07-03 21:17:06 수정 : 2014-07-03 21: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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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97> 윌리엄 모리스
# 독서를 통해 세계를 읽는 여행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미래에 대해 많은 꿈을 꾼다. 가령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 오지를 탐험하는 탐험가, 아픈 사람을 낫게 해주는 의사를 비롯하여 축구선수, 은행원, 군인, 심지어 대통령까지 거칠 것이 없이 꿈은 나날이 변하곤 한다.

나도 그런 계단을 밟으며 나이를 먹다가, 어느 날 여행가가 되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러고는 무언가 구체적인 실행을 하겠다며 지도에 있는 각 나라의 수도를 외우기 시작했고, 가끔 친구들과 수도 외우기 시합을 벌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행을 하는 것은 직업이 될 수 없다는 주위의 만류로 그 꿈은 언젠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래도 나는 여행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만나게 해주고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무엇인가를 만난다. 새로운 장소를 만나기도하고, 같이 떠난 동료를 새롭게 만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다. 익숙해져가는 현실을 조금 멀리서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여행이란 본질적으로 책을 읽는 것처럼 정신적인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시내에서 약속시간이 남아 서점에 들른 적이 있다. 여유롭게 천천히 책의 숲을 거닐었는데, 그날 따라 새삼스레 그 숲에는 정말 많은 책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태반은 내가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었다. 문득 여행을 다니며 전 세계를 다 보지 못한 것보다 서가에 꽂혀있는 저 많은 세계를 다 구경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면 정말 억울한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몇 권, 아니 ‘세계’를 몇 개 챙겨들고 밖으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통해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생각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때 서점에서 집어 들었던 책이 마르셀 프루스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그 책은 물론 우리 집에 이미 있었다. 그렇지만 아주 오래전에 구입한 책이었고, 읽다가 번번이 포기했던 책이다. 마치 참고서가 오래되어 공부 못하겠다고 변명하는 게으른 수험생처럼, 그동안 못 읽은 이유가 모두 낡은 책 때문이었던 듯이, 나는 새롭게 번역되고 새롭게 장정된 산뜻한 책을 들고 나왔다.

프루스트는 존 러스킨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러스킨의 저작에 깊은 감동을 받아, 사물을 관찰하고 기억하고 새로운 형태로 재창조하는 그만의 독특한 기록의 방식을 만들었다. 프루스트가 러스킨의 ‘참깨와 백합’, ‘아미앵의 성서’ 등을 번역하며 썼던 서문을 보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장식적인 모리스의 타피스트리 디테일.
# 르네상스적 인간, 윌리엄 모리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고 다듬어 낸 ‘지식’이라는 보이지 않는 인류의 가장 소중한 재산은 몇 사람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핵이 분열과 융합을 거듭하듯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확대 생산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프루스트가 러스킨의 영향으로 현대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품을 만들어냈듯이, 윌리암 모리스라는 지식인도 러스킨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20세기의 현대건축과 디자인이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윌리암 모리스는 영국의 시인이며 공예가이며 건축가이며 또한 사상가이다. 그는 계관시인에 추대될 정도로 위대한 시인이었으며, ‘예술공예운동’(Art and Craft Movement) 운동을 펼치며 ‘생활디자인’이라는 고유한 분야를 개척했다. 또한 건축공부를 하고 오래된 건물을 지키는 운동에 헌신하였으며, 윤리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위해 사회주의운동을 활발히 개진하였다. 쉽게 말해 그는 ‘르네상스적 인간’의 전형이었다. 그는 많은 일을 했고, 그의 모든 활동은 생산과 자본을 위해 인간이 기계처럼 부려지며 신성한 노동이 폄하되고 부가 편중되는 것에 대한 분개로부터 비롯된다.

당시는 18세기 말 산업혁명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속화되기 시작한 자본주의적 소비가 1851년 만국박람회 이후 극대화되는 시점이었다, 자본과 소비의 총아인 백화점이 등장하고 그 물신의 영향력은 근대의 가정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성직자가 되기 위해 옥스퍼드에 입학한 모리스는 위대한 저술가 존 러스킨의 사상에 매료된다. 특히 ‘베니스의 돌’에 나오는 ‘고딕의 본질’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예술이란 인간이 노동에서 느낀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다”는 말에 그는 깊이 공감한다. 그 말은 그의 앞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된다.

그는 화려하고 대량생산에 의해 만들어지는 기계적인 건축의 시대의 미적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보통 사람들이 사는 민가나 노동자들의 공동주택 등 소박한 건물로부터 새로운 건축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신념을 피력했다. 그리고 그는 친구들과 더불어 회사를 설립한다. 그 회사는 사람이 살면서 필요로 하는 모든 제품과 장식을 기계가 아닌 예술가의 손으로 만들고, 더군다나 저렴한 비용으로 만들겠다는 아주 야심만만한 결의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열린 만국박람회를 통해 알려지게 되고, 회사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 빠르게 성장한다.

그의 활동은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며 첨예해지는 자본주의적인 사회 환경에 대한 반성과 균형을 잡고자하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그는 자본과 기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노력을 기울였으며, 노동이 없는 예술이나 생산은 완전하지 못한 것이며 진정한 예술은 노동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전형을 중세 고딕예술에서 찾는다. 그리고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디자인, 건축, 문학뿐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사회주의 정당을 설립하고 활발한 정치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한 모리스는 순수한 열정으로 운동을 전개하였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았고, 개인적으로도 그리 행복한 삶을 이루지는 못했다. 

레드 하우스. 필립 웨브가 설계해준 윌리엄 모리스의 신혼집으로 붉은 벽돌로 치장한 외장, 비대칭형 L자형 평면은 새로운 주택의 유형을 보여주면서 현대적인 주택의 시작으로 평가받는다.
# 진정한 예술· 노동의 즐거움 아는 시대를 꿈꾸다

러스킨의 영향으로 건축가로 꿈을 바꾼 모리스는 스트리트라는 당시 잘나가는 건축가의 사무실에 들어간다. 그러나 정작 건축가가 되지는 못하고, 평생을 같이할 동료인 필립 웨브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후에 모리스의 신혼집을 설계해준다.

1859년 필립 웨브의 설계로 4000파운드라는 거금을 들여 번 존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등 모리스의 모든 동료들이 총 동원되어 만들어진 레드 하우스(Red Blick House)는 5년 동안 모리스 부부가 살았던 집이다. 이후 경제적인 사정으로 모리스가 런던으로 이주한 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가, 2003년 내셔널 트러스트가 구입하여 역사적인 건축물로 보존하고 있다.

레드하우스는 당시로서는 매우 대담한 집이었다. 붉은 벽돌로 치장한 외장은 매우 거칠어 보이며 심지어 내부마저도 구조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리고 비대칭형 L자형 평면은 새로운 주택의 유형을 보여주어 현대적인 주택의 시작으로 평가받는다. 섬세하게 배려된 내부의 장식도 이 집이 ‘예술공예운동’의 요람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듯하다.

모리스는 도판, 벽지, 직물,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디자인했고, 출판사 ‘켈름스콧 프레스(Kelmscott Press)’를 차려 그가 고안한 서체 활자체와 테두리의 장식, 번 존스 및 여러 화가들의 삽화가 들어간 시집과 이야기책 등을 출간했는데, 획기적인 편집과 아름답고 장식적인 그래픽은 ‘아르 누보’의 성립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건축역사학자 페브스너는 그를 ‘현대 디자인의 아버지’로 부른다.

모리스는 그가 꿈꾸는 이상향을 그리며 ‘에코토피아 뉴스’라는 글을 자신이 편집하고 발간한 사회주의동맹 기관지인 ‘커먼 윌’에 연재한다. 글을 쓰는 시점으로부터 200년 후, 즉 21세기 중반으로 설정된 그 사회는 사회주의가 비로소 실현된 사회이며 첨단의 과학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중세의 복고적인 사회이다. 그 사회에는 학교가 없고 책을 통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자신의 손으로 글씨를 써서 시집을 만들고 책을 엮는다. 아이들은 인격체이고 결코 소유물이 아니므로 모든 시민에게 부여되는 권리를 인정받는다. 감옥도 없고 의회건물은 거름창고가, 영국박물관은 개인 주거지가 되어 있다. 결국 그 사회는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고 노동은 예술로 승화된 사회이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가꾸어가는 친환경적인 이상향이다.

모리스는 말년에 산문시로 분류되는 ‘로망스(Romance)’를 쓰기도 했는데, 주로 자연 풍경이나 중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그 작품들은 이후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톨킨 등에 의해 유명해진 판타지 소설의 원형이 된다.

이처럼 윌리암 모리스는 사회,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 관여했다. 그리고 이론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구체적인 생활로 끌어들이면서, 전인적이며 현대적인 지성의 길을 열어주었다. 마치 러스킨이 심은 씨앗이 프루스트와 모리스를 거쳐 현대라는 꽃을 피우듯이, 모리스의 꿈은 다양한 양상으로 현대의 예술을 만들어낸다. 톨킨과 헉슬리, 오웰을 통해 어둑한 현실에 대한 대안과 비판의 시선이 되기도 하고 누구나 꿈꾸는 이상향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얽히고설킨 지식 지형도의 전개 양상을 보는 것만 같다.

모리스가 활동했던 19세기는 인간을 기계처럼 취급하기 시작하는 시점이고 규모와 양에 심취되어 모두 자본의 확장에 열광하던 시절이었다. 노동자는 혹사당해 평균수명이 25세를 넘지 못하고, 일하는 즐거움이나 윤리적이고 인간적인 생활은 고리타분하고 낭만적인 철부지들의 푸념으로 들리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증명한다”는 천박한 구호가 나부끼던 시절이었다. 이상한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모리스가 이야기한 ‘에코토피아’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의 이 시점이, 모리스가 살던 시절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기계의 발전에 흥분하고 인간에 대한 존경이나 노동의 즐거움이라는 말은 철부지 낭만주의의 패배의식에 절은 변명으로 들리는 시대.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할지, 어떻게 해야 우리의 노동이 즐거울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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