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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노다지’ 미군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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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일이다. 논산훈련소를 퇴소하고 자대 내무반에 들어섰다. 용문산 정상의 미군 레이더기지 경계를 위해 파견된 부대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초소 경계근무를 나가는 고참(선임병)들의 복장이 낯설었다. 방한용 스키파카(설상복)와 고무방한화가 한국군에는 없는 물품이었다. 왠지 고급스러웠고 크기가 커 헐렁했다.

의문은 나중에야 풀렸다. 휴일이 되자 고참들이 미군부대 쓰레기장을 ‘수색’하러 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서로 가려고 경쟁을 벌였다. 이유가 재미있었다. 미군 쓰레기장에 쓸 만한 물건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스키파카와 고무방한화의 출처도 그곳이었다.

미군 쓰레기장은 ‘노다지’ 광산과 다름없었다. 부대원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미군 쓰레기는 따로 있었다. 미군들이 보고 버린 성인 잡지가 그것이다. 운좋게 ‘플레이 보이’라도 주워 오는 날이면 병사들의 철모 속 그림이 일제히 바뀌었다. 넝마주이처럼 쓰레기장을 뒤지는 한국군을 미군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미군은 물자가 정말 풍부한 군대였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하며 새삼 실감했다. 한국군은 실탄 사격을 하고 탄피 하나라도 비면 줄초상이 난다. 밤새 라이트를 켜서라도 다 찾아야 부대복귀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군은 탄피를 그대로 버리고 가는 경우가 흔했다. 그때마다 우리 부대원들은 보물이라도 되는 양 탄피를 주워 와 갯수가 부족할 때 채워넣곤 했다. 풍요의 나라 미국을 부러워하면서.

부대찌개만큼 미군 쓰레기를 성공적으로 재활용한 것도 없다. 6·25전쟁 직후 배가 고팠던 사람들이 의정부시에 주둔한 미군 부대에서 쓰고 남은 핫도그, 깡통에 든 햄과 소시지를 넣고 끓여 먹은 것이 부대찌개의 원조다. 당시 미국 대통령 린든 B 존슨의 성을 따서 ‘존슨탕’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포항에서 미군들이 야영장 쓰레기장에 버린 전투식량을 수거해 내다 판 70대 남성이 그제 경찰에 입건됐다. 전투식량은 개당 5000∼8000원에 판매됐는데 낚시·캠핑객과 군물품 애호가들이 선호 했다고 한다. 없이 살던 시절 미군 쓰레기를 뒤진 것은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 살 만해졌는데도 미군 쓰레기장을 뒤지는 건 궁상을 넘어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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