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섬나라들은 서로 교류가 많은 편은 아니다. 쿠바·미국의 관계에 따라서 다른 섬나라와의 관계도 바뀐다. 자메이카와 쿠바는 배를 타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배편이 없다. 그래서 쿠바까지는 큰마음 먹고 올 수 있겠지만, 쿠바에서 다른 섬으로 이동하기가 만만치 않다.
자메이카의 수도인 킹스턴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여러 가지가 낯설었다.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가 공용어여서 갑작스러운 언어 변화부터 익숙지 않았다. 그 영어가 쉽게 들려 오지 않는다. 스페인어에서 갑자기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 당혹스러웠고, 토속어도 섞여 더 안 들린다.
얼떨결에 나간 공항에는 택시와 렌터카밖에 없다. 렌터카 회사에서 지도 한 장을 얻어서 킹스턴 시내로 택시를 타고 간다. 자메이카 택시기사의 운전습관은 난폭하기로 악명이 높다. 곧 사고가 날 것같이 아슬아슬하게 몰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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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운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으로, 매일 테라스에 앉아서 감상했다. |
나는 킹스턴보다는 블루마운틴에 관심이 많았다. 킹스턴에서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가기도 쉽다. 블루마운틴으로 올라가는 차에서는 또 스릴을 즐겨야 했다.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어 익숙지 않고, 절벽 길을 쉼없이 달려 차안에서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영국이 지배했던 자메이카는 영어가 공용어이며, 운전대도 오른쪽에 있다.
콜럼버스가 쿠바와 도미니카공화국을 점령하고 나서 영국과 프랑스도 땅따먹기에 가세했다. 영국은 자메이카를 점령하고, 아프리카에서 흑인노예를 데려왔다. 그래서 이 땅은 흑인노예 시장이 됐다. 이곳에서 카리브 여러 나라로 흑인노예가 팔려나갔다. 끌려온 흑인들이 노예해방운동을 하고,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까지는 꽤 오랜 세월이 걸렸다. 1962년에 독립을 했으니, 300년이 넘도록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이들은 흑인노예의 아픔을 음악과 춤으로 승화시켰고, 그것이 자메이카의 예술로 발전했다. 자기 나라 사람을 들여와 도시를 세웠던 스페인과는 다르게 영국과 프랑스는 아프리카 사람들만 데려다 일을 시켰다. 그래서 자메이카와 아이티는 쿠바와 다른 역사를 갖고 있다.
블루마운틴 중턱에 위치한 숙소는 킹스턴의 숙소에서 겨우 예약을 했다. 블루마운틴에는 숙소가 몇 곳 있기는 하지만,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에 그 숙소들을 일일이 찾아다닐 수가 없다. 예약하지 않으면 난감한 상황에 부딪힐 수도 있다. 미리 알아봤을 때 인터넷이 되는 숙소는 한 군데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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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일품이다. |
블루마운틴이라는 지명이 익숙한 것은 커피 때문이다. 고급 커피에 속하는 블루마운틴 커피는 해풍을 맞고 높은 지대에서 자라 독특한 맛을 낸다. 이런 자연 속에서 자라면 커피가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풍미가 빼어날 것이다. 우거진 숲은 푸르고, 하늘은 손만 뻗으면 닿을 것같이 가깝게 느껴졌다. 이 풍경에 감탄하고 있을 때, 착하게만 생긴 남자가 방을 보여준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허름한 옷을 입은 남자가 이 숙소의 주인이었다. 이 집은 집주인 남자가 나무로 손수 지었다.
이 집은 튼튼해 보이진 않아도 창문과 테라스에서 블루마운틴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방에는 작은 화장실이 딸려 있는데, 그 화장실 창문이 생각보다 크다. 사실상 완전 개방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샤워를 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볼 수 없는 위치여서 자연에게만 보여주면 된다. 이 집은 절벽 위에 지어져, 창문 쪽으로는 절벽과 그 너머 산밖에 보이지 않았다. 방의 집기는 작은 침대 하나와 체 게바라 사진이 담긴 액자, 그리고 작은 책장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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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을 따라 가면 블루마운틴의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
초록·노랑·빨강의 화려한 자메이카 색깔에서 벗어나 조용하고 차분한 블루마운틴 색을 보면 마음도 고요해진다. 노예 해방과 자유를 상징하는 색들은 레게, 자메이카를 대표한다. 하지만 자메이카에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메이카 하면 떠올리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숙소 주인 남자는 아침마다 커피를 준다.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는 이곳의 종업원들은 돈을 받지만, 주인 남자는 푸근한 마음으로 커피를 그냥 준다.
식당도, 다른 건물도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필요한 것 대부분은 이 숙소에서 해결해야 한다. 자메이카의 물가가 생각보다 너무 비싸지만, 이 산 위는 그나마 괜찮다. 한동안 이곳에서 보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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