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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의 정신은 ‘중용’… 자신 낮추고 상대 높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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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6-13 21:24:25 수정 : 2014-06-14 07: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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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차문화 전파 40여년… 이귀례 규방다례보존회 이사장 인터뷰 문패는 ‘차 한 잔 나누며’인데, 인터뷰 내내 열 잔도 넘는 차를 마셨다. 사단법인 규방다례보존회 이귀례(85) 이사장은 기자의 잔이 빌 때마다 손수 끓인 작설차(雀舌茶)를 따라줬다. 워낙 무더운 날이라 처음 마실 때는 몸이 더 뜨거워지는 느낌이었으나, 자꾸 되풀이하니 약간 떫고 쓴 특유의 맛에 ‘정’이 갔다.

“차는 빛깔을 보고 향기를 맡으며 맛을 음미하는 겁니다. 이른바 색향미(色香味)죠. 흔히 차에는 쓰고 떫고 시고 짜고 단 다섯 가지 맛이 있다고 해요. ‘오미’라고 부릅니다. 우리 인생도 똑같아요. 쓴맛을 견디고 나면 달콤함을 맛볼 수 있죠,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옛말처럼.”

21일부터 인천 연수구 가천대 의학캠퍼스에서 ‘전국 인설 차문화전’을 주최하는 이 이사장과 만나 차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올해 15회째를 맞는 문화전은 5세 이상 어린이에서 대학생까지 참여해 차 예절을 겨루는 자리로,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다. 대회명의 ‘인설(仁?)’은 이 이사장의 호인데, 굳이 풀어 쓰자면 ‘인천의 향기로운 차’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 이사장에게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차는 물을 붓거나 잔에 따르거나 마실 때 반드시 두 손으로 합니다. 차를 권할 때 ‘드시죠’라고 존댓말을 써야 하고, 마시는 사람도 ‘잘 먹겠습니다’라고 인사하죠. 그러니 차를 배우면 자연스럽게 어른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다실(茶室)에서 차를 배우면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는 법, 어르신에게 절하는 법까지 함께 익히게 됩니다. 전에 여고생들을 가르칠 때 보니 다실에만 들어서면 애들이 얌전해지더라고요.”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이 이사장은 어린 시절부터 차와 인연을 맺었다.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던 할아버지가 차를 좋아했다. 옛 동지들과 모여 회포를 풀 때면 늘 찻물이 보글보글 끓었고, 이 이사장은 그 소리와 향기를 듣고 맡으며 소녀 시절을 보냈다. 성인이 되어 인천에 정착한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차문화를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일에 뛰어들었다. 1999년 한국차문화협회 회장을 지냈고, 2002년에는 인천시 무형문화재 제11호 규방다례 기능보유자로 선정됐다.

“지금은 한국차문화협회 지부가 전국 25군데에 있어 각기 활동하지만, 초창기만 해도 인천에 사는 내가 봉고 승합차에 차 도구를 싣고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전남 신안 압해도에서 경기 파주 대성동마을까지 안 가본 곳이 없죠. 요샛말로 ‘찾아가는 문화교육’인 셈이죠.(웃음) 지방에서 차를 가르치게 되면 ‘뭐 필요한 것 없느냐’고 물어요. 그럼 나는 ‘없습니다. 물만 좀 끓여주십시오’라고 대답했죠.”

규방다례보존회 이귀례 이사장은 “남을 헐뜯지 말고 남의 장점만 보면서 사람들끼리 서로 예절을 지키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차가 현대인에게 주는 교훈”이라고 말했다.
규방다례보존회 제공
이 이사장이 전수하는 차문화는 규방다례다. 규방은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 여인들이 거처하며 특유의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문화의 꽃을 피운 장소다. 이 이사장과 만난 날도 규방다례보존회 다실에선 한복 차림의 젊은 여성들이 다례를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요즘 같은 ‘여성시대’에 규방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지금은 여자들이 너무 살기 좋죠. 박사학위 공부도 하고 심지어 사관학교에도 갈 수 있잖아요. 그래도 윤리와 규범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도덕이 튼튼해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요새 드라마를 보면 여자들이 남자 뺨을 척척 때려요. 우리네 윤리와 도덕을 망가뜨리는 짓이에요. 차를 배우는 여성들에게 늘 ‘남편을 위하라’라고 합니다. 그건 남편이 예뻐서 그런 게 아니고 애들 교육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입니다. 엄마가 아빠를 우습게 알면요, 아이들은 더더욱 무시해요. 그런 가정이 무슨 질서가 서고 효도를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9월19일 개막하는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계기로 이 이사장은 일본·중국·대만·스리랑카 등 아시아 각국의 차문화를 한데 모아 보여주는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또, 인천 강화군에 묻힌 고려시대 학자 이규보(1168∼1241)가 남긴 차에 관한 글을 토대로 이규보와 차문화의 관계를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10월 말에 열 작정이다. 이 이사장한테 차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남을 배려하는 중용(中庸)이 곧 차의 정신입니다. 중용이란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죠. 우리 사회는 잘난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한자의 사람 ‘인(人)’자를 가만히 보세요. 두 사람이 서로 받쳐주고 있는 모양새 아닙니까. 인생은 절대로 나 혼자 사는 게 아니에요. 남을 기분 나쁘게 하지 말고, 항상 남의 장점만 보고 살아야 합니다.”

이 이사장의 동생은 가천대 이길여 총장이다. 80대의 나이가 믿기지 않게 건강하고 피부가 고운 건 두 자매가 똑 닮은 듯했다. 비결을 묻자 참으로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차를 많이 마시면 됩니다.”

인천=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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