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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상황에서 생존 확장해온 인간… 그 한계는

입력 : 2014-05-23 20:26:29 수정 : 2014-05-23 20: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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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물에 90분간 심장 멎었는데 저체온 덕분에 기적적으로 회생
인간은 어디까지 견뎌낼 수 있는가 현대의학의 도전 상세하게 소개
케빈 퐁 지음/이충호 옮김/어크로스/1만6000원
생존의 한계/케빈 퐁 지음/이충호 옮김/어크로스/1만6000원

급성심장마비로 쓰러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저체온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뒤 저체온 치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겁다. 통상 심장이 멎은 채로 4분 이상 뇌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 뇌세포가 죽어 치명적 손상을 입는다. 이때 체온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저체온 치료를 하면 뇌의 활동량 자체가 줄어들어 뇌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1999년 5월 노르웨이 산악지대에서 스키를 타던 29세 여성 안나 보겐홀름이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가 얼음에 난 구멍을 통해 물속으로 빠졌다. 일행의 신고로 즉각 구조대가 출동했지만, 안나를 물에서 꺼내 병원으로 옮길 때까지 2시간가량 걸렸다. 안나의 심장은 무려 1시간30분 동안 멎은 상태였다. 가망이 없어 보였으나 의료진은 사투 끝에 기어이 안나를 살려냈다. 차가운 물속에 오래 있었던 게 결과적으로 저체온 치료와 같은 효과를 발휘하면서 안나는 뇌 손상을 피할 수 있었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견뎌낼 수 있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안나처럼 사망 직전에 이르렀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들과 그들이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도운 의료진의 사연을 다뤘다.

한국 최초 우주인으로 유명한 이소연 박사에 관한 대목은 아주 흥미롭다. 온 국민이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처럼 이 박사는 2008년 4월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창공으로 솟아올랐다. 우주에 머물며 여러 과학 실험을 하고 국내 방송에도 출연해 국민과 기쁨을 나눈 것까지는 좋았는데, 지구로 귀환하는 도중 그만 문제가 생겼다. 우주선이 지구 대기권에 진입할 때 기체가 가벼운 고장을 일으킨 것이다.

결국 우주선은 원래 예정한 지점에서 서쪽으로 420㎞나 떨어진 카자흐스탄에 불시착했다. 귀환 직후 통신이 두절돼 약 30분 동안 이 박사의 위치는 물론 생사 여부조차 알 수 없었다. 이 박사를 비롯한 탑승자들은 대기권을 통과하는 동안 자기 몸무게의 8배에 이르는 압력을 받는 등 극심한 고통을 견뎌야 했다. 저자는 “우주선이 지상에 충돌한 뒤 몇 차례 튀다가 넘어지는 등 최악의 조건이었으나, 이 박사는 당황하지 않고 평소 훈련한 대로 행동했다”고 적었다.

‘이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없다.’ 남극대륙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한국 대학생 등 선수들이 추위와 싸우며 달리고 있다. 인류는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법을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008년 4월19일(현지시간) 러시아 우주선 동승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는 도중 기체 고장으로 카자흐스탄에 불시착한 이소연 박사가 러시아 요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헬기로 옮겨지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극한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살아나려는 개인의 의지 못지않게 사람을 살리려는 의료진의 노력과 기술도 중요하다. 책은 인간의 장기 중 가장 중요한 심장 수술의 역사, 폭탄 테러로 극심한 외상을 입은 환자들을 위한 응급치료 현장, 우주 비행사들이 겪는 신체 이상에 대처하는 현대의학의 도전 등을 상세히 소개한다. 심장 수술이 흔치 않았던 20세기 중반 외과의사들이 숱한 환자를 숨지게 하는 시행착오 끝에 비로소 안전한 심장 수술법을 찾아냈다는 비화는 독자를 숙연하게 만든다.

영국인인 저자는 마취와 집중치료를 전공한 의사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근무한 것을 계기로 장기 우주 여행 같은 극한 상황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런던대 생리학 교수로 일하며 TV 의학 다큐멘터리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두에 소개한 안나는 살아난 뒤 어떻게 됐을까.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온몸을 휘감은 마비 증상 때문에 무려 6년간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다. 지금은 방사선과 의사가 돼 전에 그녀가 입원했던 병원에 근무하고 있다. 생존의 한계를 뛰어넘어 제2의 삶을 개척한 이들의 얘기는 우리에게 언제나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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