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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축에서 색은 감동과 평온 안겨주는 요소 … ‘색즉시감’

입력 : 2014-05-22 21:32:00 수정 : 2014-05-22 23: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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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94> 색
# 더러운 색이 아름다움을 완성해준다는 역설


색을 고르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가령 양복을 입고 넥타이의 색을 고르는 일부터 방의 도배지 색깔 고르는 일, 종이를 펼쳐놓고 그림의 색을 칠하는 일까지. 지금도 밑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하려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이 설계하고 살았던 자택. 현대와 전통의 성공적인 통합과 도시와 조경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라는 이유로, 200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
명지대 남수현 교수 제공
요즘이야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심한 경우 말도 배우기 전부터 그림을 배우지만, 나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그림이라고는 그려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 입학을 하니 제일 먼저 등에 메는 가방과 얇은 교과서와 공책, 그리고 필통과 더불어 알록달록한 색이 들어 있는 크레파스가 주어졌다. 드디어 미술시간이 되자, 처음에는 쉬운 그림을 몇 개 그리더니만, 조금 지나자 선생님은 우리에게 가족들과 즐겁게 보냈던 일을 그려보라고 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얼마 전에 가족과 함께 창경원(당시에는 동물원이었던 지금의 창경궁)에 갔었던 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무를 그리고 사람을 몇 명 그리고 대충 돗자리도 그리고 하늘에 해도 그리고…. 전형적인 초등학교 1학년 다운 밑그림을 끙끙거리며 그렸다. 그리고 이제 색을 칠해야 했는데, 나무의 색, 땅의 색, 하늘의 색, 태양의 색 등 내 눈으로 본 색은 아무리 봐도 내가 가지고 있는 크레파스에는 없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결국 나는 결국 엉거주춤하게 색을 칠해서 냈고, 마음이 여간 꺼림칙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번번이 나를 깊은 갈등에 빠뜨렸다. 그래서 나는 학창시절 내내 그림을 아주 멀리하면서 보냈다.

미술을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도 거의 포기하고 살다가,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건축을 하게 되어 좋으나 싫으나 그림을 그려야만 하는 상황에 부딪쳤다. 그때까지도 그림은 나와는 다른 차원 세상의 일이었고, 당연히 그림솜씨는 실력을 논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고민 끝에 수채화를 그리는 화가 밑에서 그림을 배우기로 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배웠다기보다는 그 화가가 그리는 모습을 몇 개월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나에게 그림을 가르쳐주지는 않고, 그냥 그리는 대로 놓아두고 슬쩍 훑어보다가는 고개나 몇 번 가로젓고 가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수채화를 주로 그렸는데, 여전히 색이라는 높은 장벽을 넘지 못하고 헉헉거렸다. 사과의 빨간색은 내 물감의 빨간색이 아니었고, 정물대 위에 놓인 시멘트 블록의 회색도 내 물감 안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답답해하며 중간 중간 나는 그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옆에 앉아서 구경을 했다. 그는 사진을 보면서 풍경이나 정물을 수채화로 그렸다. 종이를 펼쳐놓고 물을 종이에 바르고, 무엇을 그리는 알 수 없는 색들을 그 종이에 뿌려놓는다. 그리고 기다렸다가 조금씩 색을 더하면서 형태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색을 사용하는 방식을 보니, 보이는 색과는 다른 색들을 깔아놓고 마지막으로 아주 탁한 색으로 그 색들을 눌러주자 하나씩 사물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주 신기한 마술과도 같았다. 그는 더러운 색, 우리가 평소에 아주 멀리하던 탁하고 더러운 색을 아주 잘 썼다. 그가 종이에 뿌려놓은 가녀리고 아름다운 색들은 여태까지 팔레트에 풀어놓은 색들을 마구 섞어서 만들어진 탁하고 더러운 색으로 인해 점점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하고, 점점 깊이와 높이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신기하게도 내가 보고 있는 사물의 색들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 모습이 되풀이되며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그 과정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결국 예쁜 색만으로는 아름다움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과 아름다움의 완성은 추함이 만들어준다는 이 역설적인 진실을.

# 인간의 마음과 감정까지 읽어주는 색채심리학

“어느 때는 황토 언덕의, 그 얼핏 봐서는 주황색 하나뿐인 듯하나 자세히 보면 자주색, 갈색, 보라색, 붉은색 등등 갖가지 색채로 이루어진 풍경을 앞에 놓고 그 색채들을 제대로 켄트지 위에 나타내는 데 하루를 몽땅 바쳐 버리기도 하였다.… 현실의 모든 색채는 붓끝에서 물감에 의하여 발가벗겨지고 분해되고 재구성되었으며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색채의 세계-그림은 이미 다른 현실, 현실보다 더 아름다운, 경이의 다른 세계였다. 그리하여 이제 마악 튜브에서 짜낸 연두색 수채화 물감의 영롱한 색채만 있으면 나는 한겨울에도 봄의 그 산뜻한 숲과 훈훈한 바람을 느꼈다. 그늘진 흙담의 좁은 골목도 내 의식엔 개선되어야 할 불쌍한 빈민가의 골목으로서가 아니라 켄트지 위에 옮겨놓고 싶은 한 폭의 아름다움으로 분해되는 것이다.”

-‘색채와 나’, 김승옥, 〈쿨투라〉 2007년 여름호

아무리 생각해도 색은 참 어렵다. 색이라는 것은 어떤 물체의 표면이 빛을 받으며 그것을 보는 사람의 시지각을 자극하여 인지시키는 사물의 표면이다. 그러나 우리의 눈이 혹은 우리의 지각이 정말 사물의 본질적인 색을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간혹 이런 얼토당토않은 불가지론을 펼치곤 한다.

색이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자극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 색채심리학이다. 두뇌의 어떤 부분이 관장하는지는 모르지만 색이란 하나의 코드이고 암시이다. 색이 사람을 직접 자극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아주 뿌리 깊게 새겨져 있는 색의 상징을 선험적으로 느끼고 그에 따라 반응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검은색은 권위와 영향력을 상징하고 허무와 원초적 빈 공간을 상징하며, 가끔 결핍을 상징하기도 한다. 흰색은 예상했던 대로 순수·청결·중립을 상징한다. 회색은 지식을 나타내면서 불안과 기대를 상징한다. 핑크색은 빨강과 흰색의 혼합이고 젊음, 흥미를 나타내며, 관능적이며 공격성을 둔화시킨다. 보라색은 파랑의 차분함과 빨강의 자극 사이의 균형을 뜻한다. 신비롭고 고급스러움을 나타내므로 왕의 상징이기도하다.

우리나라에서 색은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집을 지을 때 집에 색을 칠하는 것은 신이나 혹은 신에 준하는 왕에게만 허용되었다. 가령 궁전이나 사찰 혹은 굿을 하는 공간에서만 강렬한 색채의 단청이 허용되었다. 우리 전통의 오방색(오행의 각 기운과 직결된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의 다섯 가지 순수하고 섞음이 없는 기본색)은 색에 대한 이념적 소비이다. 색에 철학과 강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상징에 걸맞은 소비를 요구했다. 그래서 색을 함부로 쓰는 것은 큰 죄가 되기도 했다.

#건축의 색, 부분적 장식에서 감동을 주는 요소로

시대별로 보면, 색의 개념은 고대에는 종교적, 상징적, 주술적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다. 중세에는 장식적 성격의 조각이 우세했고, 근세에서 색을 쓰는 것은 피상적이고 천박하다는 도덕적 관념과 이성적 사고에 의해, 도시환경에 대한 색의 사용이 거의 배제되다시피 했다.

따라서 대부분 시대의 건축 논의에서 색은 형태에 대한 부차적 요소였다. 특히 모더니즘 시대에 와서 합리주의적 정신에 의해 장식을 배제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장식으로 사용되던 색도 거의 사라졌다.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20세기 후반 다시 장식적 요소로서의 색이 나타나는데, 건축에 있어서의 감성적 부분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부터 역사적, 감성적, 대중적 표현수단으로 색이 사용된다.

21세기 들어 건축의 색은 형태로 고정되는 색면이 아니라 색 자체가 독자적으로 의미를 갖는 조형수단으로 사용되게 된다. 헤어초크& 드 뫼롱이 설계한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Allianz Arena) 스타디움은 파랑, 빨강 등 그날 출전하는 팀의 상징 색을 빛으로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어떤 팀의 경기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직접 경기를 관람하지 않더라도 멀리서 보고도 알 수 있게 해준다. 

헤어초크& 드 뫼롱이 설계한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스타디움. 파랑, 빨강 등 그날 출전하는 팀의 상징 색을 빛으로 표현해준다.
네덜란드의 건축그룹 유엔 스튜디오가 설계한 서울의 ‘갤러리아 백화점’도 강한 상징적 그래픽과 함께 건물의 외관을 형형색색의 빛으로 채우는, 마치 TV화면과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외벽 재료는 홀로그램이 부착된 지름 83㎝의 유리디스크 4330장이 부착된 것인데, 유리디스크 뒷면에 RGB 컬러를 한 조씩 적용해 프로그래밍화한 LED조명을 통해 다양한 이미지를 동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강한 상징적 그래픽과 함께 건물의 외관을 형형색색의 빛으로 채우는, 마치 TV화면과 같은 이미지를 가진, 벤 판베르컬의 유엔 스튜디오가 설계한 갤러리아 백화점.
역사적으로 누구보다도 색을 자유롭게 사용한 건축가로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an, 1902∼1988)을 꼽는다. 멕시코 과달라하라(Gudalajara)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는 토목공학을 전공했는데 엉뚱하게 건축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건축을 수련하는 과정은 거의 독학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마치 프랑스의 건축가이며 현대건축의 문을 열었던 르 코르뷔지에가 그랬던 것처럼, 일본의 대표적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가 그랬던 것처럼,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채 세계여행을 하며 혼자 배워 건축을 했다. 그는 아주 독특하면서도 멕시코의 자연과 문화의 정수를 담은 건축을 선보여, 급기야 1980년에 프리츠커 상의 두 번째 수상작가가 되며 세계 건축계에서도 명성을 떨치게 된다.

그의 건축은 무척 독특하다. 그가 쓰는 건축 어휘는 네모난 형태와 다소 폐쇄적인 공간 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는 무척 현란한 색을 쓴다. 이런 상반된 어휘는 그의 건축을 독특하게 만들면서 신비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껴지게 한다.

1948년에 지어 자신이 죽을 때까지 살았던 루이스 바라간 자택(Luis Barragan House and Studio)은 그의 건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이 집은 현대와 전통의 성공적인 통합과 도시와 조경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라는 이유로, 200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 역시 단순한 형태와 현란한 색채가 사용되었다.

그는 건축이 미와 감성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정원 등 미와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부분을 건축 설계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건축은 감동과 평온함을 준다. 루이스 바라간에게 색은, 혹은 건축에서의 색은 단순히 시각적인 자극과 미감의 만족만이 아닌 다양한 요소들을 묶어주는 장치로 쓰인다. 즉 우리가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색에 대한 정보를 교묘히 조절하여, 감동과 평온을 주는 적극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하는 것이다. 그때 건축에서의 색은 색즉시공(色卽是空이)아니라 색즉시감(色卽是感)이며 색즉시행(色卽是幸)이 된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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