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랑’ 으뜸으로 치는 한글, 그 속에 담긴 인본정신 되새길 때” “우리 모두 두 주먹 쥐고 눈물을 닦읍시다. 한(恨)으로 풀려 하지 말고 일어섭시다. 수천년 내려온 문화의 힘으로 오늘의 이 아픔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이어령(80) 전 문화부 장관이 한글·한국어의 세계화를 위해 16일 세종학당재단(이사장 송향근) 주최로 열린 포럼에서 세월호 참사를 거론하며 “문화의 힘으로 치유하자”고 강조했다. 세종학당 명예학당장을 맡고 있는 이 전 장관은 이날 포럼에 앞서 ‘세계 속 한국말의 힘’이란 기조강연을 했다. 이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국외에 널리 알릴 방안, 한글을 산업적으로 활용할 방안 등을 놓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토론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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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1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글·한국어 세계화’ 포럼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
이 전 장관은 한국어를 “보편적 인간의 마음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말”이라고 전제한 뒤 “외국인들한테 한국어를 가르칠 때 가장 먼저 ‘사람’이란 낱말부터 소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은 사람으로서 사는 것을 의미하는 ‘삶’, 사람끼리 서로 좋아하는 것을 뜻하는 ‘사랑’과 형태 면에서 매우 흡사하다. 이 전 장관은 “사람의 뜻을 설명한 뒤 삶, 사랑 등이 모두 사람에서 나온 말이라고 알려주면 외국인들의 이해와 공감이 빠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이 전 장관은 우리말 ‘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부처님’이나 ‘하나님’ 같은 신(神)부터 도둑을 일컫는 ‘밤손님’, 수완이 서툰 사람을 이르는 ‘샌님’까지 어느 말에나 붙을 수 있는 게 바로 ‘님’이다. 그는 “신과 도둑에 나란히 붙일 수 있는 ‘님’과 같은 말은 세계 어느 언어에도 없다”며 “한국 고유의 평등사상이 ‘님’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말했다.
‘사람’과 ‘님’을 거듭 강조한 이 전 장관의 발언은 모든 사람을 다 으뜸으로 여기는 인본주의(人本主義)의 회복을 당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람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세월호 참사로 이어졌다’는 통렬한 반성이 담겨 있다.
이 전 장관은 “말은 문화의 근본이요, 씨앗인 만큼 외국에 한국어를 알리는 일은 밭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며 “한국인의 말로써,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공감과 상상력으로 세계 속에서 우리 ‘문화영토’를 넓혀 나가자”고 주문하는 것으로 강연을 마쳤다.

기조강연 후 주한영국문화원 마틴 프라이어 원장, 한국 괴테인스티튜트 슈테판 드라이어 대표, 숙명여대 문화관광학부 김세훈 교수, 타이포디자인연구소 임진욱 소장 등의 주제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프라이어 원장과 드라이어 대표는 각기 영어, 독일어를 국외에 널리 보급하기 위한 자국 정부의 노력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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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글·한국어 세계화’ 포럼 참가자들이 한국어의 국외 보급 확대와 한글의 산업적 활용 등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세종학당재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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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친필본에 적힌 글씨체를 활용해 개발한 김구체 |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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