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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 너마저…” 혁명의 끝엔 또 다른 ‘시저’가 있을 뿐…

입력 : 2014-05-15 20:56:24 수정 : 2014-05-15 20: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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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줄리어스 시저’ “시저를 죽일 수밖에 없어. 개인적인 원한은 없어도, 다만 로마의 공익을 위해서지. 시저는 황제가 되고 싶어 해. 황제가 되면 천성이 어떻게 바뀔지 그게 문제야. 유난히 화창한 날 독사가 기어 나오는 법이니까. 시저에게 왕관을? 그건 독 바른 이빨을 주는 셈이지.”

셰익스피어 최고의 정치심리극 ‘줄리어스 시저’(김광보 연출)가 21일부터 6월15일까지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국내 공연이 많지 않은 데다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에 비해 연구도 미미한 편인 ‘줄리어스 시저’를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1598∼1601년 사이에 출판된 동명의 희곡이 원작이다.

‘줄리어스 시저’는 “혁명 공모자들 또한 그들이 죽인 시저와 같은 모습이며, 전쟁의 끝에는 승패가 아닌 스스로 파멸하는 한심함이 남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유명한 대사로 잘 알려진 이 작품은 신으로 추앙받던 시저를 살해했지만 결국 실패한 혁명이 되고 마는 로마사 대사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브루투스는 공화정을 신앙과 같이 지지하는 정치가다. 고결한 성품으로 로마인들의 존경을 받지만 정치적 기교는 없는 인물이다. 그는 시저를 사랑했고 그의 총애를 받지만, 시저의 독재를 우려해 암살에 가담한다. 시저에 대한 원한이나 열등감을 가진 다른 암살 공모자들과 달리 브루투스는 유일하게 ‘공화정’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로마의 자유를 위해 행동한다. 시저가 두려움과 자신감의 양면을 겉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라면, 브루투스는 무수히 많은 갈등을 감추려 노력하면서 거사의 정당성과 시저 암살이 대외적으로 어떻게 보여질지에 신경을 쓰는 인물이다. 끊임없이 내적 갈등을 겪다가, 결국 그로 인해 실패한다.

안토니우스는 대중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영리한 웅변가다. 시저가 죽은 후 암살파를 진압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그는 기회주의자이자 선동가이다. 브루투스와 달리 뛰어난 정치적 수완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여자를 좋아했던 그는 클레오파트라와 깊은 사랑에 빠져 후에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암살 공모자들은 시저를 살해하기 전까지 철저하게 음모를 감추고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거사 당일에도 원로회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것처럼 꾸민다. 암살의 주동자 카시어스는 이상주의자인 브루투스와 달리 매우 현실적인 인물로, 정치적 역량과 추진력을 갖추고 있지만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는 부족하다. 그는 높은 덕망으로 민중들의 지지를 받는 브루투스를 혁명의 선두에 세우기 위해 그의 마음을 움직이며, 시저 살해의 명분을 만들어준다.

로마인들 앞에 선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의 연설은 고금의 명문장으로 남는다. 브루투스는 이성적인 어조로 자신의 대의명분을 밝히며 군중의 이성에 호소하는 지적인 연설을 하는 반면, 안토니우스는 격정적으로 시저의 죽음을 애도하며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역동적인 연설을 한다. 이때 주목할 것은 권력과 군중의 관계다. 시민들은 연설에 따라 일관성 없이 이 사람 저 사람을 지지하고 부화뇌동하는 비이성적인 존재로 그려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향배는 이들의 손에 달려 있다.

로마 시민들은 시저 살해 직후 마치 신을 잃은 것과 같은 공허함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들은 브루투스의 연설을 듣고는 브루투스 만세를 외치며 시저가 잘 죽었다고 떠들어대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안토니우스의 연설을 들은 뒤 브루투스의 집을 불사르자며 갑자기 적의를 표출한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동조하며 현혹되는 로마 시민들은 민중을 위해 거사를 모의한 ‘대의’의 허점을 보여준다.

극은 한 이상주의자가 추구하던 이념을 위해 기존 질서를 파괴했을 경우, 결국 혼란을 자초하고, 그 자신마저 파멸해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번 연극의 전제는 실패한 혁명”이라고 말하는 연출가 김광보는 ‘혁명을 일으킨 이들이 과연 영웅적 인물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혁명 공모자들 또한 그들이 죽인 시저와 같은 모습이고, 전쟁의 끝에는 승패가 아닌 스스로 파멸하는 한심함이 있을 뿐”이라면서 또다시 반복될 ‘역사’의 순환구조를 이야기한다. 따라서 음모를 둘러싼 인물 내면을 얼마나 잘 전달하는지가 이번 공연의 관건이다. 연출은 거세게 몰아치다가도 숨죽이는 극의 흐름에서, 정치 뒤에 숨어 있는 치졸함, 명예에 대한 욕망,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 광기에 휩싸인 인간 본연의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특히 원작에 있던 두 명의 여자 배역을 과감히 없애고 16명의 남자배우들만 무대에 세운다. 에너지 넘치는 무대 위에 첨예하게 대립하는 인물 심리와 갈등을 풀어놓는다.

‘줄리어스 시저’는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1594),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1607), ‘코리올레이너스’(1607∼1609)와 함께 셰익스피어가 로마를 배경으로 쓴 4대 정치극에 속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세계가 희극에서 비극으로 옮겨가는 과도기 작품으로, 시저의 영웅적 면모보다는 인간적인 약점을 강조했다. 극은 ‘플루타크 영웅전’에 담겨 있는 시저, 브루투스, 안토니우스의 전기들에서 사건을 뽑아내 하나의 작품으로 압축한 것이다. 시저 살해를 중심으로 암살자들이 은밀하게 계획을 모의하는 과정이 전반부, 살해 이후 정치 소용돌이 속의 전투와 음모자들의 처절한 최후가 후반부다. 탁월한 짜임새에, 브루투스와 같이 걸출한 인물들을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평일 오후 7시30분, 주말·공휴일 오후 3시. 화요일에 쉰다. 1644-2003.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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