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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갑사는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추갑사’라 불리지만, 봄의 신록이 빚는 정취도 그 못지않게 빼어나다. 대적전 인근 갑사계곡에 들어선 ‘간성장’과 신록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멋진 풍경을 빚어낸다. |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처럼 의미 없는 구분도 없다. 단풍이 좋으려면 활엽수가 많아야 하고, 그러면 당연히 신록도 좋을 것이다. 또 신록이 좋으려면 활엽수가 많아야 하고, 당연히 단풍도 빼어날 것이다. 그래서일까. 마곡사와 갑사의 신록을 놓고 우열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사람도 많다. 아마 그 말이 정답일 것이다. 가을 단풍도 두 곳 중 어느 곳이 더 낫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태화산 자락에 들어선 마곡사는 매표소에서 희지천이라는 개울을 따라 1.5㎞를 걸어 들어간다. 마곡사는 해탈문에서 시작된다.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요즘 해탈문 안쪽이 색색의 연등으로 장식돼 ‘해탈’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더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해탈문을 지나면 극락교다. 희지천 물길 위에 놓인 극락교를 지나면 마곡사 앞마당이다. 극락교 안쪽에는 범종루가 세워져 있다. 그 주변에는 장대한 나무들이 연둣빛 숲을 만들어 내고, 그 숲은 다시 계류에 반영돼 희지천도 옅은 초록빛으로 물들였다. 아마도 ‘춘마곡’이라고 경탄한 사람은 이 극락교 주변 풍경에 반했을 것이다.
뒤편에 고즈넉한 솔숲이 있는 마곡사에서는 숲길을 걷는 맛도 빼놓을 수 없겠다. 마곡사 주변에는 ‘마곡사 솔바람길’이라는 도보길이 꾸며져 있는데, 3개 코스 중 1코스는 ‘백범 명상길’이라고 부른다. 1896년 황해도 해주에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백범은 마곡사에서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잠시 출가해 수행했다. 광복 후 마곡사를 다시 찾은 백범은 당시를 회상하며 향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길은 그가 심어놓은 향나무에서 시작해 백범이 머리를 밀었다는 ‘삭발바위’를 지나 솔숲으로 이어진다. 삭발바위 주변 징검다리와 나무다리 주변 신록이 빚어내는 풍경도 더없이 빼어나, 여행객들은 이곳에서 좀처럼 발길을 떼지 못한다.
계룡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갑사는 중장년층에게는 실제 가보지 않았어도 언젠가 가본 듯한 느낌을 주는 친숙한 절집이다. 1970∼80년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수필 ‘갑사 가는 길’ 때문이다. 남매탑(오누이탑)의 전설을 소재로 쓰인 이 수필은 감수성 예민한 10대 소년·소녀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안겨줘 오랫동안 그들의 기억에 남았다. 남매탑은 갑사에서 3㎞쯤 떨어진 금잔디고개 어름에 세워져 있다.
갑사는 입구의 숲길부터 눈에 꼭꼭 담아야 한다. 갑사로 드는 길은 ‘오리숲’이라고 불린다. 들머리부터 경내까지 느티나무· 팽나무·갈참나무 등 활엽수가 가득 찬 숲길이 5리(약 2㎞)나 이어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지금 이 길은 신록이 빚어내는 맑은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갑사의 신록이 빚어내는 정취는 대적전으로 이어지는 갑사계곡에서 절정에 달한다. 계곡에는 구한말 친일파로 알려진 윤덕영이 별장으로 사용한 ‘간성장’이라는 고풍스런 건물이 세워져 있다. 한때는 전통찻집이 들어서 있었지만, 지금은 외부 손님이 묵는 갑사의 요사채로 사용된다. 햇살이 드는 계곡과 신록, 그리고 멋스런 건물이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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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극락교와 범종루 주변 신록. |
공주=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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