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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방문할 천주교 내포 성지 탐방…<2>솔뫼 성지와 신리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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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 생가.
김대건 신부 생가 솔뫼 성지…교황이 아시아청년들과 만날 곳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소재 솔뫼 성지는 한국인 최초 사제 김대건 신부의 생가가 있다. 김대건의 증조부 김진후, 종조부 김한현, 부친 김제준까지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던 곳이다. 이 집안에서만 11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천주교 대전교구는 199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사업으로 생가 복원을 결의하고 2004년에 생가 안채를 복원했다. 생가는 1998년 충남지방문화재 제146호 기념물로 지정됐다. 이곳에서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개막미사가 열리며, 프란치스코 교황과 청년들 간 2시간 가량의 만남이 이뤄진다. 이 때문에 성당 주변 단장 공사가 한창이다.

소나무 언덕이란 뜻의 솔뫼 성지에 들어서자 성당 외벽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을 인쇄한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당진시 문화관광과 문화재팀(팀장 남광현)에서 나와서 솔뫼 성지 주변 조성 사업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잖아도 가톨릭의 중요한 성지라서 순례객들이 많이 찾는데다 교황까지 방문하면 외부 관광객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해 당진시가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교황 방문 소식이후 하루 100명이상 솔뫼 성지를 찾고 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6000명을 수용하는 대형 천막구조물에서 청년들과 만날 예정이다. 국내외 취재기자 200명을 위한 프레스센터도 만들어야 해 관계자들이 분주한 모습이다.

솔뫼 성지 성당.
솔뫼 성지에는 김대건 동상, 기념성당과 기념관, 솔뫼아레나(야외 문화공간) 등이 조성돼 있다. 성당은 김대건이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품을 받고 귀국할 때 타고 온 라파엘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형상화했다. 침몰 위험을 안고 떠난 일엽편주가 폭풍우에 돛이 찢기고 키가 부러졌지만 무사히 돌아왔듯이 한국천주교도 모진 박해를 이겨내고 성장했음을 뜻한다. 라파엘호는 원래 바다가 아니라 강에서 운행하도록 만들어진 작은 돛단배였다. 외관은 순교자를 상징하는 붉은 색 소재를 사용했으며, 성당 가운데로 난 큰 길은 김대건 신부의 세계를 향한 드넓은 기개를 나타낸다. 아레나는 모래를 깔아놓은 로마의 원형극장을 말하는데, 솔뫼아레나는 김대건 신부와 동료들이 병오박해(1846년) 때 새남터 모래사장에서 순교한 것을 기념해 조성했다. 솔뫼아레나 주변으로 12사도상이 세워져 있어 웅장한 느낌을 준다.

기념관에는 김대건 신부의 친필 서한과 일기, 그가 그린 조선전도, 초상화 등이 전시돼 있다. 22편의 서한과 비망록은 순교자 79위의 귀중한 시복 자료가 됐다고 한다. 서한은 라틴어로 돼 있으며, 훈춘에서 쓴 일기는 중국어로 돼 있는데 둘 다 작은 글씨로 지면을 여백 없이 빼곡하게 메운 것이 인상적이다. 김대건은 영어, 프랑스어 등 5개국어 이상 구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대건이 1845년에 직접 그린 조선전도는 프랑스 지리학회를 통해 조선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초상화는 연대별로 5개 가량이 전해지는데, 갈수록 젊고 미남으로 그려졌다.

이용호 솔뫼성지성당 주임신부.
이용호 솔뫼 성지 성당 주임신부(47)는 “김대건 신부는 그리스도교에 담긴 평등과 자유 사상의 소유자”라며 “조선후기 최초의 유학생으로 서양을 많이 알았고, 중국을 통해 아시아를 들여다봤으며, 화폐개혁까지 생각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순교를 각오하고 쓴 그의 마지막 편지에는 자신의 순교에 대해 슬퍼하지 말라고 쓰여져 있는데, 신자들이 수없이 베끼고, 글 모르는 신자들은 외우고 살았다”고 설명했다.

 

신리 성지 다불뤼 주교 기념관.
조선에서 가장 컸던 교우촌 신리 성지…순교자 정신 가슴에 와 닿아

충남 당진군 합덕읍 소재 신리 성지는 조선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교우촌을 기념해 조성됐다. 신리는 간척사업으로 논이 생기면서 새로 생겨난 마을로, 이존창에 의해 천주교를 받아들였다. 1865년 위앵 신부가 신리에 들어왔을 때 400명의 주민 모두가 신자였다. 신자가 아닌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1986년 병인박해 때 위앵 신부는 물론 신자 42명이 순교했다. 단일 마을로는 희생자가 가장 많았다. 이로 인해 교우촌은 완전히 초토화됐다.

논 한 가운데 1만평 부지에 조성된 신리 성지에는 성인 반열에 오른 손자선의 생가와 다불뤼 주교 동상, 기념 성당, 다불뤼 주교 기념관 등이 있다. 2004년에 복원된 손자선 생가는 다불뤼 주교의 주교관이자 조선교구청으로 사용됐다. 다불뤼 주교는 한국천주교의 은인과 같은 존재다. 초창기 한글 교리서를 저술했으며, 조선교회 상황과 순교사적들을 수집정리해 파리외방선교회에 보낸 ‘다불뤼 비망기’는 훗날 한국천주교사와 순교사의 기념비적인 토대가 됐다.

노출 콘크리크로 건립된 기념관은 다블뤼 주교의 시성 30주년에 맞춰 내달 6일 개관한다. 건물 옥상인 전망대에 올라가면 멀리 합덕 성당과 여사울 성당이 조망된다. 이번 개관일에 다불뤼 주교의 후손들이 다불뤼 주교가 순교당시 입었던 옷과 용품 등 30여 점을 기증할 예정이다.

부산에서 왔다는 한 원로 수녀는 신리 성지 이곳저곳을 찬찬히 들러 보았다. 그는 “가끔 내포 성지를 찾아 기운을 많이 받고 간다”고 말했다.

김동겸 신리 성지 성당 신부.
김동겸 신부(36)는 “과거 삽교천을 막기 전에는 신리 성지 앞까지 배가 들어왔다”며 “신리는 평야지대이자 어느 지역에도 간섭이 미치지 못하는 월경지여서 병인박해 전까지 선교사들의 피란처가 됐다”고 말했다.

위앵 신부나 다불뤼 주교 등 선교사들이 남긴 글을 보면 이들은 하나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순교를 자랑스럽게 여길 정도로 신심이 깊었다. 그들의 열정적인 신앙심은 한국천주교 신자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돼 모질고 잔인한 박해를 피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굳건히 복음을 지키며 자신들이 믿는 주님 곁으로 갔을 터이다. 내포 성지를 방문하며 순교자들의 정신이 조금이나마 가슴에 와 닿았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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