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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정의 공연 돋보기] 사회극 반영 ‘살아있는 연극’에 대한 성찰

입력 : 2014-04-10 21:56:31 수정 : 2014-04-10 21:5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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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종종 연극 자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연극이 삶을 담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무대 위에서 풀어내곤 한다. 이때는 배우들이 일부러 기계적으로 연기하거나 같은 장면을 연거푸 반복하기도 한다. 내용보다 연극하는 행위 자체를 조명하기 위함이다.

지난 3월에 막을 올렸던 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남산 도큐멘타’에서 배우들은 다양한 극중 극을 한 껏 과장되게 연기했다. 관객의 감성적인 몰입을 방해하려는 전략이다. 공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극적인 부분이 아닌 다큐멘터리적인 부분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공연은 1962년에 ‘드라마센터’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이래 우여곡절을 겪어 온 남산예술센터를 테마로 현대 연극사의 다양한 모습을 뒤돌아보게 했다. 남산예술센터는 현대식 극장으로서 한국 연극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들을 공연했고, 오태석·유덕형·안민수 등 저명한 연출가들을 배출해냈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효시로 알려진 ‘살짜기 옵서예’도 사실상 이 공연장에서 만들어졌다. 반면, 재정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실험을 중단하고 자본에 타협했던 때도 있었다.

‘남산 도큐멘타’는 이러한 공연장의 역사를 한편으로는 긍정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한 시선으로 묘사한다. 어떻게 보면 공연장 안에서 연극을 하고 있기에는 공연장 밖의 현실이 너무나 극적인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남산예술센터가 위치한 명동에는 낭만과 애환이 공존했다는 점에서 더욱 극적이다. 이곳에서 젊은이들과 예술가들은 미래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과 동시에 사회 부조리에 치열하게 대항하곤 했던 것이다.

‘남산 도큐멘타’에서는 ‘사느냐, 죽느냐’에 대한 햄릿의 고민을 동시대 연극의 문제 속에 녹였다.
연극인류학자 빅터 터너는 공연장 밖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상황을 ‘사회극’이라는 용어로 정의했다. 간혹 선거철이나 올림픽 때처럼 사회적 이슈들이 충만할 때에는 이러한 사회극이 무대극의 재미를 반감시키곤 하지 않는가. 극의 시작 부분을 장식하는 ‘햄릿’의 고민은 연극 자체에 대한 성찰을 진지하게 담고 있다.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참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 마음속으로 참아야 하느냐,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난과 맞서 용감히 싸워 그것을 물리쳐야 하느냐.” 극에서 이 구절은 무대극이 어떻게 사회극을 반영하며 생생하게 ‘살아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도 해석된다.

그런가 하면 극단 사다리의 ‘굴레방 다리의 소극’에서는 ‘참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 컴컴한 지하방에 숨어서 과거만을 되새김질하는 삼부자가 등장한다. 이 공연에서는 아현동 굴레방 다리에 위치한 허름한 지하방에서 연변 출신 삼부자가 매일 똑같은 연극을 반복한다. 보는 사람도 없고 돈을 주는 사람도 없다. 스스로를 위한 공연이다. 이들의 연극은 과거 연변에서 있었던 사건을 왜곡해 담고 있다.

강제로 연극을 반복하려는 사람은 다름 아닌 두 아들의 아버지. 그는 실수로 연변에서 살인을 하고는 도망쳐 서울에 밀입국하지만 대도시에서 상처에 상처만을 더하다가 현실과 담을 쌓기에 이른다. 사실 트라우마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스토리텔링의 단계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 경우는 오히려 과거라는 감옥에 갇혀 곪아 터진 현실을 외면하는 자폐적인 상태이다.

이 같은 공연들은 삶에 대해서뿐 아니라 연극에 대해서 반성적으로 성찰하게 만든다. 과연 생생한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정해진 대본만을 연기하고 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를 반복하고 재현하는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현수정 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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