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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軍, 위안부 부대시설로 운영"

입력 : 2014-03-16 18:17:22 수정 : 2014-03-16 22: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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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2차대전 전쟁문서로 재확인
미얀마·만주 등 위안소 설치·관리
포로 심문 문서 등에 생생히 기록
일본군이 위안부를 부대시설로 운영한 사실을 확인해주는 문서가 공개됐다.

15일(현지시간)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된 문서(OSS CONFINDENTIAL C.I.D XL8505)에는 미군 동남아 번역·심문소(SEATIC)가 1945년 4월 버마(현 미얀마)에서 붙잡힌 일본군 포로를 심문한 과정에서 일본군이 군대 위안부를 운영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 당국은 포로를 상대로 부대시설의 하나로서 위안부를 두고 있는지를 심문해 만달레이주 메이묘에 위안부를 두고 있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위안부 화대는 3.5∼5엔이었다고 돼 있다. 이 포로는 월급 24엔을 받아 매달 10엔을 저축하고 나머지를 궐련을 사는 데 썼다고 진술했다.

같은 달 미군 정보원이 중국 여자간호사를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문서(CONFIDENTIAL JICA R-565-CH-45)에는 일본 육군 군의관이 매주 금요일 중국 만주 위안소를 방문해 여성들을 정기 검진했다고 적혀 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견된 1945년 4월 미군 동남아 번역·심문소(SEATIC)의 일본군 포로 심문 보고서.
연합뉴스
이 위안소에는 1급으로 분류되는 일본 여성 20명, 2·3·4급에 속하는 한인 여성 130명이 있었는데 모두 성병에 걸려 있었다고 문서는 밝혔다. 문서는 ‘군의관이 성병이 심하다고 판단될 경우 병사 접대를 허가하지 않도록 했다’고 전했다. 두 문서는 일본 정부와 군이 군 주둔지역에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으며 체계적으로 관리한 사실을 재확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일본의 일부 극우주의자는 일본 정부나 군이 위안부 동원에 직접 개입한 증거가 없고 위안부는 자발적인 매춘여성이었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도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일본 관방장관 담화를 통해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와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고 모집과 이송, 관리가 본인 의사에 반해 강압적으로 이뤄진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미국 정부도 1996년 2차 세계대전 때 생체실험과 위안부 동원 등 잔혹 행위를 한 일본군 출신 일본인 16명을 미국 입국금지 대상에 올린 적이 있다.

워싱턴=박희준 특파원 july1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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