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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개입이냐 방임이냐… 케인스 vs 하이에크 세기의 논쟁

입력 : 2014-03-14 20:02:03 수정 : 2014-03-14 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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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컬러스 웝숏 지음/김홍식 옮김/부키/2만5000원
케인스 하이에크/니컬러스 웝숏 지음/김홍식 옮김/부키/2만5000원


정부는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가, 시장을 방임해야 하는가. 거칠게 말하면, 최근 한 세기 동안 경제는 이 물음 사이에서 방황했다. 한때는 작은 정부와 신자유주의가 신성불가침의 진리처럼 떠받들여졌다. 그러나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고삐 풀린 금융계에 대한 질책이 쏟아졌다. 각국 정부는 휘청이는 경제를 살리려 막대한 돈을 풀었다.

정부의 시장 개입을 옹호하는 이들의 선봉에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가 있다. 그 대척점에는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1899∼1992)가 대부처럼 서 있다. 두 거목 사이의 치열한 논쟁이 처음 촉발된 것은 1930년대였다.

먼저 초대장을 보낸 쪽은 하이에크였다. 당시 케인스는 세계적 유명인사였다. 그가 몸담은 모교인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는 그를 추종하는 열렬한 지지자들이 넘쳐났다. 반면 하이에크는 국제적으로 거의 무명이었다.

케인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었던 런던정경대학(LSE) 학자들은 오스트리아학파의 새내기 학자 하이에크를 불러들였다. 하이에크는 1931년 LSE 교수가 편집주간이던 학술지 ‘이코노미카’에 케인스의 ‘화폐론’을 비판하는 서평을 기고했다. 어떻게든 케인스의 눈길을 끌려고 최대한 자극적 미끼를 던졌다. 두 사람의 논쟁은 이렇게 촉발됐다.

두 사람이 가장 큰 견해 차이를 보인 부분은 불황이 나타나는 원인과 해법이었다. 케인스는 저축이 투자보다 많으면 불황 국면이 출현하고 물가가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경기가 바닥에 이르면 만성적인 수요 부족으로 불필요한 실업이 발생한다고 봤다. 그렇기에 1930년대 대공황처럼 긴급할 때는 정부가 공공사업으로 수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하이에크는 생산자가 은행 융자를 통해 자본재를 더 많이 생산하는 등 투자가 저축보다 많을 때 불황이 나타난다고 봤다. 하이에크의 처방은 ‘고통스럽더라도 그대로 두라’였다. 시간이 흐르면 시장은 자연히 균형 상태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정부 개입은 ‘칼을 쓸 줄 안다고 몸에 칼을 들이대는 이발사의 외과 수술’과 마찬가지라 여겼다.

케인스는 인간이 운명을 결정할 능력이 있다고 여긴 낙관적 입장이었다. 하이에크는 자연법칙을 바꾸려 하면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비관적 입장이었다.

저자는 두 사람이 벌인 세기의 대결을 시간 순으로 그려가며 독자를 첨예한 논쟁 현장으로 초대한다. 두 학자의 개인적 삶과 사고의 발전 과정을 전기를 쓰듯 생생히 짚는다. 인생의 반을 동성애자로 살다 발레리나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케인스, 옛사랑을 찾아 조강지처를 버린 하이에크 등 두 학자의 인간적 삶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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