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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천영우 前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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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3-04 20:03:35 수정 : 2014-03-05 10: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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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없는 통일대박론 환상… 김정은 체제 미래 진단 필요”
박근혜정부 2년차로 접어든 새해 들어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성사되는 등 남북관계가 해빙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이명박정부의 외교·안보 유산 조정 여부가 정부 내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했던 천영우(62·사진) 전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북한이 저렇게 유화공세로 나오는 건 이명박정부의 원칙 있는 대북정책으로 북한이 버틸 수 있는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면서 “한반도 평화·안보를 약화시키더라도 남북관계를 좋아 보이게 하는 정책만큼 쉬운 게 없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세계일보 사옥에서 이뤄졌다.


―박근혜정부 1년을 맞아 실시된 각종 조사에서 현 정부가 외교·안보 분야는 잘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동의하나.

“외교안보정책이란 건 인기가 있느냐 없느냐보다 국익이 얼마나 더 향상됐는가, 안보가 얼마나 더 강화됐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앞으로 무슨 결실을 맺을지 두고봐야 한다. 남북 긴장이 완화되는 게 우리 외교안보정책의 목표가 아니다. 긴장완화가 목표라면 우리 쌀 달라면 쌀 주고, 비료 달라면 비료 주고, 돈 달라면 돈 주면 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강화하는 데 이용된다면 그 정책은 실패다. 이명박정부는 이전 10년간 북한이 키운 체력을 소진시키는 데 집중했다. 당시 국민 눈엔 남북관계가 나쁘게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체력을 누가 빼앗았나.”

―남북 고위급 접촉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됐다. 이제 북한이 우리에게 명세서를 내밀 차례가 된 것 같다.

“북한은 이미 기대하는 것 이상을 얻어 갔다고 본다. 북한이 가장 바라는 것은 비방 중단이다.(남북은 지난달 14일 고위급 접촉에서 이산 상봉과 비방 중단에 합의) 쌀이나 비료, 현금보다 비방 중단이 북한엔 더 소중한 것이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5·24조치(이명박정부 당시 천안한 폭침 사건에 대응한 북한 제재조치) 이후 우리에게 줄곧 요구해오던 것을 얻어냈다. 그런 만큼 이산 상봉 대가로 쌀 달라, 비료 달라, 금강산 관광 재개해 달라, 이런 말 못한다.”

―북한에 비방 중단이 그렇게 중요한가.

“북한은 북한 체제와 외부세계에 대한 진실이 유입돼서 북한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을 비방·중상으로 간주한다. 진실이 곧 비방·중상이다. 북한은 배가 고프거나 현금이 없어서 체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한다. ‘김일성 왕조’에 대한 신앙심과 충성심이 무너질 때 체제가 무너진다고 본다. 장성택(국방위 부위원장)을 비롯해서 북한 체제 내부의 적은 이미 다 소탕했다. 남은 적은 남한으로부터 오는 진실과 정보다. 진실과 정보를 차단하지 못하면 아무리 쌀이 넘쳐나고 돈이 넘쳐나도 북한 체제는 무너진다. 우리는 5·24조치로 북한산 농수산물과 모래, 자갈 수입이 금지돼 북한이 연 5억달러 정도 손해 보는 게 아플 거라고 생각하지만, 북한으로선 (2004년 군사분계선에서의 선전활동 중단 등을 골자로 한) ‘6·4합의’가 파기되고 비방·중상 중단 합의가 파기된 게 가장 아픈 대목이었다. 이명박정부 당시에도 북한은 비방 중단 합의를 살리려고 별 이야기를 다 했다. 우리는 천안함 폭침 책임을 인정하면 6·4 합의가 복원된다고 했으나 북한은 수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정부에서 6·4 합의 복원 조건을 대폭 완화하니까 그 기회를 빨리 잡아야겠다고 북한은 판단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새해 들어 ‘통일 대박’을 외치며 통일 붐을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통일 과정은 생략한 채 통일 이후의 장밋빛 미래만 부각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통일대박론’ 이후로 나오는 여러 통일담론은 일단 좋은 현상으로 본다. 그동안 통일에 대한 무관심, 통일 회의론, 통일 재앙론 등이 통일담론 시장에서 더 우세한 형국이었는데, 통일에 대한 부정적 생각들을 일거에 바로잡아 놓았다. 다만 통일정책은 북한 김정은 체제의 미래를 현실적으로 진단하면서 구체적으로 세워나가야 한다. 김정은(국방위 제1위원장)이 공포정치를 하고 큰 사고를 치다가 하루아침에 운명이 끝날 수 있겠다는 가능성에만 기대하면서 통일정책을 세워선 안 된다. 김정은이 하기에 따라서는 북한 체제가 더 오래 갈 수 있다는, 10년 이상도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대북 정책을 세워야 한다.”

―북한 김정은 체제가 단기간에 무너질 가능성은 없다는 의미인가.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 체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들 하는데, 단기적으론 그렇지 않다고 본다. 장성택 처형으로 높아진 불확실성보다 처형이 감소시킨 불확실성이 더 크다고 본다.”

―무엇보다 북핵 문제가 걱정이다. 어떤 식으로 풀어가야 하나.

“북한이 하고 있는 전략적 계산의 공식을 바꾸면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있다. 중국과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지금까지 북한의 전략적 계산을 바꿀 만큼 대북 제재를 가한 적이 없다. 이란 제재의 5분의 1도 안 된다. 북한으로선 지금 수준의 제재 같으면 핵을 포기 안 하고 버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제재 대상이 북한 대외무역의 10분의 1도 안 된다. 국제사회가 이란에 가한 수준의 대북 제재를 결심하면 북한은 버틸 수가 없다. 중국이 외상으로 북한에 석유 수출하는 것만 막아도 북한의 전략적 계산을 바꿀 수 있다.”

―중국은 북한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걱정을 하는 것 같다.


“북한은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 핵을 포기할 것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한·중 관계가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중 관계의 미래는 서로 좋은 말만 하는 것으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북한 비핵화에 중국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힘을 쓰느냐에 좌우된다는 메시지를 중국에 던져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를 안하면 우리는 북한 핵과 미사일을 막아내기 위해 자구 차원에서 미국 미사일방어(MD) 시스템에 참여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지금 한·일 관계가 잘 풀리지 않는 게 이명박 대통령 책임이란 말도 나온다. 독도 방문 사례처럼 너무 강경한 대일 정책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독도에 간 건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걸 보여주려는 게 아니었다. 영토 문제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영토 문제와 상관없이 천연기념물 보호 문제 등을 목적으로 간다면 대한민국 영토에 대통령이 못 갈 곳은 없다. 대한민국 섬 3000개 어디든 갈 이유가 있으면 가는 거다.”

―누구 책임이든 결과적으로 한·일 관계가 파탄 직전이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과거 회귀적인, 퇴행적인 행태를 보이는 건 틀림없다. 우리가 보기에 가슴 아프고 한심하다. 하지만 국민감정만 갖고 국가 간 관계를 할 순 없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국익이다.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범세계적 가치관 등에서 일본처럼 가까운 나라가 없다. 아베 총리의 시대착오적 행동에 과잉대응할 필요는 없다.”

―양국 정상이 일단 만나야 하지 않겠나.

“정상 간 회담이 어렵다면 장관급이라도 수시로 만나서 서로 협의할 일이 있으면 해야 한다. 대통령이 일본 총리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장관들도 눈치 보면서 일본의 카운터파트들과 만나서 협의하기를 꺼려하는 건 좋지 않다.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우리가 다른 나라와 손잡고 일본을 망신시키는 데 앞장서는 건 옳지 않다. ”

―미국이 한·일 과거사 갈등을 중재하는 방식은 어떤가.

“미국 입장에서도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과 같은 행태가 한심하니 한마디씩 거들지만, 그렇다고 미국 사람들이 우리 편을 든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미국이 일본에 갖고 있는 가장 큰 이해관계가 안보다. 역대 일본 정부 중에서 아베 총리만큼 미국의 전략을 잘 이해하고 협조해주는 총리가 없었다. 미·일 관계의 근간이 아베 총리의 과거사 인식 문제로 흔들리지 않는다.”

대담=조남규 외교안보부장, 정리=김예진, 사진=허정호 기자

◆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1952년 경남 밀양 출생 ▲ 동아고, 부산대, 미국 컬럼비아대 국제관계학 석사 ▲외무고시 11회 ▲북핵6자회담 수석대표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주영국 대사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 ▲현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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