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의연한 피겨여왕’ 모습 귀감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의 화두는 김연아와 안현수(빅토르 안) 선수였다. 두 선수의 메달 획득과 국적, 그리고 스포츠와 관련 이야기는 여러 각도에서 조명되었다. 이 스포츠 드라마는 문화적으로 종합 해석될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의 모국(母國)은 한국이다. 그러나 조국(祖國)은 달랐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인이 보여줄 두 얼굴과 같았다. 한 사람은 어떤 이유로든 조국을 바꾼 인물이고, 다른 한 사람은 조국을 위해 은퇴 고려를 철회하고 선수로 복귀하여 분골쇄신한 인물이다.
우리는 여기서 유치하게 안현수를 나무라고, 김연아를 상찬할 필요는 없다. 단지 못난 조국과 못난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이 다를 수 있음을 바라볼 따름이다. 둘 다 스포츠 정신에서 최선을 다한 훌륭한 선수이며, 자랑스러운 한국인, 한국계 러시아인이다.
우리는 그동안 미국이나 외국에 귀화한 한국 예술인 혹은 한국 과학자를 한국인으로 대접했다. 이것은 민족중심사고를 하는 한국인다운 태도이다. 예컨대 백남준도 한국계 미국인으로, 이응노도 한국계 프랑스인으로 숨졌다. 안현수에게 특별히 불명예를 줄 필요가 없다. 세계는 어차피 글로벌 시대이다.
빅토르 안은 쇼트트랙에서 러시아에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를 바쳤다. 8년 전 토리노 올림픽에서 한국에 3개의 금메달을 안긴 것에 비할 수 있다. 그가 금메달을 따고 러시아 국가가 울려 퍼지는 단상에 있는 것을 볼 때, 필자의 눈에 태극기가 겹쳐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트에서 2등인 은메달을 땄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결과에 관계없이 의연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스포츠인의 귀감이 되었다. 스포츠 마피아 같은 푸틴 대통령의 어글리한 스포츠 정치공학의 희생자로 서방언론에 부각되면서 ‘인간 김연아’는 우뚝 섰다.
두 스포츠 스타의 드라마는 한국문화의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결과적으로 한국문화에 전화위복의 약이 되었다.
안현수는 한국문화의 파벌적 운영에 대한 국민적 인식의 파급효과를 거두었다. 한국문화는 현재 스포츠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서 파벌적 운영으로 심각한 고혈압 상태에 있다. 문화가 흐르지 않고 정체되어 곳곳에서 마찰음을 내고 있다. 특히 이기주의와 사리사욕으로 병들어 있다. 어찌 스포츠라고 예외가 되겠는가.
한국문화의 단기 실적주의, 전시적 분위기는 결국 문화의 졸속과 위선을 드러내면서 수많은 인재들을 사장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파벌현상은 대체로 세계적 인재가 그보다 못한 국내 인재에게 밀려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하고, 국력의 큰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허례허식으로 똘똘 뭉친 문화적 졸부주의자들도 덩달아 춤추면서 한국문화의 창조적 동력은 점차 그 힘을 잃고 있다.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외치면서 독전하고 있지만, 그것이 외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어찌하랴!
산업과 스포츠, 예능 등 문화의 하부구조에서는 간헐적으로 문화적 주체성이나 자아 찾기에 성공하고 있지만, 여전히 문화상층부는 선진국의 소비자로, 문화사대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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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가 전화위복인 것은 그가 개인적으로 온갖 어려움에 시달리면서도 금메달을 세 개나 따냄으로써 여전히 “한국은 쇼트트랙 강자다”라는 명성을 세계 전체에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러시아 전역에 이토록 일시에 한국인의 위력을 선전한 적이 있었던가.
빅토르 안은 러시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동메달을 따든 금메달을 따든 전 스태프와 선수들이 다 같이 좋아해주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안현수에 비해 더욱더 큰 성공으로 비쳐진다. 김연아는 한국 여성의 힘과 미모와 지혜를 세계에 각인시켰다. 김연아가 태극기를 흔들거나 단상에서 메달을 달고 애국가를 울려 퍼지게 할 때면 왠지 모르게 유관순을 떠올리게 된다.
김연아로 인해서 세계 스포츠정치나 정치공학에 대해 세계여론의 시선이 곱지 않다. 아마도 김연아로 인해서 피겨의 채점방식을 비롯하여 스포츠의 정치개입을 사전에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억울하지만 그것을 의연하게 참고, 뒤에서 눈물을 감추는 모습은 더욱더 감동으로 세계에 비쳐졌다.
김연아는 자신의 ‘훔치는 눈물’이 미국 NBC의 카메라에 잡힌 것에 대해 도리어 걱정을 하면서 ‘스포츠가 계속 점수와 기록에 매달리는 것에 대해’ 경계를 하는 모습이었다. 더욱이 자신의 눈물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에 대한 눈물이었음을 깨닫게 했다. “금메달을 땄어도 울었을 것이다.” 진정한 영웅의 싸움상대는 자신이라는 점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이제 피겨 전용 아이스링크 하나 없는 한국에서 태어난 불세출의 소녀영웅을 대접하는 의미에서도 그의 이름을 딴 ‘김연아 아이스링크’ 하나는 조국이 선물하여야 할 것 같다.
세계는 지금 급속하게 글로벌화되고 있고, 민족이나 국가는 점차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글로벌화는 실은 국가화·지방화와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가는 것이다. 둘 다를 동시에 이루고 성취할 때, 한국과 한국인이 세계를 주도할 것이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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