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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철옹성’ 고요한 역사탐방

입력 : 2014-02-20 21:23:54 수정 : 2014-02-20 22: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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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 삼년산성 트레킹 충북 보은의 삼년산성은 불패의 철옹성이다. 삼국시대부터 후삼국시대까지 벌어진 150여회의 전투에서 신라군은 단 한번도 이 성을 빼앗긴 적이 없다. 백제 성왕은 삼년산성으로 진격했으나 오히려 관산성(지금의 충북 옥천)에서 삼년산성을 거점으로 삼은 신라 매복군에게 기습을 당해 패퇴했고, 후삼국 시대 고려 왕건도 이 산성에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대접 형태의 삼년산성은 규모가 큰 성은 아니다. 야트막한 오정산(해발 325m)에 세워진 길이 1680m의 작은 성이다. 그러나 성벽은 유난히 두껍고 높다. 성곽의 폭은 8∼10m에 달하고, 10m가 훌쩍 넘는 높이는 최대 22m에 달한다. 폭과 높이 모두 국내 고대 성곽 중 최고 수준이다. 성곽이 산의 정상 능선을 따라 세워져, 아래서 올려다보면 체감 높이는 배가된다. 성곽 곳곳에는 방어력을 높이기 위한 각종 장치도 숨겨져 있다. 그래서 난공불락의 성이 될 수 있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이름도 생소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성을 명품으로 꼽는 이유다.

삼년산성은 신라 자비왕 13년(470년)에 축조된 성곽으로, 3000명의 인부가 동원돼 3년간 쌓았다고 해서 ‘삼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게 삼국사기의 기록이다. 삼년산성 축성에 쓰인 돌은 1t트럭 20만대 분량. 당시로서는 엄청한 대공사였다. 지금의 충북 지역은 삼국시대에 신라·고구려·백제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격전지. 그래서 유난히 산성이 많다. 보은도 지금은 외진 고을이지만, 당시는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보은에 삼년산성을 비롯해 매곡산성 등 18개의 성곽 유적이 남아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특히 삼년산성은 신라와 백제가 치열히 맞섰던 최전선으로, 보은 평야 건너편 산만 넘으면 지금의 옥천인 백제 땅이었다.

2월의 산행이나 트레킹은 자칫 밋밋하고 심심할 수가 없다. 눈이 대부분 녹아 설경을 즐기기도 적당치 않고, 화사한 봄 풍경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풍경을 벗삼아 산행하기는 마뜩지 않은 시기다. 이럴 때 산성은 훌륭한 트레킹 테마가 될 수 있다.

삼년산성에 오른다. 산성의 정문은 백제 쪽을 향하고 있는 서문. 좁은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자 서문 양옆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웅장한 성벽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성곽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한 높이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성곽 위를 걸으면 한눈에 이곳이 천혜의 요새임을 알 수 있다. 사방이 가파른 비탈이어서 몇 배의 대군이 몰려와도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다. 

충북 보은 삼년산성 서문 양옆의 웅장한 성벽. 150여회의 전투에서 한번도 적군에게 함락당하지 않았던 철옹성, 삼년산성에는 방어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각종 장치가 숨겨져 있다. 삼년산성은 전망이 빼어나 트레킹 코스로도 그만이다.
시야가 거침이 없으니 전망도 빼어나다. 그래서 삼년산성은 근사한 트레킹 코스로도 대접을 받는다. 서쪽으로는 드넓은 보은 평야, 동쪽으로는 장대한 속리산의 능선이 펼쳐진다. 트레킹은 보통 서문에서 출발해 남문, 동문, 북문을 거쳐 다시 서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1980년대 복원된 서문 성벽은 새것 티가 나지만, 남문과 동문 사이에는 신라시대 성곽이 그대로 남아 있다. 15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는 성곽을 지나면 이 성에서 가장 높은 곳인 전망대로 걸음이 이어진다. 높이가 22m에 달하는 전망대는 봉수대로도 사용됐다.

서문 앞 ‘아미지(蛾尾池)’라는 이름의 연못도 눈여겨볼 만하다. 주변 암벽에는 아미지·유사암·옥필 등의 음각 글씨가 남아 있다. 모두 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로 전해진다. 이 성 안에는 아미지를 비롯해 대여섯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삼년산성이 철옹성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이같이 풍부한 식수원도 큰 몫을 했다.

다시 철옹성의 비밀에 대한 보은군 문화관광해설사 김석배(69)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곳의 성벽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도록 그저 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것이 아니라 ‘우물 정’(井)자 형태로 엇물려 쌓았다. 또 일반적으로 성의 내벽과 외벽 사이에는 흙과 작은 돌부스러기를 넣는데, 삼년산성은 돌로 채웠다. 서문은 다른 성의 문과 달리 바깥쪽으로 문이 열리게 돼 있고, 동문은 ‘ㄹ’자 형태의 이중꺾임구조로 돌아야 출입이 가능하다. 삼년산성은 이같이 당대 최고의 기술을 총동원해 만든 신라 축성술의 총집합체였다.

삼년산성에 얽힌 역사를 배우고 성곽의 비밀을 하나하나 알게 되면 트레킹은 더없이 흥미로워진다.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성곽 위에 머물게 된다.

보은=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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