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등 대북전략 고수해야 6년 2개월 만에 이루어진 남북한 고위 당국자 접촉이 장시간의 마라톤 회의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둘 수 있고 2차 회담이 오늘 열리지만 당장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이산가족상봉이 무산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원칙을 갖고 당당히 남북관계에 임해야 한다.
북한은 올해 들어 부쩍 대남 ‘평화공세’를 강화해 왔다. 이번 고위급 접촉도 북한의 제의로 이뤄진 것이었다. 김정은 제1비서가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언급한 이후 소위 ‘중대제안’이라는 이름으로 상호비방과 군사적 적대행위의 중지 등을 우리에게 제안해 놓고 있다. 불과 1년 전 3차 핵실험을 하고 마치 전쟁이라도 일으킬 듯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던 때와는 사뭇 달라진 태도이다. 북한이 이처럼 태도 변화를 보이는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할 수도 없고 경제건설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확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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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경희대 교수·국제학 |
특히 최근에는 북한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중국과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다. 김정은의 권력승계 이후 중국 공식방문이 성사되지 못하고 있고, 중국의 일부 지식인은 북한이 중국의 대외정책에 방해가 된다며 ‘북한 포기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더욱이 북·중관계의 핵심인물이었던 장성택의 처형으로 김정은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더욱 싸늘해졌다. 김정은의 북한이 이러한 국제적 고립으로부터 벗어나고 경제회생을 위한 경제특구 개발이 진척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절실하다. 중국도 미국도 남북관계의 개선 없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할 명분을 찾기 어렵다.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당장 필요한 외화벌이도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것도 어렵다. 북한당국의 대남 구애작전은 이러한 상황인식과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북한의 전략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남북관계에서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어 남북관계 개선이 지속가능한 형태로 추진되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북한에 끌려 다니지도 않고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적 이벤트로 활용하지도 않겠다는 정치적 의지의 표현이다. 이러한 전략은 개성공단의 정상화 과정에서 효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최근 박 대통령이 북한의 ‘평화공세’에 대해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변할 때까지 우리는 잠시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우리의 대북전략은 북한의 현 상황을 신중하게 파악하고 잘 활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대북관계의 분명하고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지켜나가야 한다. 우선, 북한의 비핵화다. 우리는 북한의 핵을 용인할 수 없다.
그리고 호혜주의의 원칙에서 북한의 잘잘못을 따져 보상할 것은 보상하고 벌 줄 것은 주어야 한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서 비롯된 결과를 그냥 덮어두고 갈 수는 없다. 또한 우리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협박에 끌려 다녀서도 안 되고 국내정치적 필요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 북한당국의 비위를 맞추려는 대북정책이나 국내 선거용 대북 이벤트는 지속적인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대와 남북한 간의 합의를 깨면서 핵실험을 강행했고 장거리 로켓 발사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이런 북한이 연례적인 한·미 군사훈련에 대해 비난을 퍼붓고 심지어 예정된 이산가족상봉 행사마저 연계시키려 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이러한 비정상을 정상화시키지 못하면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구축된 국제적 압박 구조를 우리가 앞장서 허무는 잘못을 저지를 위험이 있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국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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