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흔해져 더 비싼 차 욕구”… 업계 “신용 담보돼야 리스 가능
1987년 벤츠 S클래스 10대 판매로 시작된 국내 수입차 시장은 1996년 1만대 판매를 돌파했고, 지난해 15만대가 팔리는 시장으로 급성장했다. 최근 몇 년 새 엔진 배기량이 낮고 연비가 높은 실용적인 모델들이 인기를 끌면서 수입차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지난해 10만대 이상 판매된 독일차 중에서도 고급차인 플래그십 모델 판매가 전 세계 4∼5위로 ‘한국에선 비싼 차가 잘 팔린다’는 속설도 이어가고 있다. 한때 과소비 주범으로 여겨져 50%에 이르는 관세가 적용되는 등 색안경을 끼고 봤던 수입차가 2014년 대한민국에서는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물로 비칠지, 아니면 여전히 과시욕의 상징으로 ‘카푸어’ 양산의 진원지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한국, 한해 1억원 이상 수입차 1만대 이상 소비
14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량 15만6497대 가운데 1억원 이상인 수입차는 1만1243대. 억대의 수입차가 한 해 1만대 이상 팔린 건 2012년이 처음이다. 2004년 4376대에서 2007년 6596대를 기록한 후 2008년 주춤한 것을 빼고는 최근 10년간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브랜드의 전체 글로벌 판매 순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순위보다 고가의 플래그십 판매 순위가 월등히 높은 점이 눈에 띈다.
BMW는 지난해에도 3만3066대를 팔아 국내 수입차 판매 1위였지만 전 세계 국가별 판매 순위에서는 한국은 10위였다. 반면에 플래그십 모델인 7시리즈는 1920대가 팔려 전 세계 4위를 5년째 지켰다. BMW 국내 판매량이 전체 국가에서 19위였을 때도 7시리즈 판매 순위가 6위였을 정도로 플래그십의 인기는 견고하다.
폴크스바겐에 2위를 넘겨준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해 2만4780대를 팔아 글로벌 순위가 13위였는데, 유독 S클래스와 E클래스의 판매량은 전 세계 5위와 4위를 기록했다. 4륜구동의 명가인 아우디도 1만8164대를 팔아 글로벌 순위 12위였지만, A8과 A6 판매량만큼은 각각 전 세계 4위와 5위를 기록하면서 ‘플래그십이 잘 팔리는 한국’임을 증명했다.
이밖에 2012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국에서 판매 2위를 기록한 포르셰는 지난해 2041대를 팔아 처음으로 2000대를 넘어섰고, 올해부터 지사로 출범하면서 본격적인 판매 경쟁에 나섰다. 지난해 성장세가 두드러진 재규어도 1901대를 팔아 전 세계 5위를 기록했고, 이 중 플래그십인 XJ는 537대를 판매해 미국·영국·중국에 이어 4위다.
◆플래그십 모델 판매 일등공신은 ‘리스‘
수입차 중에서도 고가 모델이 잘 팔리는 원인으로는 ‘과시욕’이 빠지지 않는다. 아직까지 고가 수입차가 부와 성공의 상징으로 비쳐 무리하게 차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수입차가 국내에 들어올 때만 해도 소유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반응이었지만 이젠 수입차가 너무 흔해졌다”며 “수입차라는 것에 만족을 느끼지 않고 더 비싸고 좋은 수입차로 욕구가 향하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분석의 근거로는 개인 소유가 아닌 리스 비율이 높다는 점이 꼽힌다. 국토교통부의 지난해 9월까지 수입차 신규 리스 현황을 보면 1∼10위에 BMW 3·5·7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와 C클래스, 아우디 A4·A6·A7,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등이 포함됐다. 이 중 BMW 5시리즈는 1∼9월 판매량의 40%가량인 5052대, 7시리즈는 68%인 1007대가 리스였다. 벤츠 E클래스도 40%가 넘는 4243대가 리스 구매였다. 아우디 A6도 30%를 훌쩍 넘는 2068대, A7은 절반에 육박하는 765대였다.
한때 ‘카푸어’ 양산의 주범으로 꼽힌 리스에 대해 수입차업계는 “감독이 강화되면서 신용이 담보되지 않으면 리스 구매가 불가능하다”며 “무조건 리스를 나쁘게 볼 건 아니다”고 주장했다. 특히 업계는 “결국 소비자가 플래그십을 선택하는 것은 그만큼 품질이 우수하고 달리 대안도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도 지난해 “약정기간 이자 상환 부담이 크지 않으나 만기에 한꺼번에 원금을 갚아야 하는 상품구조를 충분히 이해해 상환 능력 범위에서 리스를 이용하면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과시욕 때문이라는 데 일부 동의하지만…”
수입차업계도 ‘고가 수입차 판매 증가에 과시욕이 크게 작용한다’는 데 일부 동의하면서도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한 결과라고 항변한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관계자는 “생산공장이 있는 유럽에는 다양한 가격대의 모델이 있지만 국내에는 비싼 ‘풀옵션’ 차만 들어온다”며 “택시나 렌터카로 독일차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해외 소비자와 비싼 모델만 접하는 국내 소비자가 느끼는 독일차 이미지는 다를 것”이라고 밝혔다. BMW코리아 관계자는 “단순히 ‘부의 과시’가 아니라 브랜드의 선호, 사회적 인식의 합리화 등이 어우러진 결과”라며 “선택 범위에서도 수입차가 품질·효율성·감성 측면의 만족도가 높고 평판이 확산되면서 구매 확대로 연결됐다”고 말했다.
아우디코리아 관계자는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은 A4지만 국내시장은 A6와 A8이 잘 팔리는 곳”이라며 “개인이든 법인이든 경제력이 뒷받침되니까 플래그십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곽 교수는 “더 좋은 것을 바라는 것 자체는 어떤 행동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소비는 결국 다양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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