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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이는 파도 ‘산들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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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오도산과 해인사 암자 여행
합천에서 빼어난 전망이 펼쳐지는 봉우리로 오도산(1134m)도 빼놓을 수 없다. 일반인에게 합천의 산이라면 국립공원인 가야산과 군립공원인 황매산 정도가 알려져 있지만, 여행가나 사진동호인들에게는 오도산도 그 못지않은 명소다. 모산재와 오도산 두 곳 중 어느 곳의 전망이 더 낫다고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모산재의 전망이 화려하고 역동적이라면, 오도산의 전망은 장중하고 묵직하다. 모산재의 전망이 처음부터 확 이목을 잡아끄는 반면 오도산의 전망은 보면 볼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온다.

오도산은 1962년 남한 땅에서 마지막으로 야생 표범이 포획된 깊은 산이지만, 1982년 한국통신(KT)의 무선 중계소가 들어서며 산 정상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놓였다. 모산재는 한겨울에도 땀으로 옷을 적시며 다리품을 팔아야 하지만, 오도산은 자동차로 가볍게 오를 수 있다.

급한 경사를 피해 산허리를 돌고 또 돌아가며 길을 만들어, 이 포장도로는 산 아래 입구부터 정상까지 무려 10㎞에 달한다. 무선 중계소 아래 세 개의 전망대가, 중계소 안에 하나의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오도산은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이 산 정상의 전망대에 서면 합천과 거창 일대 산들의 머리와 어깨가 한눈에 들어온다. 첩첩이 이어진 이 산들의 전신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오니, 마치 거친 바람에 밀려오는 파도를 연상시킨다. 오도산에서의 감동은 거창 방면에 서 있는 미인봉 너머 광활한 분지를 보며 절정에 달한다. 봉우리 사이에 놓인 이 분지는 거창군 가조면 땅인데, 작은 마을과 논이 성냥갑만 한 크기로 눈에 들어온다. 합천호쪽도 비경이다. 산의 능선이 중첩돼 보이며 아스라하고 그윽한 풍경을 빚어낸다.

눈앞에 ‘산들의 바다’가 펼쳐지는 오도산 정상은 황매산의 모산재와 함께 이 일대에서 가장 빼어난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즈음 오후 합천호 쪽으로는 산의 능선이 중첩돼 보이는 그윽한 풍경이 펼쳐진다.
‘합천’ 하면 바로 ‘해인사’라는 단어가 따라 붙을 정도로, 합천의 대표 명소는 해인사다. 해인사는 양산 통도사, 순천 송광사와 함께 ‘삼보사찰’로 꼽히는 명찰 중의 명찰이다. 누구나 아는 대로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팔만대장경판이 보관돼 있다. 팔만대장경판이 보관된 장경판전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얼마 전 끝난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의 여파인지, 장경판전의 외관까지도 사진을 못 찍게 하는 등 너무 지나치게 통제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합천에 와서 장경판전을 보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겠다. 

해인사 일주문 앞에는 대장경 세계문화축전을 수놓았던 설치미술 작품 몇 점이 아직도 남아 있다. 모두 ‘마음’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부처상을 양분해 놓은 ‘부처의 소리’다. 잘라진 부처 사이의 빈 공간은 ‘일반인에게도 감춰진 불성’을 뜻한다고 한다.

해인사는 가야산 자락에 16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그중 가장 유서 깊고 내력 있는 절집은 백련암이다. 해인사 산내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백련암은 성철 스님이 말년을 보낸 곳이다. 일제강점기 서정주와 김동리도 이곳에 머물며 불교사상을 공부하며 문학수업을 했다. 절집으로 드는 기다란 돌계단이 인상적인 백련암에 오르면 시야가 툭 트인다. 해인사 일주문 인근에 자리한 홍제암은 사명대사가 입적한 곳이다.

해인사 일주문 왼편에 세워진 청동 조각 ‘부처의 소리’.
해인사로 드는 홍류동 계곡에 자리한 길상암은 벼랑 위에 서 있다. 길상암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은 갈지자(之)를 여러 번 반복한다. 이즈음 나무계단 난간에는 불자들이 소원을 적은 붉은 리본을 빼곡히 매어놓았다.

길상암까지 발길이 닿았다면 ‘소리길’도 걷지 않을 수 없다. 소리길은 야천리 각사교에서 해인사에 이르는 6.3㎞에 달하는 산책길을 일컫는다. 3개 구간으로 나뉘는 소리길은 1, 2구간에서 홍류동 계곡을 바로 곁에 두고 걸을 수 있다. 소리길의 백미로 꼽히는 구간은 길상암에서 최치원이 노닐었다는 농산정에 이르는 구간. 특히 길상암 부근 낙화담 부근의 경관을 최고로 친다. 칼로 자른 듯한 바위 아래 푸른 빛의 계곡물이 고여 있다. 이즈음 겨울인데도 물이 많아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홍류동이라는 이름은 가을 단풍이 계곡물까지 붉게 물들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요즈음 이 계곡의 정취가 가을만큼은 못 할 것이다. 그러나 소리길을 걷기에는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소리길 들머리에는 ‘귀를 기울이면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세월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소리길이라 함’이라고 적혀 있다. 세월가는 소리를 듣기에 12월만 한 때가 또 있겠는가.

합천=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여행정보(지역번호:055)=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성주나들목으로 나와 33번 국도를 타고 해인사 방면으로 향하면 된다. 합천에서는 황강변에 서 있는 고려시대 정자 함벽루, 일제강점기와 1980년대 서울 모습을 재현해 놓은 영상테마파크, 새벽 물안개가 아름다운 합천호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해인사 입구에 산채정식을 내놓는 집이 여럿이다. ‘고바우식당’(932-7311)과 ‘백운식당’(932-7393)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합천호 인근의 ‘황태촌’(931-0676)에서는 황태전골과 민물매운탕을 내놓는다. 합천은 ‘황토 한우’로 유명하다. ‘합천호 한우숯불구이’(931-2995)는 최근 문을 연 정갈한 한우구이집으로, 펜션도 겸하고 있다. 해인사 앞에 ‘해인사관광호텔’(933-2000)이 있다. 새벽 오도산에 오르려면 ‘오도산자연휴양림’(930-3733)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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