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실익·정치적 변수 따져보길 지난달 29일 우리 정부는 설왕설래하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관심을 표명했다. 지난 10월에도 TPP 관심 표명 여부가 부각됐으나, TPP 참여시 초기 비용이 너무 클 수 있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정부는 설명했었다. 하지만 TPP 협상이 조기에 타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대두되면서 관망에서 관심 표명으로 급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TPP 관심 표명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엇갈린다. 먼저 아태지역 초대형 자유무역협정(FTA) 불참에서 오는 불이익을 줄이고 TPP 회원국으로서 국제통상질서 형성에 기여할 수 있게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이다. 또 다른 반응은 별로 실익도 없는 상황에서 TPP 관심 표명이 한·중 FTA 협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의 관심 표명은 3일 시작해 사흘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TPP 회원국 대표와 예비 양자협의를 겨냥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예비 양자협의와 관련해 몇 가지 핵심 점검 사항을 제시하면, 먼저 TPP의 윤곽과 수준을 파악해야 한다. 철저한 비밀주의 아래 협상이 진행된다고 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협정의 주요 내용은 이미 상당 부분 알려져 있다. 당초 미국은 한·미 FTA 내용을 근간으로 예비교재를 만들었지만 이슈에 따라 선진국과 개도국 간은 물론이고 선진국 간에도 견해차가 커 한·미 FTA에 비해 낮은 수준의 협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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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 |
지금까지 두 차례 협상 타결 시한을 넘겼고, 2013년 협상 타결 목표도 세 번째여서 올해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내년에는 미국과 여러 나라에서 선거 등 정치일정이 있어 TPP 협상이 탄력을 덜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과거 어떤 통상보다 강도 높게 협상해 왔다. TPP 참여국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협상의 75%쯤 합의됐고 지식재산권, 정부조달, 경쟁정책, 국유기업 등의 25%만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이슈 어느 하나도 선진국과 개도국 간 견해차가 클 수밖에 없는 초민감 분야이며, 협상을 깨는 ‘딜브레이크(협상 결렬요인)’가 될 수 있다.
만약 연내에 협상이 타결된다면 이는 합의가 쉬운 협정의 일부 분야에 국한한 것일 수 있다. 나머지 민감 분야는 향후 협상 과제로 넘겨 협상 타결 시한을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TPP 협상을 시작하면서 합의했던 ‘일괄타결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 된다. 단계적 협상으로 TPP를 완성하겠다고 하지만 약화된 협상의 모멘텀을 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바마 미 행정부는 의회로부터 무역협상권한(TPA)을 부여받지 못한 상태에서 TPP 협상을 하고 있다. 즉 미 의회는 행정부가 타결한 TPP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 TPA하에 협상을 했던 한·미 FTA도 두 차례나 협정 수정을 요구한 바 있다. TPA를 부여받지 못한 상황이 향후 TPP에 미칠 영향과 불확실성을 검토하고 협상 전반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TPP 관심 표명과 달리 협상 참여는 경제실익은 물론이고 국내외 정치적 변수를 종합해 결정해야 한다. 거대 담론보다는 이슈와 분야별, 산업별 영향을 제시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TPP 협상 참여가 결정돼야만 한·미 FTA 추진 과정에서 지출했던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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