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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박재은 한국문예교육진흥원장

입력 : 2013-12-03 21:30:57 수정 : 2013-12-03 22: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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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보세요. 평범한 60대 어르신의 그림이란 게 믿어지나요. 저는 모든 사람이 이토록 창의적일 수 있다는 것에 매일 경탄하며 삽니다.”

박재은(57)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이 휴대전화에 저장한 사진을 기자한테 보여주며 말했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청춘제’에 참여한 어느 할머니가 그린 그림이다. 집안 청소하고 손주 돌보고 가끔 동네 복지관에서 요가 배우는 일상을 화폭에 담았다. 대상을 사실 그대로 그리는 대신 피카소의 명화 ‘아비뇽의 처녀들’처럼 마구 해체하고 재조립한 게 입체파 거장들도 울고 갈 솜씨다.

문예교육진흥원은 2005년 출범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엘리트’ 예술가 양성소라면, 문예교육진흥원은 모든 국민이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다. 스포츠에 비유하면 태릉선수촌이 아니고 국민생활체육회인 셈이다.

“예술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누구나 창의성을 갖고 있고 그래서 창조와 창작을 할 수 있죠. 우리가 지향하는 문화예술교육은 음악·미술·무용 등 장르를 철저히 나눠 하는 기능적 교육이 아닙니다. 작품의 완성도보다 다른 사람들과 창작을 함께하며 키우는 공동체의식, 내가 만든 작품으로 박수를 받을 때 느끼는 자존감을 추구하죠. 내가 창조적 주체가 되어 공동체 안에서 뭔가 가치를 창출해내는 체험,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겁니다.”

박재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은 “예술교육이 소외된 사람과 사람을 서로 이어주는 동아줄이 될 수 있다”며 “삶에 지친 대중에게 예술교육이 긍정적 에너지를 주고 일상의 활력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이화여대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작곡으로 박사학위를 딴 전문 음악인이다. 가톨릭대·경희대·서울사이버대 등에서 교수로 일하다가 2011년 7월 임기 3년의 문예교육진흥원장에 발탁됐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집행위원을 지낸 전문성과 예술인으로는 드물게 경영학을 깊이 공부한 점이 후한 평가를 받았다.

“경영에 관심이 많아 2009년 53세의 나이로 고려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했어요. 제 몸 안에 흐르던 ‘경영의 피’가 비로소 구체화된 거죠. 당시 대학원생 평균 나이가 34.5세였으니 저는 완전히 ‘왕누나’였어요. 그래도 젊은 학생들과 어울리는 게 즐거웠습니다. 학생회장까지 지냈다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경영학석사(MBA)를 딴 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같아요.”

그에 따르면 문예교육진흥원장은 “음악·미술 등 문화적 소양도 중요하지만 경영 마인드가 없으면 안 되는 자리”다. 100여 명의 직원과 연간 1086억여 원에 이르는 방대한 예산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문예교육진흥원은 모든 국민이 ‘고객’이지만 아무래도 문화예술에서 소외된 계층을 위한 사업이 중심이다. 60세 이상의 어르신, 교정시설 재소자, 소년원생, 군인 등이 그들이다. 박 원장은 전국 곳곳의 교육 현장을 찾아다니느라 주말에도 거의 쉬지 않는다.

“가급적 현장에 많이 가서 얘기를 들으려 합니다. 직원들한테도 ‘현장에 가봐라, 거기에 답이 있다’는 말을 자주 해요. 성범죄자를 주로 수용한 어느 교도소에서 사람 몸의 소중함을 주제로 무용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처음엔 조용하던 재소자들이 나중엔 막 울어요. ‘남의 귀한 몸에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라면서…. 재소자들한테 합창을 시키면 어떤 줄 아세요. 자기는 태어나 박수란 걸 처음 받아본다며 눈물을 훔치죠. 교도관들 말씀이 ‘똑바로 살라고 100번 훈계하는 것보다 더 효과가 크다’고 하시더군요.”

문화예술교육은 군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우리 부대 좀 찾아와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이 여기저기서 쇄도한다. 마침 박 원장은 남편 노규형(60) 리서치앤리서치 대표와의 사이에 아들 둘을 뒀는데 차남이 지금 군대에 있다.

“장병들이 문화예술교육을 얼마나 고대하느냐 하면요, 죽음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휴가를 반납하고 교육에 참여할 정도입니다.(웃음) 교육을 받고 창작에 동참한 뒤 ‘우리나라를 왜 지켜야 하는지 비로소 깨달았다’고 말하는 병사도 봤어요. 2013년 180개 부대를 찾았고 2014년에는 205개로 늘릴 작정입니다.”

문예교육진흥원 사업의 대부분은 전국적으로 4680여 명에 이르는 ‘예술강사’를 통해 이뤄진다. 예술 분야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문예교육진흥원이 마련한 일정한 연수 과정도 마쳐야 예술강사가 될 수 있다.

“취임 후 지금까지는 문화예술교육의 양적 확대, 즉 교육 혜택을 받는 계층을 최대한 넓히는 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앞으로는 교육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도 함께 도모하려고요. 박근혜정부 국정 기조인 문화융성을 위해 남은 임기 동안 최대한 노력할 각오입니다.”

글=김태훈, 사진=허정호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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