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사실 왜곡하고 지식 파괴하는… 오역의 실상 해부

입력 : 2013-11-15 18:18:04 수정 : 2013-11-15 22:23:2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서옥식 지음/도리/2만5000원
오역의 제국-그 거짓과 왜곡의 세계/서옥식 지음/도리/2만5000원


한 언어가 다른 언어로 옮겨질 때 얼마나 많은 의미와 정보가 유실되고 왜곡되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국내에선 외국 철학서나 이론서를 비롯해 세계적인 사상가나 철학자의 명언, 정치가의 연설문 등이 일부 오역되고 왜곡돼 버젓이 읽히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연합뉴스 편집국장을 지낸 현직 언론인이 쓴 신간 ‘오역의 제국’은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들춰낸다. 저자는 번역에서 신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지적했다.

독도 영유권과 관련한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오역된 기사 때문에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매국노’로 매도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008년 7월9일 일본 홋카이도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교과서에 독도(일본명 다케시마)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발언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今は困る。待ってほしい)”고 답했다고 요미우리는 7월15일자에 보도했다. 이 기사대로라면 이 대통령 발언은 후쿠다의 발언에 수긍하는 듯한 뉘앙스를 준다.

즉각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성명을 냈고, 일본 정부도 공식 성명에서 이 기사가 오역임을 인정했다. 요미우리도 구체적 증거를 대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즉각 이 기사를 통째로 삭제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일부 세력은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며 1886명에 달하는 소위 ‘국민소송단’이란 것을 구성해 대통령을 상대로 법원 소송까지 제기하면서 오역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 했으나 패소하고 말았다. 뒤에 알고 보니 ‘자제해 달라’는 영어 단어 ‘홀드백(hold back)’을 ‘기다려 달라’로 오역한 것이었다. 이 오역 소동은 사실이 아님에도 2012년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까지 오르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원폭 투하도 따지고 보면 영어 오역 때문에 촉발됐다는 주장이 있다. 사태 전말은 이렇다. 1945년 7월26일 미국의 해리 트루먼,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중국의 장제스 등 연합국 수뇌들이 포츠담 선언을 통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연합국 측의 항복 요구가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일본 여론은 들끓었고, 정부는 입장을 밝혀야 했다. 당시 스즈키 간타로 총리는 7월28일 오후 4시 기자회견에 나섰다. 하지만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우리는 (포츠담선언에 대해) ‘모쿠사쓰’할 따름”이라고 했다. ‘모쿠사쓰’는 ‘유보하다’, ‘거부하다’ 등의 모호한 표현으로 영어에는 번역할 만한 적당한 단어가 없다.

스즈키 총리는 ‘논평을 유보하다’는 뜻으로 모쿠사쓰를 썼지만, 당시 일본 도메이통신은 영문 기사를 긴급 타전하면서 ‘모쿠사쓰’를 ‘무시한다(ignore)’로 옮기고 말았다. 도메이통신을 받은 서방 언론은 ‘거부하다’라는 뜻으로 보도했고, 이에 격분한 트루먼 대통령은 사흘 뒤인 8월3일 원폭투하를 지시하는 문서에 서명했다는 후문이다.

저자는 “미국은 무조건 항복 요구를 거부한다는 답변에 경악했고, 결국 8월6일 히로시마에 이어 8월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면서 “오역은 독자와 원저자에 대한 죄악이자 역사와 사실을 왜곡하고 인간 지식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거듭 강조한다.

정승욱 선임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