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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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연희·김동준·정민 외 지음/태학사/3만5000원 |
비운의 왕자 사도세자는 그림으로 애처로운 상흔을 달랬다. 사도세자가 그린 ‘개 그림’ 속에는 왕자의 아픔과 절규, 왕실의 애환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큰 개를 향해 반갑게 달려가는 작은 개와 무덤덤한 큰 개는 사도세자와 영조의 관계를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서울대 국문과 정병설 교수는 “엄격한 아버지 영조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무시당했던 사도세자의 아픔이 묻어난다”고 풀이했다. 신간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는 국내 인문학자 32명이 옛 그림 속에서 한국의 숨결을 찾아 전하는 독특한 책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반도 형상이 토끼 모양이라고 배웠다가 지금은 호랑이 형상으로 기억하고 있다. 실학자 이중환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우리나라의 모습을 중국을 향해 고개 숙여 읍하는 노인의 형상으로 그렸다. 신라 말 도선대사는 우리나라의 땅을 대륙에 정박한 배의 형국으로 인식했다. 그러다 일제강점 때 도쿄제국대의 고토 분지로가 한반도의 형상을 토끼 모양이라고 주장하면서 지금껏 전해진다.
최남선은 한반도를 대륙을 향해 할퀴며 달려드는 호랑이로 그렸다. 그러나 고토 이전에 이미 ‘한반도 호랑이 지도론’은 존재했다. 일례로, 포항시 호미곶면 대보리 호미등(虎尾嶝)이란 지명을 들 수 있다. 호미등은 ‘장기곶’이 본 이름인데, 이곳이 한반도를 호랑이의 형상으로 볼 때 꼬리에 해당한다 하여 호미등이라 불렸다고 한다. 호랑이 모양 지도가 토끼 모양으로 돌변한 것은, 서양 열강에 먹히는 근대기 조선을 표상하는 이미지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한반도 지도 형상에 관한 논의는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민족의식과 정체성 문제에 맞물린 일종의 담론이었다“고 풀이한다.
일제는 그림을 통해서도 조선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데 주력했다. 조선 왕의 왕좌 뒤에 세워졌던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를 ‘봉황도(鳳凰圖)’로 바꾼 것도 일제였다. 해와 달보다 초라한 봉황으로 대체한 것. 아이러니한 것은 일제가 선택한 봉황도가 봉황 표장으로 발전되어 오늘날까지 대통령 상징 문장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제는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에게 일본군 복식인 육군 대장복을 입혀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다. 이 황제 즉위식을 일러스트로 그려 전 세계에 배포함으로써 순종 황제가 대한제국과 결별한 채 일제의 휘하로 들어오는 것을 기정사실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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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세자가 그렸다고 전하는 ‘개 그림’.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인문학자 32인은 그림을 통해 문학, 철학, 역사, 회화, 복식 등 문화 전반을 망라했다. 이들은 국내와 중국, 일본, 미국 등의 소장 도판 목록을 뒤져 하나하나 풀이해 책으로 엮어 냈다. 책 속에는 모두 230여 점의 옛그림이 해설과 함께 들어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3국의 옛 그림도 더불어 감상할 수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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